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나는 것들이 만나는 지점이 있을까. ‘결국 멀리 돌아와 만났습니다’ 같은 결말은 싫다. 그냥 ‘어긋나지 않고 쭉 이어진 채로 함께 걸었습니다’처럼 평탄하고, 아프지 않고 울음을 참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가 되면 좋겠다.
흔한 이름이면 사람들 사이에 잘 숨어서 살 수도 있을 거라던 낯 모르던 이의 말이 떠올랐다. 아, 이름처럼 수많은 무리 중 한 명, 누가 불러도 모두가 돌아보는. 그래서 많은 얼굴 사이에 조용히 숨을 수 있는. 나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해서 끝났으면 했다. 어릴 때 읽었던 동화의 변함없을 마지막 문장은 바라지 않았다.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가당치 않다. 영원히와 행복하게를 뺀 ‘살았습니다’ 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흔해빠진 이름과 얼굴은 다이내믹하거나 누구보다 도드라지고 특별할 수 없을 운명일 테니, 그저 모든 행복과 불행이 비껴가는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삶이면 되었다. 그랬다. 행복도 불행도 나를 비껴가 주기를 바랐다.
그럼에도 욕심이 났다. 아주 조금은 행복하고 싶었다. 지나온 시간은 불안하고, 눈물이 많았으니까 앞에 올 날들에는 그래도 웃음이 있는 날이면 했다. 그랬다. 욕심을 부렸다.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싶었다. 힘내고, 용기 내지 않아도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기를. 울면서 걷지 않기를. 혼자 숨어서 울지 않기를.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기를. 편안하게 잠들 수 있기를 바랐다.
사회에서 말하는 정상적인 가정을 바라지 않았다. 그냥 내게 엄마가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았다. 힘들 때 안겨서 소리 내 울 수 있는 품이 있다는 걸 아는 걸로 족했다. 그리고 버려지지 않고, 헤어지지 않는 것으로 충분했다. 많은 돈을 바라지 않았다. 큰 집이나 좋은 옷, 비싼 차. 필요한 것만 살 수 있으면 되었다. 내가 원하는 걸 스스로 선택하고 누릴 수 있는 여건만 된다면 좋았다. 누굴 부러워한다고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 내 것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 일찍 알았다.
아니다. 이렇게 스스로 만족을 강요하며 살면 안 되었다. 버려지고, 위태롭게 매일을 보내는 것은 누구에게도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다. 그런 매일이 나를 더욱 불안하고 아프게 만들었다. 감정적인 격려가 필요한 나에게 누구도 마음껏 안아주지 않았다. 나도 나를 안지 못했다.
살면서 가장 편안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한 사람과의 생활은 나에게 행운이었다. 잠들지 못하던 밤들이 사라졌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소중했다. 그냥 같이 손을 잡고 걷고, 함께 나이 들어가는 삶이면 되었다. 내 옆에 있는 이가 어떤 모습이어도 좋았다. 그리고 그에게 나도 그런 사람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나만의 바람이었다. 혼자만의 꿈이었고, 행복이었다. 그 생활을 지키기 위해 내가 지워버린 것은 결국 나였다. 어긋난 것은 그런 채로 각자 나아갈 뿐이다. 다시 만날 수 없고, 다시 만난다고 본래의 모습이 될 수도 없다.
불안과 긴장, 아쉬움과 원망의 시간. 좋았던 기억들마저 흐릿해지고 의미 없어져 버리는 그렇고 그런 사이. 좋아하는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속으로 노래를 불러본다. 생각이 나도, 그리워져도 돌아보지 않을 자리.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남은 채로 앞으로 가야지. 어긋난 지점에서 나는 조금 더 걸어간다. 그리고 그 길에서 불안하지 않고, 긴장감으로 하루를 채우지 않는다. 어떤 기억도 떠오르지 않기를 바란다. 그저 오늘 얻은 좋은 기억에서 힘을 얻는다. 나는 오늘 많이 웃었다. 그리고 조금 더 멀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