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너무 비장한가? 태극기를 달고 국제마라톤대회를 뛰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무슨 동네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것도 아니고 혼자서 고작 집 앞 천변에서 7킬로 러닝을 하면서...
그러나 나는 힘들다. 보폭을 짧게 천천히 달리는 슬로 러닝으로 페이스 조절을 해도 5킬로부터는 힘들고 6킬로부터는 죽을 맛이다. 잠시 걷거나 멈추어도 아예 포기해도 뭐라 할 이 없다. 그러나 나는 걷지 않는다. 멈추지도 포기하지도 않는다. 적어도 내가 목표로 한 7킬로미터를 완주할 때까지는.
지난해 10월 1킬로미터부터 시작해서 3킬로 5킬로 늘여서 지금 7킬로미터를 달리고 있다. 처음 시작은 10킬로미터를 목표로 했다. 그런데 지금 7 킬로미터에서 두 달째 갇혀 있다. 지금은 7킬로라도 유지하고 싶을 뿐이다. 무리하면 7킬로미터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내 나이 육십(맙소사!!!)이다.
처음부터 슬로러닝을 한 것은 아니었다. 이사오기 전 안산의 집 옆 천변은 1 킬로도 겨우 뛰었었다. 그런데 이곳 드넓고 긴 천변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몸이 가벼웠다. 살도 빠지고 혈압도 내려갔다. 인생 스포츠를 찾은 것 같았다. 투자시간에 비해 효과는 탁월했다. 별다른 준비물도 필요 없고 멀리 가지 않아도 되었다. 일주일에 삼 사일을 달렸다. 평균페이스도 7분대에서 6분대로 단축했다. 주위에서 슬슬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왔다.
두 달쯤 되었을까... 왼쪽 종아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몇 년 전 근육파열로 물리치료를 받은 부위였다. 왼쪽 아킬레스 쪽도 심상치 않았다. 평균페이스를 8분대 9분대로 늘려 아무리 천천히 달려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며칠 동안 찜질과 마사지를 하면 나은 것 같아 다시 달려보면 다시 또 통증으로 멈춰야 했다. 뼈가 아니라 근육의 통증이니 좀 오래 쉬면 나을 것 같았다. 12월 한 달 정도를 쉬면서 행정복지센터에서 일주일에 두 번 요가를 했다. 틈틈이 유튜브로 달리기 영상을 보았다.
한 달 정도를 쉬고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속도는 물론 보폭도 반으로 줄였다. 폼은 나지 않지만 아프지 않은 것이 너무 다행스럽고 좋았다. 죽을 듯이 힘들어도 아프지만 않으면 달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지금은 일주일에 이 삼일을 7킬로, 평균페이스 6분대 후반으로 달리고 있다. 걸리는 시간은 45분에서 50분 사이다. 시간을 단축시키려 애쓰지 않는다. 달리는 거리를 늘리려고도 애쓰지 않는다. 그냥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을 뿐이다. 대신에 중간에 절대 쉬지 않고 절대 걷지 않는다.
달리기를 사랑하는 일본의 베스트셀러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에서 자신의 묘비명에 '나는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적고 싶다고 했다. 작가가 하루종일 달려야 하는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하고 난 후에 한 말이었다.
고 박완서 작가님은 수필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에서 환호도 갈채도 없이 꼴찌로 뛰는 마라토너의 표정을 '정직하게 고통스럽고 정직하게 고독하다'라고 표현했다. '그토록 정직하게 고독하고 그토록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표정'을 처음 본다고 했다. 5킬로미터 이후부터 달리는 나의 얼굴도 정직하게 고독하고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표정이겠지... 박완서 님의 그 문장을 읽은 후부터 가끔 달리는 나의 얼굴 표정이 궁금하고 보고 싶어진다. 아니 사실은 보고 싶지 않다. 그 적나라하게 고통스럽고 고독한 나의 표정을 내가 보게 되면 어쩌면 더 이상 달리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5킬로에서부터 힘들어 잠시라도 걷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하루키와 박완서 님의 글을 연결해서 가뿐 숨결에 섞어 한 단어씩 토해낸다. 그것마저 힘들면 속으로만 읊조린다.
나 는 적 어 도 걷 지 는 않 는 다 걷 지는 않 는 다 고 독 하 고 고 통 스 러 워 도 적 어 도 끝 까 지 걷 지 는 않 는 다... 끝 까 지 걷 지 는 않 았 다... 마치 군인이 군가를 부르면서 구보를 하듯이.
라이더들과 젊은 러너들이 나를 추월해 달려 나간다. 나는 겨울패딩을 입고 천천히 걷는 젊은이를, 빠르게 걷는 중 장년을, 불편한 걸음걸이의 노인을 추월해 달려 나간다. 아무리 천천히 달려도 걷는 사람에게는 추월당하지 않는다. 걷는 사람은 아무리 빨리 걸어도 달리는 사람을 추월하지는 못한다. 나는 이 사실을 러닝 하면서 알게 되었다. 적어도 내가 달리는 천변에서는 그렇다.
막 시작된 3월의 맑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온다. 따뜻한 3월의 햇살이 등을 어루만진다. 아 나는 이렇게 건강하게 숨차게 3월을 맞이한다. 아직은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스스로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나의 이 삶을, 사랑하고 싶다. 삶과 사랑에 빠지고 싶다.
삶이 비록 나에게 관대하지 않을지라도, 언젠가 배신을 당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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