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수 없는 꿈_03

베트남인들의 한국 이민 개척사

by 이종섭

제1부. 이상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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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 이 [제1부. 이상한 전쟁]의 이야기는 실화를 소설기법을 통해 조금도 거짓없이 그대로 기록한 것임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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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가냘픈 신음소리


아침부터 보안부대의 첩보가 11중대에 제공되었다. 내일 쫌 혼바산 방향 150고지 앞으로 적군 병사가 이동할 것이라고 하였다. 회의 끝에 이번에도 작전은 1소대에 배당되었다.

이에 따라 오후 저녁식사를 마치고 4박5일 예정의 매복 작전 준비를 위해 막사 옆으로 제1소대장, 무전병, 전령, 위생병과 1분대 8명, 2분대 8명 도합 총 20명이 집합하였다. 군장을 점검하고 보고를 끝낸 다음, 날이 어두워지자 소대장의 출발명령에 따라 철조망 문을 열고 작전지역을 향해 행군을 시작하였다.

컴컴한 천지를 노랗게 물들이는 조명탄 불빛아래 앉았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반나이 강을 건너 세 시간가량 지나니 또 다시 실 강이 나왔다. 두 시간 전부터 내리던 빗방울은 제법 굵어졌다. 강은 폭이 4미터 정도로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깊이는 꽤 깊어 보였다. 우선 부대원들이 앉아 주위 경계를 하는 가운데 첨병이 먼저 강을 건넜다. 소총만 높이 치켜든 채 머리까지 물에 잠겼다가 다시 올라 솟았다. 장시간 행군으로 인해 50~60kg이나 되는 짐을 짊어지고 비까지 맞은 상태라서 무척 지쳐있었다. 다시 강둑을 오르기가 힘에 겨웠던지 물 쏟아지는 소리가 꽤 컸다. 이곳은 이미 적의 활동지역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지역이므로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다. 다른 대원에게 다시 한 번 죽을힘을 다해 소리 내지 말고 올라가라고 지시한 후, 부첨병을 건너보낸 다음 분대장을 포함한 지휘조가 건너가 경계를 하는 가운데 소대장과 나머지 대원들까지 모두 건넜다.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었으나 이미 자정을 넘어서고 있는 것 같았다. 어둠속 공포는 갈수록 커져만 가는데, 앞에 웅장한 검은 산이 앞을 가로막아 서 있었다. 목표지점에 거의 다 다다른 것으로 짐작되었다. 나무 몇 그루가 있고 허리까지 자란 풀이 숲을 이룬 지점에서 지 하사는 행군을 정지시키고 소대장에게 다가가 작전계획을 상의하였다. 목표지점은 앞 산 150고지의 2부 능선이었지만 산 아래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나마 길이 난 흔적처럼 느껴지는 것이 있었으므로 이곳에서 하루를 묵고 다시 목표지점에 가기로 하였다.

땅은 모래밭이었다. 나무를 은폐로 하여 호를 파고 서쪽부터 2명씩 1개조로 하여 매복을 시작했다. 낮을 지나 밤이 되면 다시 이동해야 하므로 클레모어는 설치하지 않았으나 매복조마다 전기선으로 된 신호선은 연결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굵어진 빗방울은 폭우로 변하여 강물이 범람한 듯 하였다. 물은 호를 메우고도 계속 차올라 앉은 상태에서 허리까지 찼다. 주위가 온통 물바다였다. 최 상병은 속이 거북하였다. 소변은 그렇다 치고 대변을 보아도 땅에 묻을 수가 없고 나오는 즉시 물에 떠올라 등에 바싹 달라붙었다. 쿠린 냄새가 심하게 풍겼다. 하는 수 없이 먹고 남은 C레이션 깡통에 담아 배낭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물속에서 교대로 보초를 서면서 취침에 들어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지 하사는 더위에 깨어보니 물은 모두 빠지고 보초병마저 잠이 들어 있었다. 보초병을 깨운 다음 주위를 살피러 한걸음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이때였다.

우측 2시 방향 100여 미터 지점에서 풀섭 위로 움직이는 물체가 언뜻 보였다. 풀을 살며시 헤치고 관찰해보니 적병이었다. 그의 뒤로 5~10미터 간격을 유지한 채 세 명이 더 따라오고 있었다. 급히 뒤로 돌아서 보초병 팔에 묶인 매복조 연결 신호줄을 두, 세 번 잡아당겼다. 그러나 되돌아오는 반응이 없었으므로 신호가 전달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보초병에게 경계를 시키고는 다시 살금살금 앞으로 나아가 때를 기다렸다.

