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성공한 작품에 대한, 가장 잘 못쓴 독후감
가장 성공한 작품에 대한, 가장 잘 못쓴 독후감
엄마를부탁해 / 신경숙
2010-09-21 10:57
돌, 이종섭
금년 초 어느 날, 밀리언셀러가 되었다는 작품 하나를 사서 읽었다. 바로 근간에 가장 성공한 작품이라고 알려진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창작과비평사)였다.
책장을 펼쳐 몇 페이지를 읽어 내려가면서 느낀 점은 ‘과연!’이었다. 코믹하면서도 궁금증을 자아낼 만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천재적인 문장력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소설은 아무나 쓸 수 없는 건가보다.”
페이지를 거듭할수록 ‘너’라는 2인칭시점이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기는 했지만 구구절절 이어지는 구세대의 여성스러운 토속적 수다에 보편적으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소설로서의 흥미는 이것으로서 끝이었다. 이 글이 밀리언셀러가 된 것은 작품의 대단한 성공을 의미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결코 소설적 가치로 인한 것은 아니었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아마도 ‘아는 것이 병이다.’라는 말과도 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내가 안다고 하는 것이 사실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작품은 대단히 성공한 작품이다. 요즘처럼 문학작품의 책이 안 팔리는 시대에 밀리언셀러라니, 이를 두고 누가 감히 성공한 작품이라고 평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성공한 작품과 성공한 소설과는 차이가 있다. 이상한이야기가 될런지 모르겠지만 「엄마를 부탁해」는 분명 소설작품으로 발표, 판매되었지만 이것이 성공한 이유는 소설작품의 문학적 가치가 높아서가 아니라 작가의 명성과 함께 현란한 솜씨의 문장력으로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한 세대 지난 어머니의 희생정신을 그렸기 때문이 아닌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나는 소설의 발전을 위해서는 아직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서사) 이론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 이론은 아직까지도 서사의 문학작품에 있어 독자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행하게 하는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며, 이에 반하는 이론을 아직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건데, 시학에 있는 비극의 여섯 요소 중 서사에 관한 것으로서 그 중요도의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플롯
둘째, 성격
셋째, 사고력
넷째, 문체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이상섭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7.4.2., p.29, p.80)
이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플롯’이고 가장 덜 중요한 것은 ‘문체’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플롯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비록 언어 표현과 사고력 제시에 다소 결함이 있더라도 플롯과 사건의 조직이 되어 있는 희곡이 훨씬 더 바람직한 효과를 낼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비극의 가장 강력한 정서적 호소력의 수단인 ‘뒤바뀜’과 ‘깨달음’은 다름아닌 플롯의 요소들이다.
.... (중략) ....
그러므로 플롯이 제일의 원칙이며 비극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다.”(위 책 pp.30 - 31)
즉 서사 문학작품에서의 ‘뒤바뀜’과 ‘깨달음’은 독자의 카타르시스와 직결되어 있는 중요한 조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것들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하여 플롯은 짜여진다.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성공한 장편소설작품들을 보면 제시->복잡화->클라이맥스->대단원, 또는 발단->분규(전개 및 위기)->클라이맥스->대단원 등의 단계로 대부분 짜여져 있다. 그런 가운데서 이야기는 ‘뒤바뀜’과 ‘깨달음’을 수반하면서 클라이맥스를 이루다가 대단원으로 종료된다. 따라서 ‘뒤바뀜’과 ‘깨달음’은 플롯 구성의 핵심 요소라 할 수 있으며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복합적 플롯’이라 명명하였다.(위 책, p.41, p.43)
무릇 ‘깨달음’은 모든 문학작품에 있어 필수적 요소인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문학작품이 ‘뒤바뀜’을 수반하거나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시나 수필, 멜로드라마 작품의 경우 공감하는 ‘깨달음’은 있으나 ‘뒤바뀜’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들 작품에서는 구태여 클라이맥스를 필요로 하지도 않으며 궁극적으로는 플롯 자체도 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다르다. 소설에서 ‘뒤바뀜’과 ‘깨달음’이 수반되지 않는 플롯의 작품은 소설적 가치가 절하될 수밖에 없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것이 없는 단순한 플롯 중에서도 특히 나쁜 것을,
“단순한 플롯과 행동을 다룬 작품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은 에피소드 식이다. 여기서 말하는 에피소드 식이란 여러 에피소드들이 개연적이지도 필연적이지도 못하게 연속되는 것을 말한다.”(위 책, p.39)
라고 하면서, 복합적 플롯의 3요소가 중요한 이유를 다음과 설명하고 있다.
“비극적 모방은 하나의 완전한 행동 뿐 아니라 두려움과 연민을 일으키는 사건들을 보여주므로 사실들이 기대를 벗어나면서도 서로 필연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일어날 때 가장 효과가 크다.”(위 책, p.39)
그렇다면 다시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작품을 보건데, 이 작품에서 ‘복합적 플롯’이라고 내세울만한 것을 나는 찾지 못하였다.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나쁜 플롯이라고 정의한 여러 에피소드들의 개연적이지도 필연적이지도 못하게 연속되는 ‘에피소드 식’의 이야기만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려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작품은 ‘성공한 소설’이라기보다는 ‘성공한 드라마’의 양식이라고 평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이 독후감의 제목을 <가장 성공한 작품에 대한, 가장 잘 못쓴 독후감>이라고 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