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에 속았다는 거지? 관식에게 속은건가? 관식의 맘이 변하나??
'제주에서 태어난 당돌하고 똑똑한 반항아 애순과 애순만 바라보는 팔불출 무쇠 관식이의 모험 가득한 일생을 사계절로 풀어낸 넷플릭스 드라마'
요즘 핫한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 의 홍보용 짧은 줄거리다. 나도 물론 보았다. 사실은 제주를 배경으로 한 청춘물에 시대를 입힌 그렇고 그런 드라마이거니 싶어서 쏟아지는 관련 기사에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래도 예상보다 좀 빨리 보게 된 이유는 지금도 채널을 돌리다가 재방송되는 것을 만나면 또 끝까지 보게 되는 드라마'나의 아저씨'에서 보여줬던 아이유의 연기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4회까지 공개되었고 드라마는 성공적인가 보다. 한국을 비롯해 홍콩, 태국, 베트남 등 10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드라마를 제작한 팬엔터 회사의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하니 그 줄거리나 관련 에피소드들은 쏟아지는 기사들로 인해 웬만큼 관심이 있다면 다들 알고 있을 터, 나까지 주저리주저리 보태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문득 잠 안 오는 밤에 그 누구도 그 어디에도 언급하지 않은 나만의 시청 포인트를 쓰고 싶어졌다.
집안의 패물을 훔쳐 가출했다가 잡혀 돌아온 후 애순은 퇴학을 당하고 관식은 정학을 당한다. 애순은 자신을 만나면 관식이 꿈도 가족도 다 놓친다고, 관식을 좀 살려 주라는 관식 엄마의 말에 애가 둘인 홀아비와 선을 보고 시집갈 마음을 먹는다. 이 소식을 듣고 찾아온 관식에게 애순은 오빠가 없어야 내가 살아...라고 한다.
그 어떤 경우에도 애순 곁을 떠나지 않았던 관식은 그 말에 절망하여 육지로 떠나 운동을 본격적으로 하기로 마음먹는다.
많은 사람들의 배웅 속에 관식이 탄 배가 출항을 앞두고 있다. 그 시간 애순은 의상실에서 결혼식 때 입을 흰색 투피스를 입고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다. 괘종시계가 울린다. 그건 배의 출항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했다.
애순은 빗속을 뛰어 나간다. 비를 맞으며 울부짖으며 항구를 향해 관식의 이름을 부르며 뛴다. 애순이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배는 이미 출항하여 저만치 바다 위에 있다. 애순은 관식을 부르며 선착장에 퍼져 앉아 운다. 배 위의 관식은 비바람을 뚫고 들려오는 애순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성을 잃은 관식은 배를 돌려 달라고 행패를 부리다가 바닷물에 뛰어든다. 그 모습을 배웅 나온 사람들 사이에 있던 여자아이가 맨 먼저 코를 훌쩍이며 목격한다. 어... 어... 손으로 가리키면서.
애순이 빗속을 뛸 때부터 애순의 내레이션이 달라붙었다. 그때 뛰지만 않았더라면... 그때 뛰어가지만 않았더라면... 쳐들어오는 운명을 막을 수 있었을까...
그 내레이션이 너무나 절절하게 반복되어서 시청하는 나는 조마조마했다. 혹시 애순의 목소리에 이성을 잃고 바다에 뛰어내린 관식이 죽는가? 불구가 되는가? 식물인간이 되는가? 왜 저렇게 후회스러운 과거형으로 말을 하는 거지??
화면이 바뀌어 제주의 촌스럽고 당돌한 애순 아이유가 아니라 어딘가 삐딱하고 불만스럽고 세련된 현재의 아이유가 나온다. 그리고 배우 문소리가 세련된 현재의 아이유의 엄마로 나온다. 제주의 애순 아이유가 나이가 들어 중년의 애순 문소리가 된 것이다. 지금부턴 과거와 현재가 번갈아 가며 뒤섞인다.
집안의 거실테이블에 세련된 현재의 아이유가 앉아 있고 그 옆에 또래의 또 다른 여자가 앉아 있다. 여자는 테이블의 과일을 찍어먹으며 문소리에게 말한다.
'차별했어... 은근히 차별했다니까...'말하면서 코를 훌쩍인다. 남들은 다 그냥 흘려보냈겠지만 나는 이 장면 이 대사를 흘려보내지 않았다.
저 차별 운운하는 여자가 그럼... 제주의 애순이 결혼한 남자 전처의 딸? 그러니까 차별 운운하는 거겠지... 결국 애순이 애가 둘 있다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만 건가? 그럼 관식은?
결국 애순이 애타게 부르는 소리 때문에 바다로 뛰어내린 관식이 죽는구나... 아니 그렇게 죽을 거면 박보검일 필요가 없지... 불구가 되거나 식물인간이 되거나 하는 건가? 아니면 아이 둘 있는 남자와 결혼한 애순이 낳은 딸인 현재의 아이유의 남자친구로? 그러니까 아이유와 박보검 둘 다 일인이역? 이러면 너무 뻔한 신파로 흐르는데...(이런 궁금증 유발이 작가의 의도겠지... 흐음...)
