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15살 무렵 소파에 누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으며 한국전쟁의 모습을 그려보곤 했다. 당시 만들어진 한국전쟁에 대한 나만의 해석과 삽화가 아직까지도 나의 어딘가에 남아있는 느낌이다. 고정된 이미지로 정착되었다고 할까. 전쟁 그 자체보다, 소박하고 잔잔하게 살던 사람들이 그 전쟁으로 인해 어떤 아픔을 겪었는지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 소설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통에 여자들에게 몹쓸 짓을 하려던 무장 군인에게 대범한 척, 쫄지 않은 척 대항해서 동생을 지켜냈다는 (그러고선 몸살이 나서 며칠을 앓았다던) 우리 외할머니의 전설 같은 이야기도 박완서 작가가 있었기에 나에겐 유독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녀의 소설은 한국전쟁을 이야기할 때 내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주는 화가같다. 나는 전쟁이 끝난 후 한참 지나 태어난 세대지만, 그 전쟁을 마치 가까이에서 지나온 것처럼 마음 한 구석이 아픈 건 박완서 작가의 소설 덕분이다.
오랜만에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집을 들춰보았다. 엄마가 되고나서 그녀의 에세이집을 다시 보니, 참 많은 것에 공감할 수 있었고 잔잔한 깨달음을 주었다.
흥미로운 점은, 세상에 나온 지 50년도 더 된 이 글이, 마치 어제 우리 엄마가 썼을 것만 같고, 아니 오늘 내가 쓴 글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으리만큼 지금의 상황과 많이 닮아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육아팁’이라는 이름으로 둥둥 떠다니는 수많은 정보와 조언들, 연구 결과들이 오히려 나의 육아를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꼭 필요한 정보만 알고 나머지는 내 아이에게 맞춰가면서 시행착오도 겪을 수 있는 것인데, 워낙 많은 정보들이 있다 보니 그 정보를 모두 섭렵하지 않은 채로 저지르는 시행착오는 다소 무지한 엄마라는 오명을 씌워버린다. 알고 싶지 않아도 알아야 하고, 모르고 못 따라가면 게으른 엄마가 되거나 불안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아이를 돌보고 키우는 즐거움에 집중해야 할 순간에 네이버 검색하고, 오은영 박사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대, 이건 저렇게 해야 한대… 등등 자꾸만 육아가 부담스러워졌던 것이다.
전문가가 영상물 2시간 이상 보여주지 말라고 했는데, 2시간 이상 보여주게 되어버린 날이면 그게 아이에게 어떤 악영향을 주지는 않을지 걱정에 걱정을 더한다. 사실 아이를 조금은 편하게 키워도 된다는 건 알고 있다. 주말엔 10시간 누워서 티브이 보고도 멀쩡하게 건강하게 큰 나 자신이 살아있는 증거인데, 자꾸만 홍수와도 같은 이야기들에 떠밀린다. 불안하다.
그런데 50년 전 박완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저렇게 아이들을 다루다간 큰일 난다느니, 문제아가 되는 복잡다단한 요인들, 아동심리학 입네 교육심리학 입네 하는 것까지 주워듣게 되어 터무니없이 박식해지고 말았다. 그 결과 우리 부모네들이 도달한 결론이란 아이들 기르기는 어렵다는 것, 요새 젊은이들이란 까딱 잘못 건드렸다간 어디까지 빗나갈지 모르는 위험한 폭발물 같은 것이라는 것밖에 없다. 이를테면 잔뜩 겁을 먹은 것이다.
