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퇴사는 아무도 모른다

출근한다고 집 나와서 이 곳에 다닌 지 4개월이 넘었다

by 찌니

수요일이다.


기상청에서 또 한 번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보한 오늘의 아침은 잔뜩 흐리고 가는 비가 오락가락했다. 출근을 하려고 면도를 하면서도 남편은 자꾸 오늘 비가 많이 내린다는데 그냥 집에서 일할까 갈등했다.


"그냥 출근해…. 요즘 왜 자꾸 집에서 일하려고 해… 나랑 같이 있는 게 좋아서 그래? 집에 있으면 내가 너무 잘해 줘서 그래?"


가볍고 심상하게 말하지만 나의 마음은 복잡하고 머릿속은 헝클어졌다. 그런 내맘과 머릿속을 알 리 없는 남편은 오늘은 특별한 미팅이 없으니 그냥 집에서 일을 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고는 면도기를 내려놓고 소파에 벌렁 드러누웠다.

나의 퇴사를 모르는 남편은 수요일인 오늘은 나의 휴무날이니 내가 집에 있을 줄 알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는 또 다른 거짓말을 해야 했다.


"난 오늘 오후출근 해야 해"


나는 아주 심상한 척 말했


"왜? 쉬는 날 아니야? "


남편이 되물었다.


"이번주 토 일 친구들이랑 섬에 놀러 가려고 휴무 뺐잖아. 대신에 오늘은 출근하래..."


토요일과 일요일 친구들과 섬에 놀러 가는 것은 진짜고 남편도 알고 있다.


퇴사한 전 직장은 우리나라 굴지의 ㅇㅇ백화점이었고 나의 업무는 캐셔였다. 그 직장에서의 나의 휴무는 수요일이었다. 오전근무는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 오후근무는 오후 1시 30분에서 오후 8시 30분까지이고 일주일 씩 교대로 근무했다. 한 달에 한두 번을 제외한 주말은 근무였고 수요일 주휴를 뺀 나머지 휴무와 연차와 법정공휴일의 휴무는 관리자의 재량이었다. 재직 중에는 좀 불편하고 어떤 면에서는 불만이고 부당했던 근무조건이 퇴사를 속이기에는 아주 좋은 조건들이 되어 주었다.


늦은 아침을 같이 먹고 남편은 거실에서 노트북을 열어 일할 준비를 하고 나는 씻고 출근 준비를 하는 척 했다. 그런데 문제는 비였다. 앞이 하얗도록 장대비가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전철역까지는 걸어서 20 여 분. 오후 근무라고 했으니 12시 즈음에는 집을 나서야 했다. 남편은 틀림없이 전철역까지 차로 데려다준다고 할 것이다. 비가 조금만 덜 쏟아져도 운동삼아 걸어가겠다고 하면 되었다. 지난 폭우를 동반한 장마와 불볕더위 때도 그렇게 넘겼었다.


내가 이용하는 도서관은 집의 뒤쪽 방향으로 가야 하고 전철역은 집의 앞쪽 방향이다. 그럼 아예 남편 차 타고 역까지 갔다가 남편이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가면 나는 다시 버스를 타고 도서관으로 갈까? 버스를 타려면 또 도로를 건너야 하고 버스가 잘 오지도 않는데... 그럼 역에서 도서관까지 걸을까? 아무리 걷는 걸 좋아하지만 걷기엔 비가 너무 쏟아져… 더구나 가방 속 노트북… 혹시 비에라도 젖으면 어떻게 해…아 진짜....

그냥 출근해야 한다고 말하지 말고 휴무날이니 도서관에 데려다 달라고 할걸 그랬나. 그랬다면 언제 올 거냐 저녁은 어떡할 거냐 왜 이렇게 늦게 오냐 성화였을 거야 분명히....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으려니 힘이 들어선 지 화장대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온통 울긋불긋했다.


역시나, 얼굴에 비비크림을 펴 바르는데 남편이 들여다보며 물었다.


"데려다줘? "


"어…."


