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냉장고가 고장났다. 우리 가족들은 김치를 아주 좋아하고, 특히 신김치를 활용한 음식들을 좋아한다. 신김치와 돼지고기 목살 혹은 닭가슴살을 넣고 양념해서 끓이는 김치찜, 신김치 볶음, 김치볶음밥, 김치찌개 등 여러 가지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소중한 김치를 지킬 수 없다니!
망했다.
서둘러 애프터서비스를 신청하고, 김치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냈다. 서서히 작동이 멈추었던 모양인데 요즘 내가 바빠서 잘 살피지 않았더니 냉기가 다 사라진 상태였다. 그러니 김치 상태 또한 썩 좋지 않았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부엌은 늘 문제를 던진다.
어떤 날은 먹을거리가 없어서, 어떤 날은 사놓은 재료가 상해서, 혹은 너무 많이 만들어서, 아니면 많이 만들었는데 맛이 없어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매 끼니마다 다른 음식을 만들 수 있다면 최상이겠지만, 그 또한 시간을 많이 쓰는 일이다.
나는 주로 오전에 하루치 반찬을 만든다. 때로는 그 반찬으로 일주일을 먹는다.
매일 아침에 냉장고 채소 칸을 확인하고, 남은 채소로 할 수 있는 음식들을 구상하고, 아침을 먹는 동안 불려두거나 절인다. 그런 다음 아침을 먹고 설거지하기 직전에 반찬을 만든다. 그렇게 한 다음에는 부엌에서 탈출한다. 점심과 저녁 설거지는 아이들이 맡아서 한다. 요즘처럼 비대면 강의로 전환한 경우에는 집에 성인 여러 명이 늘 함께 있는 날이 많다.
그런데 이번처럼 김치에 문제가 생기면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먼저 신김치 상태를 살폈다.
그냥 먹을 수 있는 것들을 한 데 모으고, 정도에 따라 번호를 붙였다. 상태가 좋은 것부터 시급하게 먹어야 할 것, 도저히 그냥 먹을 수 없어서 헹궈 먹어야 할 것 등으로 분류했다.
잠깐 고장난 김치냉장고 덕분에 저녁에도 부엌에 묶여서 김치를 정리했다.
특히 양념을 씻어낸 묵은지가 꽤 많아져서, 이 활용도를 찾아야 했다. 먼저 씻기 직전에 김치국물부터 점검한다.
붉은 국물일 경우에는 밀가루와 섞어서 장떡을 부친다. 냉장고에 있는 채소들이나 버섯을 썰어넣어서 함께 부치면 더 좋다.
색이 많이 변한 경우에는 국물을 쓰지 않고 어쩔 수 없이 버렸다. 이걸 그냥 버리면 수질 오염이 극심해질 것이라는 걸 죄책감을 느끼면서…….
씻어낸 묵은지로 여러 요리를 했다.
당장 먹을 수 있는 방법으로 씻은 묵은지에 들기름을 살짝 무친다. 반찬으로 먹거나 와인 안주로도 괜찮다.
또, 씻은 묵은지를 들기름으로 달달 볶는다. 다진 마늘과 다진 생강을 조금 첨가하면 좋은 밥반찬이 된다.
다음으로는 멸치 육수를 낸 물에 된장을 적당히 풀고, 씻은 묵은지를 잘라서 된장국을 끓이면 구수하면서 독특한 맛을 내는 국을 맛볼 수 있다.
어제는 모처럼 고기를 구워먹었다.
구운 고기를 씻은 묵은지에 싸서 먹었다.
아직 묵은지는 많이 남았다.
“곧 김장하겠네.”
마늘은 이미 샀고, 고춧가루를 확보해야겠구나. 올해 배추는 어떤 걸 써 볼까?
부엌 시계는 째깍째깍 김장을 향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