소름끼치는 침묵 속에서 긴장은 압축되어 갔다. 적군 첨병이 소총과 끈이 달린 가방을 양쪽 어깨에 나누어 맨 채 앞으로 지나갔다. 또 다시 몇 초가 지나자 다시 두 번째 적군이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가슴을 향해 겨눈 소총의 자물쇠가 살며시 풀렸다. 동시에 총살을 향한 방아쇠가 당겨지고 말았다.


“탕!”

한 명이 털썩 쓰러졌다. 그러자 먼저 지나갔던 적군이 깜짝 놀라 방향을 잃고는 지나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며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1시 방향 50미터지점에 달아나고 있을 때 또 다시 총구에서 한 방의 불을 뿜었다.

“탕!”


총알은 예광탄이었으므로 그의 머리로 정확하게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꼬꾸라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먼저 쏘았던 적군 쪽을 향하여 연발사격을 한차례 더 가하였다. 숲에 가려 시체가 보이지를 않아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수류탄 한 방을 던지자 굉음과 함께 살점 몇 조각이 앞으로 날아와 떨어졌다.

아군 병사들은 이제 모두 일어나 소대장과 2분대장의 지휘하에 일부는 경계를 서며 일부는 멀리 달아나는 나머지 두 명의 적군을 향해 사격을 가하였다. 그 중 한 명은 부상을 당한 채 쓰러졌다가 일어나 달아나기를 몇 차례 반복하고 있었으나 추격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이제 2분대장에게는 경계병 배치를 부탁하고 소대장에게는 산기슭 앞으로 포병의 연막탄 사격요청을 부탁하였다. 전과확인을 위해 수색을 하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 하사는 몇 발의 하얀 연막탄이 산기슭 아래서 폭발하며 연기가 피어오르자 분대원들을 거느리고 먼저 예광탄에 맞은 적군을 향해 수색하여 나아갔다. 예상위치에 다가섰으나 어쩐 일인지 신음소리가 들리지를 않았다. 순간 이상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즉시 수색대원들을 그 위치에 앉히고는 숨을 죽이며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바로 옆에서 가냘픈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풀을 제치고 확인해보니 총알이 머리를 정통으로 뚫어 부풀어 오른 골이 하얗게 밖으로 새어 나와 있었다.

다시 한 번 머리에 소총을 겨누어 확인사살을 수행하였다. 마지막 숨통까지 끊어지자 분대원들이 서둘러 뒤처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면도칼을 미리 준비하여 가지고 온 까닭에 몸체에 붙어 있는 성기를 통째로 몽땅 도려내기 시작하였다. 병사는 숙달된 정육점 기술자처럼 능숙한 솜씨로 척척 살을 베어 나갔다. 온기가 채 식지도 않은 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상태 그대로 C레이션 깡통에 집어넣어 짐을 챙겼다.

나머지 한 구의 시체마저 찾으려고 뒤를 돌아서니 이미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소대장은 철수를 지시하였다. 다시 분대원들을 정렬시켜 후방을 경계하면서 선발분대의 뒤를 따라갔다. 또 다시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를 맞으며 부대에 도착하자 작전은 종료되었다.

다음날, 지 하사는 노획물을 확인하러 중대본부에 가서 보니 소총은 놀랍게도 한국군의 것과 똑같은 M16이었다. 보안을 담당하는 중대본부 병사의 말에 따르면, 베트콩들의 병기와 탄약에 대한 공급은 주로 형식적 적군인 월남의 민병대로부터 받는다고 하였다.

이어 그 옆에 있는 또 하나의 노획물인 가방을 열어보니 마을의 가족에게 배달되는 베트콩의 편지들이었다. 전에 김 하사가 말했듯이 베트콩들은 이 근처마을 농민들의 가족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낮에는 농민이라 해도 밤이 되면 베트콩의 가족으로서 협조자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양민은 어디에도 없다는 김 하사의 말, 그 말을 물증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7. 천문학적 패배


인민위원장은 대원들을 앞에 앉혀놓고 훈시를 계속하였다.


“남베트남 티우(Thieu, 남베트남 대통령)는 고 딘 디엠과 다름없는, 외세에 의존하는 반동세력이다. 원수!

