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휘고, 무너지지 않기를

25년 9월 16일의 감정

by 하지


피곤하다

평소 제2의 귀처럼 꽂고 다니는 에어팟을 집에 두고 나와서, 아침 출근길에는 오랜만에 강제로 귀 디톡스를 하게 되었다. 지루해서 못 견딜 줄 알았는데, 노래 없는 출근길도 생각보다 할 만했다. 어떤 자극 없이 멍 때리고 있으니, 일상에서 생각보다 이런 시간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튜브에서 자막 있는 영상을 찾아보다가, 오늘 하루 지금을 행복하게 사는 법과 관련된 영상을 보았다. 30분 정도의 길이로, 요즘 생각하는 부분과 맞닿아 있는 부분도 있고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오늘 하루치만큼의 행복만 생각하자고 결심하고 출근했다. 그 덕분인지 나름대로 유쾌하게 하루를 보냈다.


다만 오늘 말씀드려야 할 중요한 일이 있어서 두려움 끝에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용기 내서 마주한 자리에서는 예상과 다르게 상황이 흘러갔다.


생각했던 대로 결정이 나지 않았고, 논의 끝에 선택의 순간이 조금 미뤄졌다. 잘된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서 대화가 끝나고 나서는 혼란스러웠다. 나를 좋게 봐주신 것은 감사했지만, 그저 고민을 유예하는 기간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 다만 선택에 긴가민가했던 내가 확신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중한 성격인 만큼 뒤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확실한 판단을 스스로에게 요구하니까.

그래도 생각하고 판단한 내용을 바탕으로 부딪히고 나니, 앞으로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됐다.

평소 호기심도 많고 겁도 많은 나의 기준에서 봤을 때, 삶의 만족도가 높아질 때는 생각과 행동 사이의 간극이 짧을 때였다. 즉, 일단 경험해 보고 거기에 살을 붙여가며 유연하게 대처할 때이다. 오늘 일에서도 역시 사람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구나, 거기에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 안에서 유연한 선택을 하자 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하루를 잘 보냈지만, 퇴근하고 공부하러 나가는 길에는 피곤함이 몰려들었다. 어제 모처럼 에너지를 많이 써서 그런지 이렇게 몸이 무너질 것처럼 피곤한 건 오랜만이었다. 체력도 길러야 하는데 지금 루틴에서는 도저히 운동을 끼워 넣을 시간이 없다. 답답한 마음에 자리에 앉자마자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조금이라도 해보고 싶어서 버티고 앉아 있었다. 그 덕에 한 시간 좀 넘게 할 일을 하고, 돌아와서는 하루의 마무리를 빨리 할 수 있었다.


잘 버텨보고 싶은데, 그럴 때마다 작은 균열이 날 때가 있다. 잠시만 휘고, 무너지지는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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