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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Sep 12. 2024

나는 쉬겠네  그림을 걸지 않은 작은 미술관처럼

김이듬의 시 '겨울휴관'

콩비지찌개와 부추무침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이 와야 할 것 같은데 오지 않으니 이상하다. 어둠 속에서 더듬거려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한다. 새벽 두 시가 가까워지고 있다. 이상하다. 어느 날 보다 몸을 혹사시켰는데... 낮잠도 자지 않았고... 커피는 점심 식사 후 아들이 나가서 사 온 카페 커피 한 잔을 마셨을 뿐인데...


어둠 속에서 하루를 더듬어본다.


전날 이마트 광교점에서 국산콩 100프로 조선두부를 만들어 판매하는 둘째 오빠가 퇴근길에 주고 간 콩비지와 돼지고기(오빠는 돼지고기 두툼한 찌개용까지 사 왔다.)로 콩비지찌개를 했지... 유튜브를 참고해서... 넓고 깊은 냄비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다진 마늘을 넉넉하게 넣어 볶다가 돼지고기를 넣어 볶다가 고춧가루를 넣어 볶다가 묵은지  넣어 볶다가 물을 붓고 한 소 뜸 끓인 후 콩비지와 청양고추와 대파를 넣고 참치액젖과 새우젓으로 간을 했지... 내가 한 거지만 진짜 너무 맛있어서 선 채로 몇 숟갈 퍼먹었지... 줄어드는 것이 아까워 생각하다가 오빠가 주고 간 조선두부를 얇게 썰어 넣고 다시 한번 더 끓였지... 얇게 썰어 넣어도 형태가 무너지지 않고 부드러운 게... 역시...


남편 앞으로 표고버섯 한 상자가 택배로 왔지... 싱싱한 표고가 한 상자... 오빠와 친구에게 전화를 했지... 표고버섯 한 상자가 생겼어... 와서 가지고 가.. 콩비지찌개맛있게 해 놨어... 온라인 수업하는 우리 아들 점심시간 지나서 와...


오빠네도 친구도 오케이. 허물없는 방문객들이지만 그래도 청소기를 한 번 돌렸지... 그리고 표고버섯을 스티로폼 상자에서 꺼내  네 무더기로 나눠 신문지로 싸서 비닐봉지에 담아 김치냉장고 야채칸에 넣었지... 오면 바로 꺼내 줄 수 있도록...


날씨가 너무 후텁지근하여 12시에 에어컨을 켰지... 12시 반에 점심 먹으러 나오는 아들과 이후 방문객들을 위해서... 아들은 콩비지찌개를 국처럼 한 그릇 다 비웠지... 그리고 여느 때처럼 커피를 사러 나갔지... 아들은 점심 식사 후 꼭  카페커피를 사러 나가지... 그 시간에 담배도 한 대 피우고 오는 걸 나는 알지...


친구 전화가 왔지... 지방에 사는 둘째 언니가 허리수술 한 큰언니 병문안을 가기 위해 올라온다고... 같이 가야 한다고... 친구는 벌써 다녀왔지만...


그래... 그럼 내일이나 언제든 와... 표고버섯 싱싱할 때... 친구는 썰어서 말리라 했지... 싫어... 언젠가 자연광에 뭐 말리다가 실패했거든... 말려서 먹는 게 영양가가 더 좋다지만... 친구가 자기가 와서 썰어 말려주고 싶다고 했지... 요즘 같은 햇볕이면 3일이면 마른다고... 뭐... 그래주면 나야 좋지...


갑자기 비가 쏟아졌지... 소나기... 빗소리가 아주 요란했어... 오빠네가 올 시간이 지났네... 비가 와서 그냥 집으로 갔나... 짐작하는데 그냥 집으로 왔다는 오빠 전화가 왔지... 어쩐지 목소리가 피곤하게 들렸지... 가끔은 나나 내 남편 늙는 거보다 오빠가 늙은 게 더 안타까워져...  그래 오빠... 쉬어...


