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쇼핑몰에서 온종일 나 홀로

때론 군중 속 고독도 필요해

by 찌니

어제저녁엔 동네 동창 모임이 있었다. 소고기에 소맥을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놀다가 12시 전에 귀가했다. 3명은 노래방을 나와 3차를 갔고 나와 또 한 동창은 귀가했다. 모임이 있어도 12시 전에 꼭 귀가하자, 는 새해에 나 자신과 한 약속을 이번에도 지켰다.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나는 늘 집 근처 도서관과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렇기에 도서관이 운영되지 않는 법정공휴일이 나에게는 좀 난처하다. 집에 있으면 분명 한껏 늘어져 있거나 집안일에 하루를 다 소비하기 때문에 어쨌든, 웬만하면 집을 나가고 본다.

그래서 법정공휴일인 오늘 나는 오랜만에 좀 멀리 나가보기로 했다. 시원한 전철로 이동하고 중간에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한 번에 갈 수 있는 곳. 그래서 택한 곳이 4호선 사당역이었다. 언젠가 책을 좋아하는 친구와 사당역과 연결된 대형 서점에 갔던 기억이 그 결정에 힘을 보태 주었다. 검색해 보니 '파스텔시티'라는 복합쇼핑몰이었다.

9시쯤 집을 나섰다. 전철 안은 붐비지 않아 쾌적했다. 한 시간 후 사당역에 도착하여 12번 출구 쪽으로 나갔다.

반갑게도 바로 '영풍문고'가 보였다. 입구 앞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고풍스러운 의자에는 벌써 사람들이 꽤 앉아 있었다.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었다. 매장은 넓은데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은 벽에 붙은 서가와 서가 사이에 세 명이 겨우 앉을 수 있게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나마 두 곳뿐이었고 벌써 빈자리는 없었다. 내가 가장 흥미 있어하는 소설 코너에서 이 책 저 책 만져보고 펼쳐보고 대충 읽어보고 하다가 김연수 작가의 신작 '너무나 많은 여름이'와 '2023 제14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두 권을 구매한 후 서점을 나갔다. 좀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 보이지 않을 곳을 찾아 나섰다. 1층에 몇 개의 카페가 있었다. 모두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밖에서 탐색하기 좋았다. 이른 시간인데도 카페마다 사람들이 반 넘게 들어차 있었다. 다행히 혼자 앉아 있기 딱 좋은 출입문 옆 빈 구석자리를 발견했다. 주문한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소보루빵을 천천히 먹으면서 김연수의 짧은 소설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펼쳤다. 작가의 전작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은 잔영이 아직 조금은 남아 있을 때라 더욱 좋았다. 늘 그랬듯이 작가의 말을 먼저 읽었다. 제주도 가파도에서 낭독회를 할 때의 경험담으로 시작되었다.

해가 저물고 예정된 시각이 되자 어두운 골목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걸어오기 시작했다..... 살펴보니 대부분 중년여성들이었다....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인문학서를 읽는 독서모임의 회원들이라고 했다.... 눈을 감는 분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긴장하게 된다. 내 소설이 지루한가 싶은 걱정도 든다. 혹시 주무시는 건 아닐까?

그러나 그날만은 조금 달랐다. 주무셔도 괜찮겠다는, 아니 오히려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일에 지친 그들에게 내 소설이 그런 식으로나마 도움이 됐으면 싶었다..... 그들의 낮을 상상 했다.... 뜨거운 햇살과 달려드는 벌레와 마른 흙 같은 것들을..... 그렇게 우리는 하루를 살아낸다.... 그 하루하루가 모여 일생이 된다....


가끔 읽기를 멈추고 고개를 들어 돌아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내는 대화가 와글와글이라는 의성어로 뭉뚱그려져서 넓은 보자기처럼 와락 덮쳐왔다. 카페 밖의 행인들은 양산을 쓰고 천천히 걷거나 그냥 뜨거운 햇볕 속을 빠르게 걸어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카페 안의 사람들은 음료수와 빵을 가운데 두고 둘, 셋, 넷 씩 마주 앉아 먹고 마시면서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어떤 테이블은 왁자하게 웃고 어떤 테이블은 심각하고 드물게 어색한 침묵에 휩싸인 테이블도 있었다. 그렇게 한 번 휘 둘러보고 또 책 읽기를 반복했다.


사람의 두뇌란 참 묘한 구석이 있어 조용한 곳보다 시끌벅적한 곳에서 오히려 더욱 몰입이 잘 될 때가 있다. 고개를 숙이면 철저히 혼자가 될 수도 있고 고개를 들면 군중의 한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곳이다. 혼자인 외로움에 문득 고개 들어 보면 아, 나는 혼자가 아니었구나 하면서 안도하는, 혼자 이면서 혼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카페에서 오히려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작가가 많다는 사실은..... 또 어디에서 읽었더라.......

오후 세시 무렵이 되자 슬슬 배가 고파왔다. 2층부터가 식당이었다. 이번에도 혼자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자리가 있는지 몇몇 곳을 둘러보며 탐색했다. 거의 모든 식당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밖에서 탐색하기 좋았다.

그 결과 나는 3층의 '용호낙지' 식당에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지난 때라 빈 테이블이 많았고 그중에 나는 건물의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창가의 구석 테이블에 앉았다. '낙지새우전골'을 맵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나의 혼자 먹는 점심 중 조금은 성찬에 해당하는 메뉴인 셈이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아주아주 맛있었다. 식사 후 소화도 시킬 겸 1층의 유니끌로 매장을 둘러보다가 편하고 시원해 보이는 여름용 카고바지를 충동 구매했다. 기장 수선을 서비스로 해준다고 하여 계산 후 수선을 맡기고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3층의 로비에 대리석 의자가 즐비하고 인공의 초록색 화단 장식이 많은 곳을 봐 둔 터라 그곳에 가서 앉아 책을 꺼냈다. 대리석 바닥이 의외로 따뜻했다. 돌아보니 대부분 어르신들이었고 바로 옆에 어르신들 메뉴일 것 같은 찜닭 삼계탕 식당이 있었다. 대리석 의자가 따뜻함은 어르신들을 위한 배려인가 혼자 짐작해 보았다.

오후 6시. 수선한 바지도 찾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공휴일의 저녁을 쇼핑과 외식으로 보내려는 사람들이 파스텔시티로 모여들기 시작하는 시간에 나는 반대로 귀가를 서둘렀다.
무엇보다도 대형 서점이 있어서, 아무래도 나는 법정공휴일마다 사당에 갈 것만 같다. 혼자 보내기 좋은 곳이 한 곳 더 추가되어 더없이 뿌듯하다.

간만의 나 혼자만의 외출이라 해도 될 오늘, 약간 과소비를 했지만 후회 없이 충만한 하루였다. 어제는 친구들과 시끌벅쩍하게 보냈고 오늘은 나 혼자 조용히 보냈다. 나는 이런 삶은 균형이 무너지지 않고 오래 유지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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