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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텅 빈 방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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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은 Jul 15. 2022

어떤 예술

- 베를린, 바르샤바 일기 11

비가 오락가락했다. 장대비가 아니라 걸을 만했다. ‘트렙토어 공원(Treptower Park)’에는 2차세계대전에서 희생된 소련 군인 중에서 5,000명이 묻힌 ‘소련 기념관’이 있다. 나무들과 새소리가 들리는 입구를 지나면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들을 볼 수 있다. 좌우대칭을 이룬 구조물들이 보는 이를 압도하게 만드는데, 구 소련이 만든 구조물들은 ‘무조건 크게, 어마어마하게, 압도적이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듯, 이 다음에 우리가 마주하는 구조물에도 이 특징이 잘 보였다.

카를 마르크스 대로도 이곳처럼 어마어마한 도로와 네모반듯한 건물들이 이곳 트렙토어 공원처럼 소련식 건축물과 유사한 부분을 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소련을 차지하기 위해 독일군이 진격했으나 추위와 진흙에 고전하면서 후퇴했다. 이후에 소련이 반격하면서 2차 세계대전에서 승전국 중 하나가 되었다. 독일로 들어온 소련군들에게 강간당한 독일 여성들이 워낙 많아서, 이후에 독일에서는 이들에게 합법적인 유산을 허락했다고 한다.


‘오버바움 다리(Oberbaun Brücke)’는 독일 분단 당시 동독과 서독을 가르는 경계였다. 2층으로 된 다리에서 위에는 전철이 통과하고, 아래에는 도보와 차도가 있다. 


다리에서 ‘분자인간’이 보인다. ‘분자인간’은 철판으로 된 사람 모양의 구조물이 있고, 보는 각도에 따라 두 사람 혹은 세 사람으로 보인다.

   

강변을 따라 장벽이 있는 것처럼 베를린은 갈라졌던 독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도시다. 그리고 그 경계선을 따라 신호등도 다르다. 

  

다리를 건너면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로 갈 수 있다. 강을 따라 베를린 장벽이 남아 있고, 그 장벽에 화가들이 그린 그림이 유명하다. 장벽의 아랫단을 유심히 보면, 한쪽이 짧고 반대편은 길다. 긴 쪽이 동독이고, 짧은 쪽이 서독 방향이다. 

1.3km에 달하는 야외 공개 갤러리에서 ‘형제의 키스’라는 작품이 가장 유명하다. 구 소련 서기장 브레즈네프와 동독 서기장 에리히 호네커가 입 맞춘 장면을 그려두었다. “주여, 이 치명적인 사랑을 이겨내고 살아남게 도와주세요.”라는 부제가 아래 적혀 있다. 이 그림은 낙서로 훼손되었다가, 2009년에 복원작업을 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보러 온다.



몇몇 마음에 드는 그림들 가운데, 한국인이 그린 그림을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그림에 말을 걸었다.

그림은 말 대신 그림으로 대답했다. 잘 보고 가시라, 이 벽에 남은 그림들이 무너진 벽을 기념하듯, 당신은 어떤 벽을 무너뜨릴 것이냐고.

     

박물관 섬은 베를린을 따라 흐르는 슈프레 강에 있고, 이곳에 다섯 개 박물관과 베를린 돔이 있다. ‘구 박물관’도 이곳에 있다.

이곳에는 로마와 그리스 유물들이 꽤 많이 있다.

“여기도 대영박물관이랑 비슷하네.”

“페르가몬만 할까.”

“어떤 크기를 가져왔느냐 차이겠지.”

박물관을 관람할 때는 멈춰섰다 다시 걷고, 멈췄다 걷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한 시간 이상을 걷다보면 종아리가 뻐근하고 다리가 묵직하다. 며칠 동안 누적된 피로가 유적들을 감상하기보다 잠깐 쉬라고 재촉한다.

“나는 조금 쉴래.”

“그럼 나는 저 끝까지 갖다올게.”

반려가 씩씩하게 떠나고 나는 긴 의자에 잠깐 앉았다.

다른 나라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전시하는 이 행태는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에서 모두 봤지만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힘이 없는 나라는 유물도 가질 수 없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대영박물관에서 확인하듯, 구 박물관에도 로마와 그리스를 본다.


‘페르가몬 박물관’으로 옮겼다. ‘박물관 패스’는 처음 들른 박물관부터 3일이면 관람이 끝난다. 그래서 되도록 많은 곳을 둘러보아야 하며,‘페르가몬 박물관’에 위치한 ‘제우스의 대제단(페르가몬 제단)’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페르가몬 박물관 정문은 닫혔고, 보수 공사 중이라는 표시가 있었다. 분명히 구글 맵에는 운영 중이라고 했는데! (이런 오류는 여러 곳에서 발견했다. 독일 역사 박물관도 보수 중이었는데, 구글 맵에서는 그런 부분이 없었다.) 그러니 구글 맵으로 목적지를  찾을 때 후기도 읽어보시길 권한다. 특이 사항을 발견한 여행자들도 후기에 덧붙여주시면 더 좋고!     

아무튼, 지금 보수중이라서 돌아가서 다른 입구로 들어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페르가몬 제단’이 보수 중이라서 볼 수 없으니 다른 전시를 보라고 했다. 

“이거 보려고 왔는데!”

독일은 식민지에서 출토한 고고학 유물들을 독일로 옮겨와 전시했는데, ‘제우스의 대제단’처럼 제단 입구를 통째로 옮겨온 것뿐만 아니라, 규모는 그보다 약간 작지만 ‘밀레토스의 시장문’과 ‘이슈타르 문’이 압도적이다.



이슈타르 문은 바빌론에서 가져온 것으로, 조각조각 모두 떼어내 다시 합쳐서 전시했다고 하는데 이 정도면 바빌론에는 아예 남은 것이 없겠다 싶을 정도다.





2차 대전 직후에 유물을 보호하겠다며 소련이 독일의 박물관에서 전시품을 수거해 가, 푸시킨 박물관이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두 나라 사이에 반환 요구가 거셌는데, 두 나라뿐만 아니라 원래 유적이 있던 나라 입장이 더 먼저 아닐까?   

대영 박물관에서 봤던 수 십 구의 미라처럼, 어떤 예술은 보호받지 못한 채 다른 곳에서 소모된다. 이런 예술품을 볼 때마다 가슴이 쓰라리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가 수탈당했던 수많은 자원들과 유물들, 개항을 요구하며 침략했던 강대국들이 우리 땅에서 강탈한 예술품들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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