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이 뜸해진 서점에서 묻다.

by 김하은

작가는 책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서점은 책으로 독자를 만난다. 서점에서 책을 들춰본 경험을 가진 독자들은 책장을 넘기면서 마주친 보석 같은 문장들에 이끌린다. 그 문장이 독자와 작가를 잇고, 서점은 그런 마법 같은 공간을 펼쳐낸다. 그래서 나는 서점을 좋아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서점에서 새로 나온 책들과 만난다. 그러다 내 책을 사는 독자를 보면 가슴이 쿵쿵 뛴다.


‘행복한 책방’은 작은 동네 서점이다. 파주와 고양시 두 군데에 있는데, 고양시에 있는 곳이 일산점이다. 나는 일산점에 가끔 들른다. 버스에서 내려 큰길을 따라 조금 걷다가, 작은 횡단보도를 건너고 철물점을 끼고 걸어가다가 다시 골목으로 들어서면 선물처럼 책방 간판이 나타난다. 흰 바탕에 작은 새가 있는 간판에는 ‘행복한 책방’이라는 글씨가 있고, 간판 아래로 통유리 벽이 이어져 안이 들여다보인다. 밤에는 책을 보면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도 있었다. ‘책맥’이 가능한 곳이어서 가볍게 한 잔 하면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창가에 앉아 느긋하게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저 옆에 앉아서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드는 곳이다.

이곳에 처음 책방이 생겼을 때 풍경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림책, 어린이책, 청소년책, 인문학, 시, 소설 등 다양한 책을 팔지만 학습서나 자습서는 팔지 않는다. 과연 이런 책방이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진심으로 응원하면서 지켜보았다.


서점에서 열리는 행사에 가끔 참가했고, ‘일상 글쓰기’와 ‘작가와의 만남’으로 ‘행복한 책방’에서 사람들과 만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코로나 19라는 변수가 발생했다. 2년 넘게 바이러스와 싸우는 동안, 마스크를 쓰는 건 기본이고 사적 모임이 금지되는 등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것과 딴판인 환경에서 살아야 했다. 명절에도 가족과 모이지 못했고, 바이러스가 어느 곳에서 어떤 형태로 전파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바깥으로 나갈 때 망설이게 되었다. 이럴 때 작은 서점은 어떤 상황일까 궁금했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겨울, 행복한 책방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전 점장인 김경리 씨와 현 점장인 신혜진 씨는 대면으로, 독서 모임을 이끄는 최나진 씨는 전화로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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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리 씨는 코로나 19가 번지기 전에 행복한 책방에서 점장을 맡았다. ‘행복한 책방’에서 진행하던 ‘책밤’부터 말을 꺼낸 김경리 씨는 다양한 행사에 대해 들려주었다.

‘행복한 책방’의 초창기에는 문을 일찍 닫았다. 골목 안에 있어서 늦게까지 오는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금요일 밤에는 사정이 달랐다. 맞벌이든 외벌이든, 아이들과 함께 있든 아니든 책방으로 모였다. 그날은 문을 늦게 닫았고, 주말을 앞둔 동네 사람들이 책방에 모여 책을 읽고 차나 맥주 한 잔을 마시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 행사가 바로 ‘책밤’이다. 불이 꺼져 있던 서점이 금요일 밤에 불을 환하게 밝히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궁금해서 들여다보고 다음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렇게 책방에 자주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아는 얼굴들이 생겼고, 이들에게 다음 행사나 좋은 책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비슷한 나이인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모였고, 그분들이 자주 왔어요. 애들은 책방에 놀러 오는 거예요. 책을 읽으러 오는 건 아니라 놀이터처럼요. 엄마들은 아이들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데, 아이들 마음은 그게 아녜요. 그래도 책방에서 자기들끼리 유리창을 닦는다, 알바를 하겠다 이러면서 놀았어요. 지원 사업을 받아서 동네 지도를 만들 때도 그 아이들과 함께 했어요.”

김경리 씨 말처럼, 책방을 자주 찾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아이들은 학교에서 집으로 가다가 들르고, 재밌는 행사가 있으면 친구들을 데려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책방에 묻어났고 그 웃음을 타고 사람들이 가던 걸음을 돌려 책방으로 들어왔다. 자신이 찾는 책이 없으면 책방에 주문해놓고 찾으러 오는 사람도 있었다. 온라인 서점처럼 할인을 하거나 사은품을 주는 일은 할 수 없고, 동네 서점은 정가 판매를 한다. 그럼에도 동네 서점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에게 동네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늘 오던 애들이 오학년 육학년이 되면서 휴대폰을 갖고, 친구들이랑 카톡이랑 유튜브 하는 재미에 빠져서 책을 더 안 찾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애들 발길이 끊겼어요. 그 아래 동생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어리고요. 그 사이를 채워줄 누군가가 필요했는데 코로나 사태가 온 거죠.”


