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20세기의 신화>
돌, 이종섭
재만 조선족 문학지에는 소설 <20세기의 신화>로 인해 김학철 선생의 노벨상 수상을 기대한 듯한 글이 상당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작품 또는 김학철 선생에 대한 심도 깊은 논문도 상당수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재만 문인들의 시각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아마도 그 내용에 있어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솔제니친 작)와 같은 수준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작가 김학철 선생 자신도 이 소설에 대하여 "정의로 두려움을 이겼다."라고 자평을 하였다.
그러나 자유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인 내가 보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를 포함하고 있는, 조금은 복잡한 의미의 작품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 첫째는 내용의 문학적 성격인데,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수용소 실상의 폭로보다는 순수한 인간애에 중점을 둔 반면 <20세기의 신화>는 인간애보다 폭로와 비난(또는 비판)에 중점을 둔 것으로 이해하였고,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이념적 비판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 비하여 <20세기의 신화>는 특정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논하고 있다. 선생의 다른 문학작품집인 <김학철문집> 같은 책에서는 이념문제가 거의 보이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특히 우리의 시각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으로 김학철 선생의 이력문제를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분은 최초 중국 국민당에서 공산당(팔로군)으로, 다시 북한의 공산당으로 갔다가 또 다시 중국 모택동의 공산당으로 전향하고는 반우파투쟁을 기점으로 다시 한 번 방향을 바꾸어 모택동과 김일성을 비판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도 끝까지 외친 것은 맑스, 엥겔스와 레닌, 팽덕회 만세였다. 따라서 김학철 선생은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환상을 끝까지 버리지 못한 채 갈등만 겪다가 세상을 뜬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레닌의 소비에트연방은 해체 된지 오래고 러시아 공산당은 집권에서 한참 물러나있으며, 중국은 사회주의로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막강한 부루주아지를 양산하고 있다. 착각인지는 몰라도 대다수 중국의 프롤레타리아트들은 부루주아지들을 원망하기는커녕 그들도 언젠가는 부루주아지와 견줄 만큼 부자가 되는 꿈을 꾸는 듯 보여진다. 따라서 <공산당선언>에 따른 폭력혁명과 더불어 과학적 사회주의의 실행이라는 허황된 꿈을 꾸고 있는 곳은 이 지구상에서 한반도 이외에는 없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