(..) 아이들을 상전 떠받들 듯, 위험한 폭발물 취급하듯, 그저 조심조심 위해 받들어만 기르게 돼 버렸다. 이런 우리 부모들이 공통적으로 자식들에게 바라는 시시한 소망이 하나 있다. (…) “우리 엄마 아빠는 참 이해심이 많으시죠. 부모님이라기보다는 꼭 다정한 친구 같으세요.” 어쩌고 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1973년)
그렇지만 그 안에서 이끌어내는 깨달음과, 부모세대로서의 바람은 지금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듯하다. 차고 넘치는 정보에 자식을 키우는 건 더 겁나고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기성세대의 고질병에 도전하여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저력이 있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그 부분이 꽤 다른 것 같다(적어도 내 기준에는). 요즘 엄마로서 나는 아이들에게 거는 기대보다 미안함과 걱정이 훨씬 크다.. 환경 문제도 걱정이고, 점점 양극화되는 정치 환경, 살아가기 팍팍한 한국사회의 경쟁 문화, 역피라미드의 아래 세대로 태어나 윗세대 때문에 또 얼마나 세금을 많이 내야 할지, 그런 부분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아이들에게 어떤 변화와 개혁을 이끌어달라고 기대하기엔 그들에게 주어진 숙제가 너무 무겁다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겐 우리가 못하는 것을 능히 할 수 있는 저력이 있다. 팝송을 들으며 온몸을 들까불면서도 어려운 시험공부를 거뜬히 해낼 만큼 한가닥 맑은 정신만은 또렷이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 그러나 그들의 그런 모습은 우리 기성세대의 고질병 - 필사적인 외화 치레, 냉수 먹고 이 쑤시는 허식,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는 같잖은 점잖음 - 에 대한 일종의 도전인지도 모르지 않나. 그래 도전을 하려거든 철저히 해라. 속 빈 강정인 기성세대에게 너희들의 알찬 내실로 맞서거라. 그리고 답답한 일이 있거든 답답해하거라. 답답한 것과 맞서거라. 답답한 것을 답답한 줄 모르는 바보야말로 구제할 길 없는 바보가 아니겠는가. (1973년)
그리고 참 좋았던 부분. 부모로서의 의무,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 너무 공감한다. 갖고 싶은 물건을 벼르고 별러서 장만하는 재미가 곧 살아가는 행복 중 하나인데, 자식에게도 그런 즐거움과 기다림을 줄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원하는 것을 바로바로 품에 턱 하니 안겨주는 것보다, 그 원하는 것을 장만하기까지의 재미를 알게 도와주고 싶다.
부모들이 이렇게 자식 결혼시키느라고 빈털터리가 되다 못해 빚까지 져가며 남들에 비해 빠지지 않게 해 주고 싶은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고 그 사랑하는 마음이란 소박하게 풀이하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그럼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하게 사는 걸까. 나는 어려운 것은 잘 몰라도 사는 행복 중에서 필요하고 갖고 싶은 물건을 벼르고 별러서 장만하는 재미, 또 그렇게 해서 장만한 것에 대해 갖는 애착 등도 꼭 맛볼 만한 중요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자로서, 엄마로서, 직업인으로서의 삶에 대하여.
커리어에 많은 욕심을 냈던 건 아니었지만, 그동안 쌓아왔던 것들이 아까워 직업인으로서의 나를 놓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남편의 해외 근무로 어쩔 수 없이 지금은 휴식기를 갖고 있다. 처음엔 출근 안 하니 좋고, 아이를 내 방식대로 욕심껏 돌볼 수 있으니 좋았는데 사실 어느 날은 괜히 아깝기도 하다. 내가 두고 버리고 온 것들이 아깝고, 다시 돌아갔을 때 그만한 일자리를 못 구할 테니 아쉬운 마음도 크다. 그런 마음이 들 때 내가 여자라서 다행이다,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이대로 그냥 나는 엄마로, 아내로 살면 되지, 워킹맘 진짜 힘들었잖아, 이렇게 나를 두둔한다. 여기서 그만 멈춰도 상관없는 이유를 꾸역꾸역 만든다. ‘여자’라는 이유로 말이다.
남자와 여자는 평등해야 한다고 늘 외치지만 사실 어느 순간엔 난 여자니까, 엄마니까, 하면서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런 마음이 다소 비겁한 걸까, 내가 남자였어도 이렇게 경력단절에 대해 관대했을까 생각하던 차에 아래 글을 보았다. 5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나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이렇게 글쟁이임조차 두렵고 힘에 겨워 잠 안 오는 밤 나는 나다운 비겁한 탈출을 꾀한다. “흥. 언제적 내가 글 써먹고 살았나” 이렇게 생각하면 한결 속이 편해진다. 하긴 한때 작가였다만 사람은 보기에 딱하지만 여자는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주부라는 꽤 괜찮은 평생 직업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 (…) 별 감동도 별 야심도 없었지만 단 하나 여류작가는 안 되리라. 어떡하든 그냥 작가가 돼 보리라 다짐했었다.(…) 도달한 결론이 겨우 여자라는 것으로 어떤 탈출구를 삼아보려는 거니 한심할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이런 내가 싫다.
이런 내가 쏟아 놓은 비비 꼬인 말들과 비겁하게 복면한 말들이 싫다. (1974년)
반세기를 뛰어넘어 그녀의 에세이에서 따스한 위로를 받아본다. :)
아이를 키우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라고,
여자라는 이름으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비겁하지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우리 모두 비슷한 생각과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고.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위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