더러운 발바닥에 짓밟혀진 저 아래 드넓은 벌판을 보라. 우리 남베트남해방민족전선은 저 옥토를 일구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티우 일당과 외세를 몰아내는 날까지 피의 전투를 계속할 것이다.”


짧은 연설을 마친 위원장은 지도를 펴고 이번에 수행할 작전지역현황과 작전계획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76고지와 150고지 중간지점의 4부 능선쯤에 진지를 구축한다. 이곳 아래는 우리가 주민과의 소통을 위해 왕래하는 유일한 길목으로서, 한꾸웍놈들이 자주 매복을 하여 우리를 괴롭히는 곳이다. 따라서 이번 작전은 한꾸웍 놈들이 다시는 접근을 못하도록 따끔한 맛을 보여주기 위한, 즉 매복에 대비한 역매복 작전이다. 질문 있나?”

“...”

“구체적인 내용은 현장에 도착하여 다시 설명할 것이다. 출발!”


위원장은 이 부근 산악 지리에 밝은 훙을 앞세우고 바위 틈새로 난 길과 정글로 은폐된 길을 따라 이동하였다. 모두 신발을 벗은 채였고 어두운 색의 T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소총과 실탄, 물과 간단한 식량이 짐의 전부였다. 맨 뒤에 따르는 Minh은 소총 대신 남베트남 민병대에게 돈을 주고 매수한 M60기관총을 메고 따랐다. 대원들은 가시가 돋은 덩굴나무에 의해 얽기고 설긴 정글을 뚫고 지나면서도 사람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결코 풀을 자르거나 가지를 꺾는 법이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글을 헤치고 가던 도중 위원장이 신호를 하자 훙은 좌, 우 거리를 살피더니 나뭇가지로 은폐된 바위와 바위 사이에 끼어 있는 커다란 돌 하나를 제꼈다. 그러자 거기에는 사람 하나 겨우 빠져 들어갈 정도의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모두 그 구멍으로 들어가니 그곳은 깊이 5미터 정도나 되는 땅굴이었다. 대원 5명이 몇 일간이라도 기거하기에 충분한 넓이였다.

굴의 한쪽 구석을 더듬거리다가 뚜껑 같은 것을 여니 쌀알이 남아있는 식량 담는 토기가 묻혀 있었다. 가져온 식량을 대부분 그곳에 담은 다음, 다른 구석에서 같은 방법으로 뚜껑을 찾아 열어보니 그것은 나뭇잎과 모래가 섞인 변기통이었다. 그 변기통을 끄집어내자 또 다른 통로의 구멍이 나왔다. 대원들은 그 구멍을 통해 방향이 다른 출구로 빠져나와 구불구불 30여 미터를 더 내려가다가 바위 틈새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이 바로 대원들이 찾던 목표 지점이었다.

자리를 잡은 곳은 바위로 된 자연적인 진지였지만 아래쪽 늪지대를 포함한 넓은 평야지대를 향해 기관총을 걸기에도 적합하였고 전방에 대한 적절한 시야까지 충분히 확보되어 있는 반면, 겉으로는 정글이 덥혀있어 외부로부터 전혀 노출되지 않는 훌륭한 천혜의 장소였다. 산 아래 평지와의 거리는 높이 약 30미터, 경사는 60도 정도로 급한 편이었다. 위치를 점검한 대원들은 임시로 부비트랩을 설치한 후 다시 30여 미터를 후퇴하여 미리 보아 두었던 굴속으로 들어가 모두 취침에 들어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위원장이 깨워 눈을 뜨니 굴 밖으로 소나기가 한차례 지나가는 새벽시간이었다. 모두 대충 준비한 음식을 먹고 비가 그쳐갈 때 Minh이 기관총을 메고 앞장을 서며 굴을 나와 진지로 이동하였다. 어제 임시로 설치했던 부비트랩을 제거한 후 숨을 죽이면서 기관총을 설치하고 주변을 확인한 다음 잠시 기다리니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거치시킨 기관총에 손을 얹고 있는 Minh에게 위원장이 아래 늪지대를 가리키며 속삭이듯 말했다.


“저 아래 산기슭에서 30미터 쯤 떨어진 곳이 우리 대원들이 이용하는 길이다. 그래서 한꾸웍 놈들은 이 근처를 종종 노린다. 따라서 우리는 그 길을 잘 감시해야 한다.”

“아, 네... 근데 저 아래 늪에 있는 풀이 이상한 것 같아요. 원래 그런가요?”


