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10월 14일과 15일의 감정
텅 빈 자기소개서와 임박한 마감시간을 앞두고 늘 그렇듯 하던 일을 던져버렸다. 이젠 낯설지도 않다, 성취 직전에 겁먹고 하던 것을 멈추고 구멍 안에 숨는 것이.
주말부터 스트레스로 위장이 조여 오고 잠이 오질 않았다. 밤을 새우면서도 할 일은 손에 잡지 못한 채 의미 없는 딴짓만 했다.
할 일을 미루는 것이 나와 맞지 않는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이건 나의 패턴이었다. 중요한 시험과 평가를 앞두고 스트레스를 받다가 몸이 아프고, 할 일을 중단하게 되는 것은 어릴 때부터 종종 있었던 일이다. 스스로를 너무 한심하게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스트레스에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모습을 보면 자기 비난이 무의식에 팽팽 돌아가고 있나 보다.
그렇게 퀭한 상태로 출근했는데 당연히 상태는 좋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출근길에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기 위한 메모를 가득 적었다. 그리고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도대체 뭐가 두려워서 자꾸 완성하기 전에 손에서 놓아버리는 걸까. 끝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결과를 만들어내는 연습을 스스로에게 시켜주고 싶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는 일상이 지친다고 생각했는데, 힘든 시기에는 반복되는 유일한 일상만이 나를 살리고 있었다. 습관처럼 집에서 뭉개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햇빛을 맞이했고, 혼자 숨지 못하고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믿음은 다정한 대화에서 뜻밖의 용기를 얻고 행동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좀비처럼 피곤한 상태에서 일단 써보는 자소서 벼락치기를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는 형편없는 글이라도 틈 나는 대로 적고 다듬으니 어설픈 형태로 완성되어 갔다. 하기 싫어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붙잡고 마감 5분 전이 되어 제출했다. 그제야 좀비 같은 얼굴에 며칠 만에 미소가 스쳤다. 자소서를 잘 써서는 아니다. 몇 시간 만에 채운 글은 여전히 형편없는 글일 것이다. 이 경험에서 내가 얻은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나도 할 수 있다는 감각이었다.
무언가를 '잘' 하지 못해서 실패한 채로 제출하는 것은 차라리 그만두고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무섭고 어려운 일이다. 앞으로 남은 여정이 긴 만큼, 한동안 미완성을 완성하는 힘겨운 과정을 거쳐야 하고, 스트레스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와 관계없이, 두렵고 피하고 싶은 그 경험을 해낼 때 나의 세계가 조금씩 넓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오늘도 일상과 내 곁의 사람들, 그리고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벽 밖으로 나가보겠다는 결심이 한 발짝 내 세상을 넓혔다.
퇴근길, 좀비처럼 피곤했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두려움에서 벗어난다면, 이 세계가 정말 내 세상이 될 수 있겠다'는 감각이 스쳤다. 두려워도 일단 경험해 보는 순간들이 늘어나면, 뭐든 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자유를 얻을 것이다. 그러니 힘들고 어려워도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 길이라는 작은 희망이 생긴다.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감각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라, 잃을세라 기억에 담아놓았다.
마지막으로, 내가 생산적이지 못해도, '쓸모'를 다하지 않아도 나를 용서해 주자는 다짐을 되새겼다. 당연해도 요즘 사회에서는 쉽지 않아서, 그날 하루가 생산적이지 않았어도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수용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역시 내가 진실로 바라는 것은 반드시 성취하는 결과가 아니라, 위기에서 평온을 찾고, 자신을 챙기고, 침착하게 돌파해 나가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그러니 도전하는 과정이 자신을 해칠 정도로 너무 아프지는 않도록, 스스로에게 비난보다는 응원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건 지나치게 다정하고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해서 자주 힘들어하는,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혼자서 감정을 추스르고 앞으로 나아가야 했던 그들의 일상에도 작은 위로가 나아가는 힘이 될 수 있기를. 언젠가 우리들의 세상을 살고 있다는 감각을 느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