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섭 Feb 06. 2023

시 <거미>

< 거미 >


이종섭


거미가 쳐놓은

끈끈한 줄을 나는 보지 못했다.


흐느적거리듯 바람 따라 흔들거리는,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가는 허리의

신비로운 모습에 반해

내가 유혹한다는 착각으로 다가갔지만

언제나 묶여 있는 것은 나였다.


거미는 체액을 먹어야 산다.

조여 주며 피를 짜는 요사스런 광란의 춤,

숨 막히듯 거칠게 들려주는 현란한 음색에

시력과 청각은 여지없이 마비되고

비밀스런 빨대를 통해 근육 세포까지 빨려나갔지만

야위어 죽어가는 몸은 오직

길들여진 갈증만 느낄 뿐 뿌리칠 수가 없었다.


침묵이 주위를 감싸고 새벽이 올 무렵

거미는 떠나갔다.

또 다른

신선한 먹이를 잡은 거미는

일정한 집이 없다.


이전 15화 시 : < 시대사조(時代思潮)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