에어컨을 끄고  창이란 창은 다 열어재키고 빗님을, 빗님이 내는 요란한 소리를 집안에 들였지... 어서 오세요 빗님 환영합니다...

안양천 물이 불어나겠구나... 안양천의 마른풀과 나무들이 샤워 한번 시원하게 하겠구나...  저녁에는 그치겠지 소낙비니까... 소낙비 치고는 좀 길게 내리긴 하지만...


그리고 표고버섯 전을 만들었어. 소를 만들어 밑동을 자른 둥그런 버섯 안에 넣는 전은 손이 너무 많이 갈 것 같아서 그냥 표고버섯과  양파 당근 대파 청양고추 파프리카를 마구 대충 썰어서 전을 부쳤지... 맛있어서 자꾸 먹으면서 했지... 큰 접시로 수북하게 했어... 오후 6시 무렵 아들이 수업을 끝내고 운동 갈 준비를 했지... 운동가는 길이라 안 먹는다고 하는 애 입에 억지로 하나를 넣어 줬지...


나도 안양천에 나갔지... 소나기에 흠뻑 젖고 불어났을 하천을 빨리 보고 싶어 빨리 걸었지... 벌써 어둑해진  물 위에 새들이 평소보다 많이 앉아 있었지... 백로인지 외가리인지 모를 자주 눈에 띄지는 않는 철새들이 가는 다리로 가는 목을 길게 빼고 있다가 어느 순간 잽싸게 물속에 부리를 처박았다가 들어 올렸지... 비가 내린 후는 그들이 잡아먹을 수 있는 고기들이 더 많아지는 건가... 모르겠네...


늘 세 갈래 방향을 두고 고민을 하지... 오늘은 어느 쪽으로 가 볼까... 기준은 없고... 그냥 그때그때 발길 가는 대로... 꿈으로 남겨 둔 한강 쪽은 패스... 호계 쪽으로 걷기 시작했지... 40분 정도를 걸어갔다가 돌아오는 길은 뛰기 시작했지... 몸이 가벼웠지... 30분 동안 광고 없이 나오는 90년대 댄스곡을 들으면서... 버스 안에서(자자) 진이(하이디) 반(이정현) 순정(코요테) 티얼스(손찬휘) 포이즌(엄정화) 잘못된 만남(김건모) 빙고(거북이)...

 

출발지까지 딱 20분이 걸렸어. 그동안 한 번도 쉬지 않았고... 더 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무리하지 않기로 했지... 자리를 잡고 앉았더니 비로소 열기와 함께 땀이 흘러내렸지... 얼굴은 불에 덴 듯 화끈거리고 온몸에서 땀이 그야말로 비 오듯 흘려내렸어... 흘러내리는 땀으로 옷이 축축해지면서 몸에 들러붙었지... 그 열기와 땀을 식히기에 바람은 너무 약했어...


한참을 앉아서 쉬다가 천천히 걸어서 집에 왔지... 아들은 운동을 끝내고 돌아왔다가 다시 나간 흔적이 보였고...


몸의 열기가 좀처럼 가시지를 않아 차가운 물아래서 샤워를 오래 했고...


10시 넘어 남편이 대전의 그 유명한 성심당 튀김소보루빵 세트와 우유를 들고 귀가했지... 빵 한 개와 우유를 먹었고... 저번에는 10분 정도 뛰었는데 이번에는 20분을 쉬지 않고 뛰었다고 자랑을 했지... 나 진짜 마라톤에 나가볼까 봐...


그랬으니... 잠이 잘 와야 되는 거 아니야? 몸을 그토록이나 썼고 그토록이나 땀을 흘렸고... 자기 전에  빵과 우유로 요기까지 했는데...


자고 싶은데... 자야 할 것 같은데... 자고 싶은데... 자고 싶은데... 잠이 오지 않을 하등의 이유가 없는데... 뒤채고 뒤채다가...