시청자인 내가 그런 마음으로 보고 있는데 장면은 어느 새 과거로 돌아가 배에서 뛰어내린 관식이 바다를 헤엄친다. 내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 헤엄을 잘 친다. 바다고래처럼 거침없이 헤엄친다. 애순을 향한 사랑의 힘인 줄 알았는데 사실 그때까지도 알려주지 않은 관식의 운동 종목이 수영이었다는... (이것도 작가의 의도였을까??) 바다고래처럼 헤엄치는 관식을 보고 관식의 엄마는 탄식한다. 왜 하필 수영을... 수영을 택해 가지고...
관식은 그렇게 헤엄쳐 울고 있는 애순에게 돌아온다. 빗속의 절절한 포옹을 보고 드디어 어른들은 그들을 결혼시킨다. 애순 나이 18 세 관식 나이 19세다.
두 사람은 결혼하여 여덟 달 만에 딸 '금명'을 낳는다. 그러니까 금명은 관식과 애순이 야반도주하여 부산의 한 여관에 머문 그 철없고 서툴고 뜨거운 미성년의 밤에 잉태된 것이었다. 그 금명이 어딘가 삐딱하고 불만 가득한 현재의 아이유다. 그리고 금명 옆에서 코를 훌쩍이며 차별 운운하여 나를 헷갈리게 했던 그 여자는 관식의 여동생, 그러니까 고모였다는... 혹시 알아채지 못할까 봐 작가는 어린 고모와 성인이 된 고모 둘에게 똑같이 코를 훌쩍거리는 행위를 넣어주신 거겠지... (그러니까 작가는 속이는 듯 힌트를 준 거겠지.. 소위 떡밥 이라는?)
작가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시청하면서 몇 번을 폭삭, 속았다.
그들은 일단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다. 그런데 제목이 '폭삭 속았수다' 이다. 어디에 무엇에 누구에게 속았다는 걸까? 사실 난 그때까지 '폭삭 속았수다'를 '남의 거짓이나 꾀에 넘어가다'는 진짜 속았다 의 뜻으로 알고 있었다.
그럼 저토록 열 살부터 오매불망 애순바라기였던 관식의 마음이 변하나? 바람을 피나? 그래서 제목이 폭삭 속았수다 인가? 그렇다면 너무 뻔한 레퍼토리가 되는데...
그런데 중간중간 나오는 중년의 애순 관식 부부는 여전히 사이가 좋아 보였다. 중년의 관식이 다리를 절뚝일 뿐... 오히려 중년이 된 애순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엄마처럼 절대 살지 않겠다는 금명에게 엄마는 엄마대로 행복했다고, 엄마 인생도 나름 쨍쨍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애순이 관식에게 폭삭 속았다는 건 아닌 것 같고...
뒤늦게 찾아보았더니 '폭삭 속았수다'는 제주 방안으로 '정말 수고 많았다'라는 뜻이다. 아...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제목은 이렇게 짓는 거지... 이렇게... 기발하다... 정말 기발하다. 정말 수고 많았다니... 제목이 모든 걸 말해주는구나... 그러니까 내가 상상한 신파로는 절대 네버 흘러가지는 않을 것 같다.
이렇게 몇 번이나 나는 드라마'폭삭 속았수다'에 정말 폭삭 속았다... ㅎㅎ 겨우 4회차 까지를 보았을 뿐인데. 앞으로 더 속을 일이 있을까??
인간의 신체를 복제하고 기억까지 전송하는 '인간프린트'. 인간 복제를 넘어 반복해서 복제되어 죽음을 반복하는 인간 프린트라니..
나날이 발전하는 AI 나 생명과학 기술을 보면 지금은 공상과학일 뿐인 인간프린트가 현실이 되는 날도 올 것 같은 섬뜩함에 오싹해진다. 그나마 그런 세상이 오더라도 내가 죽은 뒤일 것이니 다행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해피앤딩으로 끝난다. 얼음행성 개척단 직원들의 단합과 반항으로 비인간적인 독재자'미셀 부부'는 비참한 최후를 맞고 우주생명체 크니퍼와도 공존하게 된다. 그리고 우주생명체 크니퍼의 새끼를 끝까지 구해내려 위험을 감수했던 너무나 인간적인 미키의 여자친구 '나샤'가 정치판에 뛰어들어 힘을 가진 후 프린트된 인간으로 온갖 생체실험을 행하던 개척단이라는 비행선을 폭파시킨다.
그래도... 결국은... 옳은 길로 나아갈 거야... 늘 불안을 안고 사는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그 어느 때 보다도 어수선하고 불안하고 위태롭기까지 한 지금의 우리나라도 그렇고 온갖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이 지구도...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뒤틀리고 험난하고 절망스럽고 좀 오래 걸려도 결국은...
그렇게 되기까지 너무 오래 걸리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너무 많은 희생을 치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늦은 밤의 검푸른 하늘에 띄워 보았다. 혹시 아는가... 때마침 내 머리 위 하늘을 지나가던 조물주의 귀에 들렸을 지도.
#폭삭 속았수다 #영화 미키 17 #아이유 박보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