김경리 씨가 안타까워하자 현재 점장인 신혜진 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애정을 갖고 드나들던 사람들이 한차례 지나가고, 다음 모임들이 생겨야 할 즈음에 코로나로 발이 묶인 셈이다. 책방에서는 이래저래 사람들이 오지 못하는 악조건이 겹친 셈이다.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는 독해력과 문해력이 생긴다. 그렇지만 현재 아이들이 하는 논술 공부는 인문을 쌓는 교양의 차원이 아니라 학과 공부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이루어진다. 도서관이 잠정 폐쇄된 시점에 온라인 서점의 매출이 늘어났지만, 그때도 학습에 관계된 책의 판매량이 훨씬 더 많았다.


‘행복한 책방’에서는 수어를 배우는 모임, ‘함께 뜨기 행복 뜨기’라는 뜨개질 모임, 어린이 글쓰기 모임 등 여러 모임들이 있었다. 이처럼 같이 모여서 즐거움을 나누던 사람들이 책방에서 다양한 행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 가운데 독서 모임도 여럿 있었다.

‘행복백서’, ‘행복해서’, ‘고전맛봄’, ‘인문학 독서 동아리’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행복백서’는 책방과 가까운 곳에 있는 일산 백병원에 다니는 직원들이 모인 책모임이다. ‘행복백서’ 회원들은 주로 그림책을 읽으면서 자기 생각을 나눈다. 병원 업무를 마치고 책방에 모여서 그림책을 같이 보면서 수다를 떨었다.


“책방에 왔을 때 항상 웃으면서 반겨주는 점장님과 마스크 안 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퇴근하고 가장 먼저 들르고 싶은 곳이었고, 책을 고르든 수다를 떨든 사람들이 늘 있는 곳이었어요. 돌이켜보면 책방이 책향기와 함께 사람 사는 풍경을 드러냈구나 싶어요.”

‘행복백서’를 이끌고 있는 최나진 씨가 말했다. 최나진 씨는 공간의 특별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직장에 남는 공간들이나 카페도 있지만 모임 장소로 ‘행복한 책방’을 택한 이유가 따로 있다고 했다.

“여기 오면 저는 주부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니고 그냥 최나진이었어요. 일상을 벗어나고 나를 위한 공간인 거예요. 저는 여기가 좋아서 모임을 가졌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길 바랐어요. 제가 행복한 책방을 선물 같은 공간으로 생각했듯이 책방도 우리 발길로 아름다워지길 소망했거든요. 모임을 하면서 책을 보고, 또 새로운 책을 만날 수 있고,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책이 있는, 진짜 행복이 만들어지는 공간에서 하는 독서 모임이 참 좋았어요.”


현재 ‘행복한 책방’에서 진행하던 책모임들은 중단되거나 줌으로 변환된 상태다. 최근에 생긴 ‘인문학 독서 동아리’는 20대를 주축으로 한 모임인데, 토요일 오전에 대면 혹은 비대면으로 진행하면서 꽤 많은 인문학 책을 읽었다고 한다. ‘인문학 독서 동아리’ 회원들은 자신들이 궁금해 하는 책을 쓴 작가를 직접 만나고 싶다고 청했고, 실제로 몇 명의 작가들이 책방에서 행사를 했다.


“행복백서 회원들에게 지금도 책을 사서 제가 갖다주거든요. 아무래도 저희 직장이 병원이니까 매사 조심스러워요. 다른 직장보다 더 엄격하고요. 모임을 갖자는 말을 함부로 꺼낼 수도 없어요. 이번 인터뷰를 앞두고 회원들에게 물어봤어요. 나는 요즘 거의 모든 걸 혼자 한다, 혼자 산책 하고, 혼자 책 읽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하고 책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궁금했어요. 그랬더니 거의 대부분 그렇게 이야기해요. 그림책을 보면서 같이 울고 같이 웃었던 그 시절이 너무 그립다.”

최나진 씨의 말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그리움으로 남은 책방의 풍경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특히 병원에서 근무하는 행복백서 회원들이 일상으로 돌아오면 정말 좋겠다. 코로나 19가 입힌 가장 큰 피해는, 사람과 사람의 인연과 관계를 단절시킨 것이다. 그 단절을 회복하고 다시 책향기를 맡으며 함께 모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송년 잔치를 꼭 하고 싶었는데…….”

모두 이 말을 덧붙였다. 행복한 책방의 송년 잔치는 마을 잔치처럼 풍성했다. 아이들이 장기자랑을 벌이고, 선물 교환을 하고, 웃음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을 다시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행복한 책방’은 문을 연다.

그리고 작은 서점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나도 글을 쓴다. 이 상황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다시 서점에 모여서 수다를 떨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다시 서점으로 간다. 뚜벅뚜벅, 내 발길을 더한다.


*이 글은 2021년도 <코로나 19, 예술로 기록> 사업에 선정되어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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