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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오 Jul 14. 2020

보이는 것보다


달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달
어디 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

해가 지고 집 밖으로 나와 자전거를 탔다. 30분을 달리다 되돌아가려고 자전거 머리를 돌렸다. 그때 하늘을 올려다봤다. 내가 등지고 달리던 하늘. 정말 크고, 밝은 달이 보였다. 자전거를 세워 두고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냈다.

다시 페달을 밟았다. 너무너무 너무~ 어처구니없게 옛날 옛쩍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며 속으로 ‘아, 옛날 사람’이라 말하면서도 입으로는 계속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리 흥이 많은 사람도 아닌데, 저 달이 나를 노래하게 한다.

마스크 위로 노래가 자꾸 새어 나가서 소리를 낮추기를 몇 번. 페달이 돌아갈수록 노래도 계속 맴돌았다. 어른들이 왜 자꾸 노래를 부르는지 알 것도 같았다.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알게 될 때는 조금 슬프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노래가 나오는걸. 달이 예뻐 노래가 샌다.

다시 30분쯤 달리다 자전거를 세웠다. 여름밤이지만 바람이 있어 시원했다. 자전거를 타며 흘렸던 땀이 마르고, 올랐던 열기가 식었다. 계단에 걸터앉아 한강을 바라봤다. 저 멀리 보이는 빛들은 화려한데, 물은 어둑하다. 주변에 앉고, 서서 강을 마주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로 바빴다. 멀리 보이는 쟁반같이 둥글고 밝은 달과 달보다 더 밝은 건물의 빛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어둑한 한강을 바라보며 손에 든 술과 커피를 마시거나. 나는 앉아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강 위를 바라보다가, 구름에 가려진 달을 보다가 했다. 눈 둘 곳을 찾느라 바빴다.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계속 주춤거리고, 안절부절못했다.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머리 위로 들어 멀리 보이는 달을 찍었다. 아주 둥글고, 밝은 달. 도무지 찍히지 않는 달. 자동차 사이드미러에 있는 문구가 떠오른다.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습니다
아닙니다.
달이 보이는 것보다 아주 멀리, 저 멀리에 있습니다.

아무리 담고 싶어도 불가능한 일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몇 번을 더 찍었다. 크고 밝은 달은 사진 속에서는 작고, 볼품없어 보였다. 강 너머 불빛보다 초라하고 흐릿했다. 아름다운 모습은 눈으로만 볼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뒤에, 더더더 뒤에(보노보노가 말하는 것처럼 아주 느릿하게 말해야 한다. 그런데 보노보노 알아도 옛날 사람인 것 같다) 있어 아무리 애써도 사진으로 남길 수 없었다. 결국 핸드폰을 바닥에 두고, 가만히 앉아 달을 바라보았다. 사진을 찍으려 애쓰던 사이에 구름에 가려 노오란 빛무리만 남아 버린 달.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달은 구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따듯한 물로 씻고 나와 선풍기 앞에 앉아 달 사진을 보았다. 작고, 흐릿하고 멀리 있는 달. 도대체 내가 보고 담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아무리 잘 찍고 싶어도 눈에 보이는 달은 너무 멀리 있었다. 내가 가득 담고 싶다고 보이는 그대로 담기지 않았다. 그나마도 카메라로 찍으려고 핸드폰 화면으로 보았던 작고 흐릿한 달만 담았다. 사진을 보다가 결국 시선이 머문 곳은 밤하늘보다 어두운 강. 수면 위에 있는 것들은 모두 밝은데 한강은 모든 빛을 흡수해 검은색보다 더 어두운색을 만들어 버렸다. 덜컥 겁이 났다. 혹시 지금 내가 저 어두운 강처럼 보일까. 모든 빛을 삼켜 버리고 온통 까만색으로 만들어 버리는. 나는 어떤 색으로 보일까.

아닙니다.
나는 보이는 것보다는 밝은색입니다.
아닙니다.
나는 보이는 것보다는 덜 어두운색입니다.
아닙니다.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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