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오히려 가끔 고기를 먹어야 기력이 나는 사람이다. 하지만 네 식구 가운데 고기를 가장 조금 먹는 사람이기도 하다. 아이들 급식표에는 고기 반찬이 빠지지 않고 올라왔고, 반려도 점심으로 다양한 고기를 먹는다. 집에서 일하는 나는 삼시세끼 같은 반찬을 먹을 때가 더 많다. 여기에 다른 걸 덧붙인다면 달걀부침 정도라고나 할까. 가끔 밥하기 귀찮을 때 도서관에서 밥을 사먹었는데 그때도 고기반찬이 빠지지 않았다.
어릴 때는 고기보다 생선을 더 많이 먹고 자랐다.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를 구워 먹기 시작한 건 어른이 된 다음부터였다.
우리가 육식 동물들을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그들이 나쁜 환경에서 살 확률이 높아진다. 찾는 사람은 많으면 어떻게든 좁은 공간에 집어넣고 키워야 하니까. 식용 동물들이 사는 환경이 나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완전히 끊을 수 없는 딜레마를 느낀다. 콩으로 만든 콩고기를 먹어본 적 있는데, 그것으로만 먹기는 힘들 것 같았다. 이 걱정을 가장 많이 한 것은 한때 채식을 했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힌 다음부터였다.
아이들 둘 다 아토피가 심해서 피부과에 다녔는데, 그때 받은 식이요법 처방이 괴의했다.
일주일에 한 번만 달걀을 포함한 육식을 하고, 일주일 내내 채식만 한다. 밥은 당연히 잡곡밥이며 일체의 밀가루와 가공식품을 끊는다. 그리고 피부과 약을 먹는다.
의사가 나를 슬쩍 보더니, 엄마도 건성이 심한 피부인 듯한데 내버려두지 말라고 했다.
아이들은 경악했다. 어떻게 일주일 내내 채식을 하며, 밀가루와 고기를 먹지 말라는 말인가. 그렇게 하면 뭘 먹는단 말인가!
나는 애들보다 더 심각했다. 도대체, 뭘 먹지? 뭘 반찬으로 올리지? 난감 그 자체였다.
달걀을 못 먹으니 달걀이 들어간 각종 전도 안 된다. 가공식품이 안 되니 소시지, 떡갈비, 너겟 모두 안 된다. 각종 빵, 라면, 국수, 과자 모두 금지다.
바쁠 땐 가공식품을 이용해서 휘리릭 반찬을 만들었는데 그게 안 된다는 말이다. 소시지 데쳐서 초고추장에 버무리면 그야말로 기가 막힌 반찬인데!
“그럼 선생님도 그렇게 드세요?”
너무 기가 막혔던 내가 묻자, 의사는 자신은 아토피가 아니지만 출근 전에 토마토 한 개와 두부 반 모를 먹고 온다고 했다. 두부 반 모를 그냥? 부치지 않고 생으로? 우리 애들은 그렇게 안 먹는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밥상을 차려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불교 신자도 아닌데, 살생을 금해야 하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먹을 수 있는 육식은 멸치뿐이었다. 뭘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따지자, 의사는 한 번 먹어보라고 했다. 속는 셈 치고 두 달 정도만 해 보라고. (사실은 일 년 이상 하면 더 좋다고 했지만)
내 일 하느라 바쁜 사람이 식단을 조절해서 짜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래서 다시 도서관에서 ‘사찰음식’을 만드는 요리책들을 빌려왔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당시 사찰음식에 관한 요리책들은 모두 정성이 아주 많이 들어가거나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이 많았다. 그걸 내가 차리려면 부엌에 매달려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간단한 해결 방법을 찾았다.
채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사람이 단조로운 먹을거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온라인에서 투덜거리자, 어떤 사람이 댓글을 달았다. 두 사람 모두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주고받는 대화가 자못 진지했다.
“정말 힘들거든요. 제가 나물을 잘 만드는 편도 아니고요, 그렇다고 샐러드만 먹기에는 물리고요.”
“님, 그러지 말고 구워드세요. 웬만하면 다 맛있습니다.”
구워먹으라고? 채소를?
그래서 프라이팬에 기름을 얇게 바르고 채소를 구웠다. 감자, 버섯, 양파, 가지, 두부 등 꽤 많은 것을 구웠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도토리묵이었다. 도토리묵을 구우면 식감이 묵 누룽지처럼 변한다. 부드럽고 탱탱한 도토리묵이 열에 딱딱하게 변하면서, 겉은 바삭하고 안은 부드러운 상태가 된다.
이렇게 구워진 채소들을 간장 양념에 찍어먹는다. 간장 양념은 간장 한 큰술, 설탕 반 큰술에 참기름과 참깨를 섞어서 만든다. 여기에 기호에 따라 고춧가루나 마늘을 섞어서 먹기도 하고, 생 와사비나 연겨자를 살짝 풀기도 한다. 어른들이 먹는다면 청양고추를 다져서 넣어도 좋다.
일주일 동안 투덜거리며 채식을 하던 아이들은 금요일쯤 되면 피부가 깨끗해졌다가, 일요일에 육식을 하면 또 가려워서 긁는다. 그러다 월요일부터 채식을 하면 다시 말짱해졌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보니 아이들은 저절로 자신들에게 안 맞는 음식들을 걸러내기 시작했다. 요즘은 가리지 않고 다 먹는 편이지만, 요즘도 어떤 과자나 즉석식품을 먹었을 때 몸에서 나오는 반응이 조금 이상하다면 다음에는 먹지 않는다.
요즘 다시 식탁을 구성해야 할 일이 생겼다. 그래서 고민이 깊어졌다. 단백질과 채소는 풍성하게, 탄수화물 양은 줄여야 하는데 그 또한 쉽지 않다.
어떤 식탁을 구성하든, 건강하게 오래 같이 살 수 있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들 아프지 않게, 잘 버틸 수 있도록 식탁을 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