나는 할 수 없이 일단 이렇게 대답해 놓고 다시 머리를 굴렸다. 갑자기 회사에서 오늘 그냥 쉬라고 연락 왔다고 할까? 얼마 전에 팀장이 바뀌었는데 근무스케줄 짜는 게 좀 서툴다고? 그런 다음에 내가 휴무 날 도서관에 자주 가는 거는 아니까... 도서관에 데려다 달라고 할까? 그러면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뭐 하러 도서관까지? 그냥 집에서 읽어…

나는 또 이렇게 말하겠지.

집에선 집중해서 읽을 수가 없어…

그러면 남편은

나도 일해야 하는데 누가 방해한다고.... 왜 집중을 못해?

이렇게 말하겠지. 그럼 또 나는

방해하지 않아도 집중 못해… 집이라는 데가 여자들한테는 그래...

그렇게 말하겠지..... 그렇게 해명에 해명에 해명을 자꾸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게 뻔하다. 남편은 나를 그 이상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니까.

어떡하지? 이렇게 비가 계속 내리면 어쩔 수 없지 뭐…. 역까지 남편 차로 간 후에 남편이 차를 돌려 집으로 가면 나는 역에서 나와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가던가 아니면 저번에처럼 그냥 전철 타고 사당역 파스텔시티로 갈까? 거기 카페는 와이파티가 될까? 그래도 그 어느 곳도 도서관만 못한데…. 시간은 자꾸 가고... 10분 안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아 그런데 진짜 요즘 하늘은 내편인 것 같다. 비가 조금 가늘어졌다. 더구나 그 사이 남편이 화장실에 들어갔다. 혹시나...싶어 화장실 문 앞에 가서 문에 귀를 대 보았다. 끄응....하고 힘주는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예상대로 큰 걸 보는 모양이었다.

나는 노크를 한 후에 아주 다정하게 말했다.

"나 갔다 올게 비가 좀 약해졌어….."

" 괜찮겠어? 좀 있으면 또 세질 텐데…"

나는 화장실 안에서 들려오는 남편의 말을 무시하고 갔다 올게….. 좀 더 크게 말하고는 얼른 현관으로 가서 장우산을 들고 부리나케 집을 나갔다. 혹시 남편이 내다볼까 봐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그 사이 비는 또 거세졌다. 나는 백팩을 앞으로 옮겨 매고 장우산을 펼쳐 들고 서둘러 거침없이 빗속에 발을 내디뎠다. 대못처럼 내리 꽂히는 빗줄기는 이미 저마다 한데 뭉쳐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물결을 만들어 흐르고 있었다. 납작한 로퍼 속으로 물이 차 들어오고 반바지 밑 종아리까지 빗물이 튀어 올랐다.


그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쳐 나는 도서관에 와 앉았다.


지난 4월 나는 10년 넘게 다닌 백화점을 나왔다. 나의 어떤 실수에 관리자가 적어도 내가 받아들이기에 좀 심하게 질책을 했고 질책 중에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하길래 퇴사하는 걸로 책임지겠다고 호기롭게 말해 버렸다. 관리자는 당황했고 그런 뜻이 아니라고 수습을 하려고 했지만 나는 그냥 진짜로 퇴사하겠다고, 갑자기, 단 일초도 더 이상 이 백화점 계산대에 서 있고 싶지 않아 졌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즈음 나는 정말로 그만두고 싶었다.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출근했고 동료들 사이에서도 겉돌았고 퇴근하면서는 언제쯤 그만둘까 그 생각에만 골몰했다. 내 직장생활의 마지노선이었던 아들이 드디어 취직을 했고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운 실업급여 문제도 남편이 내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을 하는 바람에 물 건너 간 상태였다.

그러나 그만두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비록 많지 않은 월급이지만 우리 집안의 모든 경제 활동은 내 월급까지 포함한 상태로 굴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집 경제 사정과 우리의 노후를 생각하면 내가 계속 일해서 돈을 버는 게 맞았다. 백 번을 생각해도 돈을 버는 게 옳았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그렇다. 지금보다 더 안정된 경제적 기반과 더 편하고 럭셔리한 물질적 토대 위에서 생활하고 싶다면 말이다.


그런 식으로 갑자기 예정에도 없이 그만두고 나니까 어쩌면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나를 밀어낸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네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아직도 왜 그러고 있냐고, 이젠 나가라고, 나가서 진짜 네가 원하는 너의 인생을 살라고 말이다. 나의 못 말릴 상상력은 나의 퇴사를 그런 식으로까지 비약시켰다.


