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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오 Jul 03. 2020

어떻게 반갑던지

유연하게 살고 싶어

뒷좌석에서 엄마가 말씀하셨다. 


“네가 버스 뒤에서 걸어오는데 어떻게 반갑던지.”


작은 내가 멀쩡히 엄마를 부르면서 사고가 난 버스에서 걸어 나왔다고. 얼마나 큰 사고였는지, 앞자리에 앉았던 내가 버스 맨 뒷자리에서 걸어 나왔다. 이미 오래전 기억이지만 나도 엄마도 평생을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여전히 그 밤의 기억은 생생하다. 엄마를 부르던 기억이 또렷이 남아 있다. 


엄마는 혼자서 나와 동생을 데리고 외갓집으로 친가 쪽으로 자주 다녔다. 하나는 포대기에 싸 업고, 하나는 손을 잡고.. 우리가 살던 동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큰 좌석 버스를 타고 시골길을 달려야, 외가든 친가든 갈 수 있었다. 좌석버스를 타고 엄마의 시댁으로 향했다. 그 밤은 시골길을 달리는 버스 밖이 유독 어두웠다. 비가 억수같이 내려 가뜩이나 어두운 밖이 더 깜깜했다. 정말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버스는 어두워도 비가 와도 길을 달렸다. 비가 많이 내렸고, 도로는 미끄러웠다. 그리고 일이 벌어졌다. 버스가 전복됐다. 밖도 안도 캄캄했다. 나는 몇 살이었을까. 어두운 버스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 


“엄마, 엄마.”


포대기에 싸서 안고 있던 동생은 영문을 몰라 두 눈을 반짝거리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했다. 그런데 맨 앞자리, 자신의 옆에 앉았던 내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큰 소리로 정신없이 내 이름을 불렀다. 앞인지 뒤인지 분간도 가지 않는 곳에서 서로가 서로를 부르고 있었다. 그때, 뒤쪽에서 내가 일어서며 옷을 툭툭 털면서 말했다고.


“엄마, 나 여기 있어.”


나의 대답은 엄마의 기억이다. 나는 엄마를 부른 기억뿐이다. 그리고 다음은 창문으로 어떤 아저씨가 나를 끌어올려 주었다.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렇게 큰 사고에서도 나와 동생은 작은 상처도 얻지 않았다. 그 사고로 다리를 잃어 여적까지 결혼을 못한 언니가 엄마 살던 동네에 아직 산다고 했다. 전에도 그와 이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었지만 함께 사고를 당했던 다른 이의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그 사고로 누군가는 큰 것을 잃기도 했다. 엄마의 기억 속 이야기로 전해 들었지만 동네 언니가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잃었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시골집에 오가던 각자의 기억을 이야기하다가 내가 물었다. 엄마도 항상 내 손을 잡고 걸었느냐고.


"손 잡아 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 잡고 가야지."


겨우 4살 5살 되었을 나는 그렇게도 그에게 손을 잡아달라고 했나 보다. 그는 내 손을 잡고, 동생은 업은 채로 많이 다녔다. 나는 혼자 걸어도 지치는데 그는 지치지도 않고 다녔다. 그렇게 다니면서 자주 넘어졌다. 한 번은 외가로 가는 가파른 내리막에서 넘어졌다고 했다. 손 잡고 걷던 나는 구르고, 포대기에 업고 있던 동생도 구르고. 그는 무릎이 깨져 많이 울고, 괜스레 외할머니에게 화도 냈다고 한다. 그때에도 나와 동생은 작은 상처도 없이 멀쩡했단다. 


종종 큰 사고에서도 다치지 않는 아이들 이야기를 듣는다. 아이들은 오히려 쉽게 다치지 않는다고. 유연해서일까. 떨어지고 넘어져도 아주 유연하게, 안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걸까. 나는 내 이모가 살던 빌라 계단에서 구른 적도 있었다. 엄마 손을 잡고 걸을 수도 없이 작았을 때. 걷기는커녕 기는 게 고작이었을 때. 그때도 나는 다치지 않았다 들었다. 나도 그렇게나 유연했다. 사고와 상처에 유연한 아기였다. 아무리 큰 사고가 나도 툭툭 털고 일어나는 아이였다.


큰 사고로 누구는 더 큰 것을 잃었을지 모른다. 내가 모르는 이야기, 알 수 없을 삶이 내 주변에는 너무나 많다. 그 사고에서 엄마는 나와 내 동생을 잃지 않았지만 다른 사건과 사고에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것들을 잃어왔을까. 크고 작은 사고에도 상처 받지 않던 유연함. 툭툭 털고 일어서던 의연함. 아마 사라지진 않고 분명 어딘가에 있을 거다. 가장자리 어딘가에 내 눈에도 띄지 않는 곳. 그런 나의 유연함을 만나면 말하고 싶다. 


어떻게 반가운지 모르겠다고. 다시는 없을 줄 알았던 네가 거기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그럼 유연한 나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 일단 오늘은 혼자 일어나야 할 테지. 각자가 잃은 것은 결국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아침이 오면 다시 일어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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