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찌니 Aug 31. 2024

이사 그 후... 2

한여름에 만난 낙엽... 그리고 문서운??

한여름에 만난 낙엽

안양시 ㅇㅇ구로 이사 온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역대 최장 기간을 넘긴 열대야와 폭염의 8월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집 근처를 많이 돌아다녔다. 전에 살던 집 근처의 천변보다 크고 넓고 길고 웅장하며 서울의 한강까지도 이어져 있다는 안양천변은 거의 매일 나가서 거닐었고 수리산 등산로가 시작되는 곳에 위치한 도서관 출입도 시작했다. 20분 정도만 걸어 나가면 등산로가 시작되는 수리산과 비봉산도 다녀왔다.  비봉산(295m)은 남편 따라 처음 가 본 산인데 남편도 처음이라 내비게이션의 도움으로 올라갔다. 수리산보다 낮지만 중간중간에 넓적한 바위가 있어 앉아서 긴 시간 조망하기 좋았다.  걸어서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재래시장과  전철역으로 가는 길도  익혀  놨다.

비봉산 중턱에서

천변과 산과 도서관과 전철역. 내가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 이  곳이 걸어서 다니기 딱 좋은 거리에 모두 있다. 집을 보러 다니면서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사 와서 실제로 다녀보니 새삼스럽게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집 주변을 탐색하듯 돌아다니는 나의 눈길을 늘 사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오래된 굵고 튼튼한 가로수들과 한 여름에도 굴러다니는 보도블록 위의 커다란 플라타너스 잎들이었다. 누렇게 바랜 커다란 잎들이 거리의 구석구석에 쓰레기처럼 방치되어 쌓여 있거나 굴러다녔다.  퇴색되었으나 아직 마르지 않은 낙엽은 아직은 푸르고 싱싱할 이 여름에  병들어 앓다가 떨어진 것 같았다. 마르고 오그라들어 작아진 낙엽들은 지난 가을의 낙엽일 것이고 구멍이 숭숭 뚫려 거의 가루가 되어 사라질 듯한 낙엽은 오래전 이 도시의 탄생과 함께 어디선가 옮겨온 나무의 낙엽일 수도 있겠지...


한여름에 웬 낙엽이 이렇게 많지? 이 동네는 청소를 잘하지 않나 봐... 지저분하네...

그런 생각 끝에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왜 별거 아닌 낙엽에 꽃혔는지도 짐작이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신도시에서만 살아왔던 것이다.


신도시의 거리는 시멘트 냄새가 것처럼 깨끗했고 가로수나 공원의 나무들도 엄마품에서 떨어져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동물들처럼 작고 여렸다.  어른 손바닥보다 더 커다란 플라타너스 누런 잎들이 없는 게 당연했다. 그만큼 삭막하고 그늘도 없었다. 나는 그 나무들이 자라서 그늘을 만들기 전에 또 다른 신도시로 떠나야 했었다.


그리고 또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아내며 길을 걷다가 생각이 났다.


30대 중반쯤이었을까... 40대였을까... 광명의 오래된 아파트에 사는 친구집을 방문했을 때 보았던 크고 굵고 단단하고 무성한 나무들. 밑동에 푸른 이끼까지 낀 무성한 나무들은 그곳을 지키는 수호신 같았다. 신도시의 작고 어린 나무들만 보아온 나에게 그 오래된 나무들은 고향의 부모처럼 든든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그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평화롭고 여유롭고 안정되어 보였다.

그때 나 혼자 탄식처럼 중얼거렸음이 기억났다. 이런 오래된 나무들이 많은 동네에서 살고 싶다고... 나는 그때 어딘가에서 뽑혀와 심어진  작고 어린 나무처럼 불안하고 위태로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두서없이 드는 생각도,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도 업이 되어 쌓인다고 어느 스님의 에세이에서 읽었었다. 내가 그때 무심코 중얼거린 그 말도 업으로 쌓여 있다가 지금, 이렇게... 실현된 것일까.

이제 지저분하게만 보이던 한여름의 플라타너스 낙엽들이 친근하고 정감 있게 느껴진다. 여기에 와서 살기 위해 그늘 하나 없는 삭막한 길을 그토록이나 위태롭고 불안하게 떠도는 마음이었을까.


이사하기 전 여동생이 타로점 공부를 한 자기 딸에게 나의 이사에 관한 점을 보라고 했단다.  나의 타로점을 봤더니 지금의 이사는 아주 좋은 이사라며 이삿날도 좋은 날이라고 하고 이 이사를 계기로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 했다. '손 없는 날' 같은 걸 보지 않았음에도 좋은 날이라니 그저 좋았다. 그리고 덧붙여 2년이나 3년쯤 후에 또 한 번의 '문서운'이 보인다고 했다.


"문서운이 뭐야?"

"또 한 번 이사를 갈 수도 있다는 거지... "

"아닌데... 난 이제 이사 안 갈 건데... "

"언니야... 문서운이 이사만 말하는 게 아니라네... "

"그럼?"

"말 그대로 문서에 관한 운이지... "

"음... 그렇군... 암튼 좋은 거라니까 좋네..."


그런 통화를 끝내고 다시 이사준비를 하는데 머릿속에서 자꾸 그 말이 떠다녔다.  후 이사의 오만가지  수고와 번거로움 슥에 묻혀있던 그것이 요즘 또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문서운... 문서운... '문서'의 '문'은 '글월 문(文)' '문서'의 '서'는'글 서(書)'...  그러니까... 글... 운(運)...이라는 거지? 글... 운... 혹시??

ㅋㅋㅋㅋㅋ


이런 것을 꿈보다 해몽 이라 하는 거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이사 그 후...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