다음날부터 나는 출근하듯이 도서관에 갔고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도서관을 나왔다. 오전근무 주에는 오후 6시에서 7시 사이에 나왔고 오후근무 주에는 오후 9시에서 10시 사이에 나왔다. 완벽한 범죄?를 위해서 핸드폰 일정표에 오전조 오후조 휴무 등을 재직때와 똑 같이 기록해 놓았다.

사실은 이렇게 살고 싶었다 나는. 읽고 쓰는 삶 말이다. 용기가 나지 않아서 자신이 없어서 또 엉뚱한 곳에서 시간만 낭비한 결과를 낳을까 봐 두려워서, 이건 내 길이 아님이 확실해질까 봐 나는 계속 유보하고 또 유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생활이 지금 4개월이 넘었다. 아직도 들키지 않았고 아직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이나 아들이 나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았다면 아마도 들켰을지도 모른다. 아니 의심이라도 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남자는 나에게 그리 관심이 없다. 적어도 외면적으로는.


일단 나는 들고 다니는 가방부터가 달라졌다. 퇴사하기 전 나는 큰맘 먹고 구매한 버버리 숄더백을 매고 다녔다. 퇴사 후 나는 키플링 백팩을 메고 다닌다. 언젠가 남편도 아들도 한 번쯤 물어는 봤다. 요즘 왜 그 가방(버버리숄더백) 안 들고 다니냐고. 그때 나는 등에 맨 백팩을 가리키며 심상하게 대답했다.


"이거 매고 다녀 버릇하니까 편해서..... 그 가방은 자꾸 흘러내려서 불편했거든..."

청소를 하려고 거실 바닥에 엎어져 있는 내 키플링 백팩을 들어 옮기려던 남편이 또 물었었다. 뭐가 이렇게 무거워?

나는 또 심상하게 대답했다.


"나 요즘 노트북 가지고 다니잖아. 휴식 시간에 뭐 좀 해보려고.... 일찍 퇴근하는 날에는 가끔 카페 가서도 이용해....노트북이 구형이라 무겁고 어디 내놓기도 창피해...가볍고 작은 신형으로 갖고 싶다...

"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니 나의 설명이 쓸데없이 장황함을 깨닫고 얼른 말을 끊었다.

남편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소파 밑으로 청소기 머리를 넣었다 뺐다 하느라 분주했다.

남편의 나에 대한 관심은 거기까지였다. 다행히도...


달라진 건 또 있다. 매일 감던 머리를 이틀이나 삼일에 한번 감는다. 화장도 비비크림까지만 바르고 팩트는 두드리지 않는다. 아이섀도와 마스카라를 꼭 하던 눈화장도 하지 않는다. 옷도 편한 옷만 입는다.


어느 날엔 출근하는 내 모습을 보고 아들이 그랬다.


"엄마 머리 안 감았어? "


나는 뜨끔함을 감추고 심상하게 말했다.


"유니폼이 바뀌어서 모자 쓰잖아..... 머리 손질 해 봤자 소용없어..."

아들의 관심도 거기까지였다.


어느 날엔 남편이 화장도 안 한 얼굴에 펑퍼짐한 옷을 입고 납딱한 로퍼를 신고 출근하는 척 하는 내 모습을 유심히 보는 것 같길래 미리 선수를 쳤었다.

"나이가 들어선가 이젠 멋 부리기도 귀찮네.... 거지 같아? 보기 좀 그래? "

"시원해 보이고... 괜찮아..."


. 남편의 대답은 좀 힘이 없었다.


퇴근했지? 역에서 기다릴게 같이 들어가자..... 도서관에서 남편의 이런 톡을 받은 적도 있었다.

먼저 들어가...ㅇㅇ랑 저녁 먹기로 했어.... 아니면 먼저 들어가 갑자기 회식을 하자네.... 이렇게 또 넘겼다.


