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그게 자유로운 삶이다

25년 10월 5일의 감정

by 하지


힘을 내다

긴 연휴의 시작. 나의 연휴는 어제 하루 종일 자고 집 밖에 나오지 않음으로써, 하루를 삭제하고 오늘부터 시작됐다. 그래서 이틀 전 세워두었던 계획은 어제가 아닌 오늘로 고스란히 넘어왔다. 심지어 추석 당일을 헷갈려서 날짜를 다시 계산해 보니, 생각보다 연휴 동안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음을 깨달았다.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야 했으나, 어제의 무기력함이 묻어서 몸을 일으키기 쉽지 않았다. 머리랑 몸이 따로 놀아서 결국 오후 늦게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위기감에 모자만 푹 눌러쓰고 짐을 챙겨 나왔다.

하루를 지우고 24시간이 넘어 바깥을 마주하니 의외로 기분이 좋았다. 이게 얼마만의 여유인지. 공부할 것은 한가득 이어도 솔솔 부는 바람을 맞으니 즐거웠다. 카페에서 여유롭게 공부하고 싶은 유혹에 흔들렸으나, 간신히 스터디카페로 발길을 돌렸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카페에서는 공부하다가 곧잘 집으로 돌아오고 만다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정말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설렁설렁하고 싶은 욕구를 눌렀다.

스터디카페에서는 밤까지 5시간을 채우고 돌아왔다. 물론 시간을 채운 것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 일차적으로는 버티고 앉아 있었다는 것에, 다음으로는 계획이라고 적은 것들을 대충은 해내고 왔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수련 일기에 공부하기 싫다는 내용을 세 줄 적고 시작했고 막막함에 한숨도 여러 번 나왔지만, 공부 계획을 얼추 정리하고 마지막 한 시간엔 암기도 시도했다. 충분할 만큼 공부하지는 못했지만, 끝나고 나니 포기했을 때보다는 스스로 만족스러웠다.

오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깨달은 것은 나는 사실 대입 때부터 어떤 전공을 선택하든 상관없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여러 과에 지원했고, 지금 하는 공부도 그중 그나마 관심 있는 하나일 뿐이었다. 어쩌다 보니 그 길을 계속 걸어왔고 전문성과 자기표현의 갈림길에서 돌아보니, 어떠한 전공을 택했어도 이맘때쯤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사실 어떤 정해진 직업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어떤 분야든 나의 세계가 새롭게 확장되어, 그 경험과 지식이 후에 내가 표현하는 이야기의 밑거름이 되어줄 거라고 기대했다. 답답한 마음에 챗지피티와 대화해 보니, 나는 전문성(깊이)과 표현(넓이)을 모두 경험해서 나의 언어로 번역하고 확장시키려는 욕구가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초에 둘 다 하고 싶었다니, 참 욕심도 많지. 그래서 줄곧 그 갈림길에서 고민해 오고, 지금은 공부하면서도 어설프나마 짧은 일기라도 쓰고 있나 보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 가려는 전문성의 길이 내가 생명처럼 중요하게 여기는 자유를 억압하는 길이 아닐까 의심했었다. 대학원을 거친 지난 5년 동안 나는 수렴하는 생활을 했고, 경험을 통해 확장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전무했으니까. 지금도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당분간은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나의 에너지가 어떤 방향으로 흐르는지 확인할 계획이다. 작은 몰입의 순간들을 늘려서 지금 하는 공부가 나를 살아있게 해 주는지, 혹은 그 반대인지 그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다.

무엇보다 기억하고 싶은 것은 "그러니 앞으로 어떤 길을 가든 내 자유와 표현력은 죽지 않는다. 오히려 더 성숙한 형태로 내 이야기의 언어가 될 것이다."라는 문장이다.

억지로 마지못해 가는 길이 아니라 주체적인 선택에 의해 이 일을 하고 싶다는 믿음, 그리고 그 경험이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후에 써 내려갈 이야기의 단단한 재료가 될 것이라는 넓은 시야. 아무래도 그게 내가 생각하는 자유로운 삶이자, 어떤 일을 지속할 수 있는 동기이다. 돌고 돌아 어렵게 가는 길이지만 그걸 뚫고 스스로를 믿게 되었을 때 내가 가질 추진력을 알고 있기에, 다시 차분하게 하루하루에 몰입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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