Minh이 늪지대를 가리키는 곳을 자세히 보니 종 방향으로 난 기다란 선이 그어져 있는 것 같았다. 날이 밝아오면서 그 선은 점점 뚜렷하게 나타났다. 늪지대 한 가운데의 풀이 선을 따라 누워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쉿! 맞아, 무슨 자국 같기도 하고... 아니, 아닌 것 같기도 하다만... Minh은 사격을 준비하고 훙은 두 명을 데리고 조용히 내려가라. 왼쪽부터 저 선이 끝나는 지점 좌측 20미터까지 수색해 봐라. 수상한 것이 발견되면 가차 없이 사격을 퍼붓고 얼른 올라와라.”


훙 일행은 지체 없이 아래로 내려가 자세를 낮추고 개인거리를 5미터씩 유지하면서 산기슭 끝자락을 훑기 시작하였다.

이때, 새벽녘 몇 시간 전 야음을 타고 들어와 잠복한 청도깨비 11중대 2소대의 맨 왼쪽 매복조 신 일병은 여명이 걷히고 전방의 시야가 트이면서 진입해 들어올 때 발자국에 짓눌린 풀들이 물속에 그대로 누워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매우 걱정이 되었다. 같은 조 유 병장을 깨우려 몇 번 흔들어 보았으나, 일어나기는커녕 손을 뿌리치고 인상을 찌푸리면서 투덜거리는 바람에 찍소리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왼쪽으로부터 수색하며 다가오는 베트콩 훙의 일행까지 발견하게 되니 까무러칠 정도로 가슴이 철렁하여 오금도 제대로 펴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더더군다나 베트콩들이 클레모어의 위치에서 한참 뒤쪽으로 수색을 하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지라 클레모어마저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클레모어라는 것이 원래 앞쪽 방향으로만 산탄이 퍼져나갈 뿐, 뒤쪽으로는 치명적이지 않은 후폭풍만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이제 마지막 남은 방법으로 다른 대원들에게 알리기 위해 신호줄을 살그머니 당겨보았지만 불행하게도 이 또한 허사였다. 비를 맞으며 긴 시간 행군을 계속한 탓에 너무나 피곤했던 각 매복조원들이 손목에 묶어야 할 신호줄을 나무에 묶어 놓고 모두 깊은 잠에 빠져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신 일병의 위기의식은 커져가다 못해 이젠 심각한 공포로 변해버렸다. 긴장한 탓인지 갑자기 오줌까지 마려워졌다. 지금 이 순간은 분대장, 소대장이 아무리 중요한 명령을 내린다 해도, 설령 그것을 어기면 총살을 당한다 해도, 저 앞에 있는 적에게 총을 쏘는 것 이외에는 의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가히 무아지경의 상태 그대로였다. 엄지손가락은 자신도 모르게 이미 소총의 자물쇠를 2단까지 밀어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상대가 발을 헛디디며 마치 자신을 발견 한 듯 순간적으로 주춤거리자, 솥뚜껑보고 놀란 자라가슴처럼 기겁을 하며 검지손가락에 걸려있던 방아쇠를 부러져라 잡아당겨버렸다.


“따다다다다다당”


실전 전투경험이 전무하였던 신 일병은 조준할 생각은 감히 하지도 못하고 두 눈을 반쯤 감은 상태에서 탄창에 들어있는 18발의 실탄을 모두 쏘아대었다. 그러나 속사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는 신 일병의 조준하지 않은 연발사격이 목표물에 명중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수색하던 베트콩들이 쏘아대는 총알만 빗발치듯 날아오고 있었다. 그때서야 다른 매복대원들도 벌떡 일어나 다급한 상황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매복진지 부근에 베트콩이 쏜 B40 적탄통 한 발이 폭발하면서 물기둥이 하늘로 높이 치솟았다. 드디어 소대장은 급히 철수를 명령하였다.


“철수, 모두 철수하라! 빨리!”


상황은 너무나 다급했다. 자칫 전멸당할 위기에서 반격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소총만을 든 채 무작정 왔던 길을 다시 뛰어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었다. 각 분대장들도 부하들을 보살필 시간 없이 무작정 “철수, 철수!” 하고 소리치면서 선착순으로 뛰어 나갔다.