뒤채기를 멈추고 잠시 어둠 속에서... 물속 고기가 소리 없이 입을 벙긋이 듯이 눈을 꿈뻑이고 있는데... 어디선가 이 문장이 다가왔지...깊은 물 속 물고기의 유영처럼 소리없이  다가왔어... 나는 쉬겠네... 나는 쉬겠네...


어디서 읽었더라... 시였던 거 같은데... 무슨 시였지? 어디서? 아... 휴관,이었지... 제목이... 무슨 휴관? 작가가... 이름이 좀 특이했는데... 내 친구가 좋다고 알려준 시... 내일 알아보자... 그냥 잊어버려도 상관없고... 나는 쉬겠네...

아니.. 나는 쉬겠네보다...자겠네...   나는 자겠네... 중얼거리며...

옆으로 누워 눈을 감아 보고 엎드려 눈을 감아보고 다시 반듯하게 누워 보고 일부러 큰 대자를 만들어도 보고...


나는 자겠네...나는 자겠네...


결국 나는 핸드폰을 켜고 시를 찾았다.


겨울휴관


김이듬



무대에서 내려왔어 꽃을 내미네 빨간 장미 한 송이 참 예쁜 애구나 뒤에서 웃고 있는 남자 한때 무지 좋아했던 사람 목사가 되었다 하네 이주 노동자들 모이는 교회라지 하도 괴롭혀서 도망치더니 이렇게 되었구나 하하하 그가 웃네 감격적인 해후야 비록 내가 낭송한 시라는 게 성직자에게 들려주긴 참 뭐 한 거였지만


우린 조금 걸었어 슬며시 그의 딸 손을 잡았네 뭐가 이리 작고 부드러울까 장갑을 빼려다 그만두네 노란 코트에 반짝거리는 머리띠 큰 눈동자는 내 눈을 닮았구나 이 애 엄마는 아마 모를 거야 근처 미술관까지 차가운 저녁 바람 속을 걸어가네 휴관이라 적혀 있네 우리는 마주 보고 웃다가 헤어지려네 전화번호라도 물어볼까 그가 나를 위해 기도할 거라 하네


서로를 등지고 어갔던 그 길에서 여기까지밖에 못 왔구나 서로 뜻밖의 사람이 되었네 넌 내 곁을 떠나 붉게 물든 침대보 같은 석양으로 걸어가네 다른 여자랑 잠자겠지 나는 쉬겠네 그림을 걸지 않은 작은 미술관처럼


ㅡㅡㅡ


천히 두 번 정도를 읽었을까... 글자가  가물거리고 눈에 잔모래가 들어간 듯 서걱거려... 폰을 끄고 눈을 감고 벽쪽을  향해 누운 그대로 가만히 있었지... 시의 여운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서로를 등지고 뛰어갔던 그 길에서 겨우 여기까지밖에 못 왔다네... 있는 힘을 다 해 힘껏 뛰어갔을 텐데... 여기까지 밖에... 더 뛰어도 결국은... 돌아서면 보이는... 그만큼의 거리를... 그랬겠지... 뛰어도 뛰어도 멀어지지 않으니... 잠시 문을 닫고... 당신을 향해 열린 문을 닫고... 쉴 수밖에...

잠시... 나는... 쉬겠네...


나는 쉬겠네... 그림을 걸지 않은 작은 미술관처럼... 나는 쉬겠네... 나는 쉬겠네... 그림을... 걸지... 않은... 작은... 미술관...처럼....


그림을... 걸지... 않은... 작은... 미... 술... 관... 휴... 관... 겨... 울... 휴... 관...


휴... 관...


휴... 나는... 자겠네... 생을... 잠시...

 닫고... 나는 잠들겠네... 나는 잠들고 싶네... 다시 깨어나지 않더라도... 괜찮네...


그러나 아직은... 잠시의 휴관이면 좋겠네...


잠시만... 휴... 관...


#겨울휴관#김이듬시인#콩비지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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