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미 >
이종섭
거미가 쳐놓은
끈끈한 줄을 나는 보지 못했다.
흐느적거리듯 바람 따라 흔들거리는,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가는 허리의
신비로운 모습에 반해
내가 유혹한다는 착각으로 다가갔지만
언제나 묶여 있는 것은 나였다.
거미는 체액을 먹어야 산다.
조여 주며 피를 짜는 요사스런 광란의 춤,
숨 막히듯 거칠게 들려주는 현란한 음색에
시력과 청각은 여지없이 마비되고
비밀스런 빨대를 통해 근육 세포까지 빨려나갔지만
야위어 죽어가는 몸은 오직
길들여진 갈증만 느낄 뿐 뿌리칠 수가 없었다.
침묵이 주위를 감싸고 새벽이 올 무렵
거미는 떠나갔다.
또 다른
신선한 먹이를 잡은 거미는
일정한 집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