산 중턱 진지로 베트콩 수색대원들이 다시 올라오기 시작하자 Minh은 달아나는 매복조를 향해 기총소사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Minh이 기관총 사격경험이 처음이라서 매우 서투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늪에 있는 풀이 허리 정도의 높이였으므로 엎드릴 경우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일어서거나 달아나게 되면 금방 눈에 뜨여 어정쩡하게나마 사격은 할 수가 있었다. 따라서 맞던 안 맞던 방향을 맞춰 무차별적으로 위협사격을 가하고 또 가하였다.

얼마를 뛰었을까? 약 400여 미터 쯤 뛰었다고 생각될 때 매복조들은 퇴각을 멈추고 인원파악에 들어갔다. 그러나 아무리 세어 봐도 2명이 부족하였다. 신 일병과 유 상병이 안보였다. 따라서 이들은 그곳에 숨어 있거나 피격 당했을 것이 분명하였다. 설령 모두 사망했다 해도 이곳은 한국이 아닌 베트남이므로 전우의 시체를 여기에 방치하여 짐승과 파리 떼의 먹이가 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시체라도 찾아와 반드시 고국으로 돌려보내야만 하는 것이었다.

급기야 소대장은 중대장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병력과 화력의 지원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적은 산 능선의 높은 생지(生地)에 위치해 있고 아군은 산 아래 늪지대인 사지(死地)에 처해있어 아무리 많은 숫자의 병력을 투입한다 할지라도 사상자만 양산될 뿐 효과적인 작전을 수행하기는 어려웠다. 더군다나 베트콩은 이쪽 부대의 위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반면, 매복대원들은 베트콩 대원들이 대충 어디쯤에서 총을 쏘고 있다고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 정확한 위치나 병력의 규모 등은 파악조차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들은 위치가 탄로 날 것에 대비하여 총알에 예광탄을 섞어 사용하는 법이 없었다.


‘갖출 건 다 갖춘 정예 전투부대가 오합지졸에게 철저히 농락당하다니...’


중대장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대대장과 상의한 끝에 작전을 대폭 확대하기로 결정하였다.

우선 10중대 병력을 수송용 헬기를 이용하여 산 위로 투입함으로써 베트콩 거점의 후방을 협공해야 한다. 다음 공격용 헬기 ‘건십’을 지원 요청하여 적의 중요 요소마다 로켓포로 괴멸을 시켜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협공 작전이 끝나면 매복부대는 공격부대로 편제를 바꾼 다음 같은 중대 3소대 병력을 지원받아 아래에서 진격함으로써 실종병사를 찾아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얼마 후 계획대로 작전은 시작되었다. 헬기 한 대에 10중대의 1개 분대 7~8명씩 탑승하여 총 6~7대의 헬기가 출동하였다. 우선 산 등성위에 높이 떠서 위험하다고 의심되는 곳에다 기총소사로 수천발의 총알을 퍼부었다. 한차례의 시끄러운 기총소사가 끝나자 적당한 위치를 잡아 랜딩을 시작하였다. 헬기 아래의 산 바닥은 평지가 아닐 뿐 아니라 수풀이 꽤 우거져있었으므로 헬기가 내려앉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따라서 높이 약 1미터 지점에서 차례로 뛰어 내려야만 하였다. 그러나 한 사람 씩 내릴 때마다 헬기는 점점 위로 올라가는 듯 했다. 마지막 분대원이 뛰어내릴 때는 높이가 1.5미터나 되었다. 완전군장을 짊어진 병사가 겁이 나는 듯 주춤거리자 분대장이 재촉하며 등을 두드렸다. 마지못해 뛰어내린 병사는 땅에 떨어지면서 고꾸라지듯 넘어졌으나 다행히 큰 부상 없이 일어서서 경계를 시작하였다. 그 뒤를 이어 분대장도 내려와 분대를 지휘하기 시작하였다.

랜딩작전이 모두 끝나자 태양은 이미 중천에 올라 낮 12시가 가까워 왔다. 11중대 2소대의 매복팀들도 3소대 병력을 지원 받아 공격 편제로 바꾸어 대기하고 있는 가운데, 하늘에서는 기다리던 공격용 헬기 ‘건십’ 두 대가 도착하여 공중화력을 지원하였다. 적당한 높이에서 교대로 원을 그리며 수만, 수십만 불($)짜리 로켓 등 값비싼 포탄을 무자비하게 퍼 붓기 시작한 것이다.


“씩쿵, 씩씩쿵, 꾸과과쾅! 쾅쾅!”


