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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Mar 20. 2024

나는 지금 추락 중이다

  글쓰기 수업에서 받은 칭찬의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 약발이 떨어지면서 나는 지금 추락 중이다. 추락 중에 가느다란 나무막대기 하나에 힘들게 매달려 있다. 매달려 있기가 너무 힘들다. 위를 올려다본다. 아득하고 멀다. 자신이 없어진다. 아래를 내려다본다. 이 손을 놓고 추락하면 어쩌면 편할지도 모르는데...

  브런치스토리에 응모까지의 하루하루를 기록하고자 호기롭게  시작했던 연재글(월, 수, 금)도 삭제했다. 지난주 수요일과 금요일 두 번을 겨우 올렸을 뿐이다. 주말을 지내고 연재글을 올려야 하는 월요일이 되었을 때 응모도 퇴고도 연재글도 다 자신 없고 귀찮아졌다. 아니 월요일이 아니라 일요일 오후부터 그랬던 거 같다. 이래서 연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거였다. 나를 제외한 거의 모든 브런치 작가님들이  연재를 너무나 잘하고 계셔서 나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글쓰기 수업에서 3주간 꼬박꼬박 글을 올린 경험이 자신감을 주기도 했으니까. 연재는 포기하고 나니까 잘했다 싶어졌다. 나는 아직도 꼭 해야 한다는 강박이나 압박을 견딜 내공이 부족한 모양이다.  지금 나는 섣불리 덤벼들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연마해야 할 시간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월요일부터 꽃샘추위가 시작되었다. 핑계 삼아 집에 있었다. 꽃샘추위 속에서도 광양 매화마을에 내려가 매화꽃 아래서 꽃마중을 하는 친구의 사진이 올라왔다. 전의를 상실한 나는 집에서 노트북에 퇴고할 잡글을 띄워 놓고 배가 고프면 냉장고를 뒤져서 배를 채우고 잠이 오면 잠을 자고 유튜브를 뒤적이고 불안증 환자처럼 집안을 서성이고 쇼핑앱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거울의 얼룩이 눈에 띄어 갑자기 유리 닦는 세재를 들고 집안의 유리란 유리는 모조리 닦고 다니기도 했다. 친구들과 단톡으로 4월 둘째 주 여수 여행 계획을 세웠다.  언니와 동생과는 4월 셋째 주 2박 3일 엄마와 함께 하는 포항 여행 일정을 잡았다. 두 개의 계획 모두 내가 먼저 가고 싶다 주도한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휩쓸려 가고 있다. 가자... 하면 그래... 할 뿐이다.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 봄이라고, 꽃이 핀다고, 꽃마중도, 꽃구경도, 가고 싶은 맘도, 기다림도, 설렘도 없다. 남편도 금요일 꽃구경 갈까 하고 물어왔다. 나는 그것도 그래, 하고 대답해 놓았다. 너무 수동적으로 사는가.. 나는 수동적 인간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사흘을 집에만 있다가 오늘은 도서관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꽃샘바람이 휘몰아쳤다. 머리가 날려 얼굴을 덮어서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 이 거친 꽃샘바람 속에도 꽃은 피어 있었다. 노란 산수유(생강나무?) 꽃은 벌써 만개해 있고 목련나무에도 새의 부리 같은 꽃망울이 하늘을 향해 있고 양지바른 곳의 벚나무엔 튀긴 팝콘 같은 자잘한 꽃이 피어나 있었다. 거친 바람 속에서도... 꽃은 피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6시까지 있다가 베이커리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둠이 왔다. 어둠이 바람을 잠재웠는지 내다보이는 창밖의 나무들이 움직임 없이 고요하다.


  나는 지금 추락 중이다. 나는 추락 중에 잠시 나뭇가지를 붙들고 매달려 있다. 올려다보니 아득하고 멀기만 하다. 아래를 내려다본다. 이 손을 놓고 추락하면 더 편할 텐데...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지? 추락하다가 다시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를 수도 있으려나... 놓아볼까... 아 몰라... 될 대로 되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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