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독자

by 김하은

어린이책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내 글을 처음 읽는 독자는 우리 애들이었다. 처음에는 가족이 쓴 글에 신기하다고 반응했다. 그런데 거듭 읽게 되자 차츰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응, 재밌는 것 같아.”

“좀 신기한 것 같아.”

처음에는 재밌고 또 써 보라고 했던 애들이 점점 내 글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 또한 이런 경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잘 몰랐던 터라 아이들의 눈치를 보았다.


아이들은 한 집에서 시간을 같이 보내는 이들이라 나와 많은 부분을 공유하는 독자였다. 내가 분노하는 사실에 비슷하게 반응했고, 내가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것을 파악한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별로 마음에 안 들어도 이건 아니라고 딱 잘라서 말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가 몇 해 지나가면 아이들에게 내 글을 읽히는 게 득이 되지 않는다.


글이 출간되기 전, 원고 상태일 때 가장 좋은 최초의 독자는 객관적으로 살펴줄 사람이다. 어느 부분은 과장되었고 어느 부분은 이해가 안 되고, 여기는 통째로 지웠으면 좋겠다고 말해줄 냉정한 관찰자가 필요하다.

냉정한 관찰자의 첫 번째 대상은 바로 작가 자신이다. 글을 쓴 다음에 약간 거리를 두고 그 글을 객관적으로 볼 시간을 갖는다. 그런 다음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나 어색한 부분을 고친다. 그런 다음, 어느 정도 괜찮은 상태라 생각하면 그 다음 관찰자에게 넘긴다.


그 두 번째 대상이 편집자다. 나는 편집자의 시각을 믿는다. 작가는 내 시각에 매몰되어 있을 수 있지만 편집자는 여러 작가들의 원고를 살피기 때문에 넓게 바라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쓴 글이 지닌 오류도 재빨리 잡아낼 수 있다. 그래서 편집자가 지적하는 부분을 대부분 수용한다. 물론 초반에는 그렇게 하지 못해서 책으로 만들지 못한 원고들도 있다. 요즘은 나 또한 말귀를 알아듣게 되었고, 편집자들이 바라보는 냉정한 관찰자의 시각을 수용한다. 그러면서도 내 글이 드러내고자 했던 이야기는 꽉 잡아야 한다. 잘못된 오류는 수정하지만, 원래 내가 쓰려던 이야기의 고갱이는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 중요한 일을 하는 두 축이 바로 작가와 편집자다.


요즘도 나는 내 글을 우리 애들에게 읽힌다. 대신 출간 전 상태가 아니라 출간된 상태로 읽게 한다. 애들이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은 오타 찾기다. 몇 번을 교정하고 수정해도 안 보이던 오타가 애들 눈에는 딱 들어온다. 그 다음으로는 “재밌다.” 정도만 말한다. 도도하고 말을 아끼는 독자들이라 이 분들에게 최초의 독자를 맡기면 나 혼자 애를 끓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는 같이 일하는 편집자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어딘가 이상하거나 틀렸거나 고쳐야 할 부분이 있으면 뭐든 말씀하세요.”

글의 뼈대만 남기고 다 고친 경우, 주인공의 역할이 바뀐 경우, 시점을 바꾼 경우, 챕터의 순서를 바꾼 경우, 그림에 맞추어 글을 고치는 경우 등 온갖 경험을 다 겪었다. 그렇게 너덜너덜한 경험을 거듭해야 책 한 권이 나온다. 그런 책이니 사랑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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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최초의 독자를 만나기 위해 글을 쓴다. 이번에 만날 최초의 독자는 누구일지 몹시 궁금해 하면서 자판을 두드린다. 프리랜서인 내게 최초의 독자는 늘 바뀐다. 고정된 출판사와 일하지 않는 나는 최초의 독자를 늘 새로 만난다. 그 최초의 독자에게 내 글이 잘 읽힐 수 있도록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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