가공할 폭발음이 연속적으로 산야를 뒤흔들었다. 소대장이 위치를 알려줄 때마다 한 치의 오차 없이 서너 발 이상의 로켓이 검은 연기를 뒤로하고 요소요소 날아가 폭발하면서 정글 곳곳이 화염에 휩싸였다. 콩 복 듯이 쏘아대는 기관포탄의 큼지막한 탄피 수백 개가 우박처럼 헬기 아래로 주르르 쏟아져 내리며 시시각각 베트콩들의 심리를 압박하였다. 결국 가로 세로 각각 50여m 정도 넓이에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로켓과 기관포 등을 쏘아댄 것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 잡듯 적이 숨을 만한 거점을 모두 초토화시켰다고 판단했을 즈음 헬기는 돌아가 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늪지대에서 대기하고 있던 공격부대의 실종자 구출작전이었다.


“제1분대는 우측으로, 제2분대는 좌측으로 진격하고, 제3분대는 중앙 후방에서 지원분대의 임무를 맡는다. 자, 공격개시!”


진격명령이 떨어졌다. 늪지대의 풀은 허리 높이쯤 되고 물은 무릎 아래 정강이까지 찼다. 그러나 움직일 때마다 멎었던 기관총알은 다시 날아와 물에 떨어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우두두둑 들렸다. 2분대장은 화급히 소리쳤다.


“엎드렷!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라.”


첨단 공격용 헬기의 엄청난 포화에도 불구하고 베트콩 역매복팀은 조금도 타격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바위로 둘러싸인 천연적 요새는 첨단무기를 비웃으며 어떠한 방공호보다 튼튼하다는 것을 입증한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다.

몇 분 후 뒤를 돌아다보니 분대장 뒤에는 따라오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기관총 세례에 놀란 병사들이 늪의 물속에 엎드려 꼼짝도 않고 있었던 것이다. 고래고래 고함을 치자 잠시 따라오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앞의 조가 나아가지를 않았다. 분대장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두 명의 아군 병사를 구하기 위해 작전을 수행하고는 있지만, 다른 병사들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면서 빗발치는 기관총세례를 뚫고 전진할 만큼 이 전쟁, 이 전투가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는 수 없이 분대장은 무전기를 들었다.


“소대장님, 재 들은 이쪽을 빤히 내려다보면서 쏘고 있습니다. 10중대가 협공을 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상”

“알았다. 움직이지 말고 조금만 기다렸다가 공격하라. 이상.”


이때 랜딩을 마치고 수색명령을 기다리던 10중대가 드디어 산 아래로 내려오며 포위망을 좁히기 시작하였다. 8부 능선까지 내려오자 갑자기 기관총 소리가 멎었다. 베트콩의 역매복팀은 이제 작전의 성과를 충분히 거두었다고 생각하고는 한국군을 조롱하듯이 비밀통로를 이용하여 흔적도 없이 모두 퇴각해 버린 것이었다.

늪지대에서 진입을 계속한 2소대는 산기슭 끝자락의 매복했던 자리를 뒤지기 시작하여 두 전우의 시신을 모두 찾았다. 한명은 가슴과 옆구리에 AK총알 구멍이 있었고 또 한명은 오른쪽 어깨와 허벅지에 한 발씩의 기관총알 자국이 나 있었다. 오른쪽 어깨와 허벅지 총상의 경우 신속히 응급 초치를 한 다음 병원으로 후송했더라면 충분히 살 수도 있는 정도의 상처였다. 하지만 몇 시간동안을 고통 속에서 피 흘리며 헐떡거리다가 죽어간 병사는 이역만리 낮선 땅 늪지대에서 물에 퉁퉁 부은 채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고 있었다.

이날, 한국군이 쏟아 부은 작전의 경비를 계산한다면 아마도 미화 몇 백만 불은 족히 넘을 듯 보였다. 전투에 참가한 최정예병력의 인원도 중대규모가 넘었다. 이에 비하여 오합지졸에 불과한 서너 명의 베트콩들이 소비한 탄환의 값은 불과 몇 십 불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한국군 전사 2명이 전부였다. 그렇다고 그 지역을 어느 누가 완전히 장악한 것도 아니었으므로 결국, 씻을 수 없는 한국군의 치욕적인 패배가 다시 한 번 반복된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다.


‘병비익다야(兵非益多也)!’



8. 계곡에 울리는 베트콩의 진군가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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