문제는 남편만이 아니었다. 친구들도 그 비슷한 식으로 속여야 했다. 특히 백화점 가까이 있는 친구는 내가 오전근무하여 오후 5시에 퇴근하는 주를 알고 있었다. 너 오늘 일찍 퇴근하는 날이지? 퇴근하고 맥주 한잔 할까? 도서관에서 오후 5시 퇴근 무렵 이런 톡을 받으면 나는 다른 약속이 있다던가 하는 식으로 거짓말을 해야 했고 백화점 가까이 사는 오빠가 근무 중이냐? 나 지금 백화점 왔다... 했을 때도 있었다. 그때는 오빠 오늘 나 휴무야.... 하고 또 거짓말을 해야 했다.


좋아진 점도 있다.

나의 이유 없는 불평불만과 조울증 비슷한 감정의 기복이 없어졌다는 것인데 이건 남편이나 아들이 알아챌 것도 같은데 아무 말이 아직까지는 없다. 공교롭게도 아들의 취직과 나의 퇴사가 맞물렸다. 아들은 취준생 생활을 일 년도 넘게 했으니 나의 이 다정한 행동과 온화한 모습이 유지되는 이유를 어쩌면 아들의 취직 때문이라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아무리 늦게 귀가를 해도 아들이 전화 한 통 없이 외박을 해도 빨랫감을 홀랑홀랑 뒤집어서 내놔도 나는 요즘 그 어떤 잔소리도 하지 않고 인상조차도 쓰지 않는다.


이런 생활이 지금 4개월이 넘고 있다.


내가 왜 기를 쓰고 이렇게 퇴사를 숨기고 있을까. 말도 없이 그만뒀다고 나무랄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는 누군가 나에게 뭔가 기대를 할까 봐 두려운 거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도서관에 다니며 끄적거리는 걸 알게 되면

어? 우리 마누라 저러다가 뭐라도 되는 거 아니야?

우리 엄마 곧 유명한 작가 되는 거 아니야?

나 작가 친구 생기는 거 아니야?


나는 혹시라도, 만에 하나라도, 그런 기대를 할까 봐 두렵고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자신이 조금도 없기 때문에 이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내가 드디어 퇴사하고 집에서 논다고 하면 야 뭐 하냐 나와라 술 한잔 하자, 야 뭐 하냐 우리 여행 가자, 야 뭐 하냐 심심하지? 하면서 나를 밖으로 끌어낼 친구들이 서넛은 있다. 그 친구들의 유혹을 거절할 명분이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생활을 은근히 즐기고 있다는 거다.


퇴사 후 4개월 동안 아무도 모르게 장편소설을 하나 썼다. 쓰면서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 이건 쓰레기야 쓰레기 하면서도 어떤 소설 쓰기 책에서 소설은 무조건 '완성'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거라고 해서 어쨌든 완성했다. 완성해서 응모까지 했는데 정말로 기대는 하지 않는다. 지금쯤 출판사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겠지... 아니면 벌써 파쇄기에 들어가 가루가 되었거나....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해야 할까....


내가 원하는 건 내가 이런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명분을 갖는 거다..


집에서도 당당하게 나 뭐 써야 하니까 방해하지 마, 하고 문을 꽝 닫을 수 있는 명분. 나 글이 안 풀려서 그러는데 며칠 여행 좀 다녀올게, 하면서 훌쩍 떠날 수 있는 명분. 나 급하게 마감할 원고가 있어서... 미안해... 하고 별로 내키지 않는 모임의 참석을 거절할 수 있는 명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런 명분만 가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언감생심..... 그런 걸 바란다 나는.


그 명분을 갖기 위해서 난 오늘도 모두를 속이고 이렇게 도서관에 와 있다.


그 명분을 부여받는 날이 나의 퇴사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날이 될 것이다.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지만 늦게 와도, 오지 않고 들켜버려도 괜찮다.

나에겐 원하던 명분은 커녕 그 어떤 눈에 보이는 성과 없이 들켜버렸거나 스스로 실토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을 때를 대비한 시나리오도 준비되어 있다.


나 그동안 너무 너무 힘들었어 흑 흑....

모든 사람들을 속이고 산다는게..흑 흑....

그런데...안되더라구...흑 흑...

역시 난...안되더라구 으와아아앙 .....


그렇게 울어버리면 아마도

나 위로하느라 그동안 속인건 다

잊어버릴 것이다.


다 용서될 것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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