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 내 수녀친구를 생각하며

--네가 택한 그 길에 후회는 없니? 내가 지금 택한 이 길은?

by 찌니

정말 바로 옆에서 장작불이 타고 있는 듯 공기는 뜨겁고 하늘에서 레이저를 쏘아 대는 듯 햇빛은 날카로워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이런 날씨엔 아주 느릿느릿 걸어 20분 거리도 땀에 흠뻑 젖는다. 그래도 나는 걷는다. 무거운 구형 노트북과 소설책 한 권과 글쓰기 책 한 권과 노트 한 권과 진한 커피에 얼음을 가득 채운 보냉병과 은박지에 싼 김밥 한 줄이 든 키플링 백팩을 메고서.

굴다리 지나 주택가 지나 상가 지나 주유소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오르막길 위에서 바람이라도 불어 내려오는 날이면 나는 고개를 한껏 들고 그 바람을 온몸으로 들이마셨다. 그 바람 속에서 나는 아무도 모르게 들어선 지금 나의 이 길을 응원하고 위로하는 메시지를 찾아 들으려고 애썼다. 잘하고 있어 잘할 거야 잘 될 거야 안되면 또 어때 네가 원하던 길이잖아 그토록 원했던 길이잖아.... 포기만 하지 마... 지치지 마.... 괜찮아.... 괜찮아...

오늘은 그런 바람 한 줄기 없다. 오히려 잘못 들어선 길이니 돌아가라고 호통치는 듯한 뜨거운 공기가 나를 밀어내는 듯하다. 그래도 나는 땀을 줄줄 흘리며 뚜벅뚜벅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옮긴다. 백팩의 무게로 상체가 자꾸 앞으로 쏠린다. 내 모습이 웃기면서 슬프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님을 비교하면 천벌을 받으려나... 그러면 다시 굴러 떨어져 내릴 것을 알면서도 무거운 바위를 지고 산꼭대기에 올라가야 하는 시시포스는?


경찰차가 두 대 전면 주차되어 있는 파출소 바로 앞을 지나갈 때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아대며 두리번거리던 중년의 여자가 머뭇머뭇 다가와 경찰차 앞에서 무거운 내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여기 파출소가 어디예요?"

우리나라에서 오래 생활한 외국인인 듯 묻는 말의 발음이 좀 서툴다.

나는 나도 모르게 벙긋 웃으며 손으로 경찰자 바로 뒤에 있는 파출소 입구를 가리킨다.

" 아.... 예...."

여자가 무안한 듯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어깨를 움츠리며 웃는다. 나는 다 이해해요... 나도 가끔 그래요....라고 말해주듯 더 활짝 웃어 보인다.


영업 중인 커피숍과 아직 영업을 시작하지 않은 식당과 저녁에나 영업을 시작하는 왕노가리 호프집을 지나 인도 옆 작은 공원으로 들어간다. 주로 노인들이 모여들어 장기를 두거나 잡담을 나누는 공원인데 오늘은 아직 아무도 없다. 하늘을 가린 키 큰 나무들만 더위에 조는 듯 서 있다. 인도를 따라 조금 더 올라가서 도서관 정문으로 들어가도 되지만 공원으로 들어가서 도서관의 후문을 이용하는 것이 더 빠르고 편하다.

햇빛에 그대로 노출된 공원입구에는 '여호와의 증인' 팸플릿이 전시된 가판대가 두 개 서 있고 조금 떨어진 나무가 그늘을 만든 곳에 턱 밑까지 단추를 다 채운 원피스에 넓지 않은 챙의 모자를 쓴 여자 둘이 나란히 두 손을 모으고 정숙하게 서 있다. 다행히 지나가는 행인을 막무가내로 붙잡고 따라오면서 성가시게 하지는 않는다. 그냥 가만히 서서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기만 한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 수수하고 평범한 듯 보이지만 또 어딘가 좀 다른 분위기 같기도 한.

늘은 눈이 마주쳤는데도 웃지 않는다. 좀 지쳐 보인다. 불볕더위가 그들의 굳건한 믿음마저 흐물흐물 녹였나 보다. 나는 손수건으로 얼굴에 흐르는 땀을 꾹꾹 누르며 그들을 지나쳐 가다가 조용하던 그녀들 쪽이 뭔가 수선스러운 듯하여 슬쩍 돌아본다. 남자 두 명이 그녀들에게 다가와서 가판대를 정리하고 있다.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웃기도 한다.

한 남자는 이 더위에도 긴팔 셔츠에 넥타이를 한 중년이고 또 한 남자는 반팔 셔츠에 넥타이를 하고 백팩을 멘 20대 정도의 아주 젊고 통통한 남자다. 젊은 남자가 몸을 움직여 가판대를 정리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도서관 후문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다시 한번 돌아보니 그들은 높은 가판대 두 개를 들고 급하게 횡단보도를 건너가고 있다. 더워도 너무 더워서 포교를 포기하고 어딘가 시원한 곳으로 들 가는 모양이었다.


저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저 길에 후회는 없을까. 저 젊은 남자애는 왜 저렇게 빨리 자기의 길을 선택해 버렸을까. 저 젊음을 유혹하는 온갖 세속적인 것들을 어떻게 다 물리쳤을까. 계속 저 길을 후회 없이 갈 수 있을까. 다시 돌아오고 싶으면 어떡하나. 얼마나 많은 아픈 대가를 치러야 할까. 어떤 계기로 저 길을 선택한 것일까...

저 사람들 눈엔 여호와를 모르고 그저 세속적인 욕망에 휘둘리며 사는 우리가 어리석고 가엾어 보일까. 가끔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하는 종교의 폐단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을 쉽게 놓지 못하는 종교인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는 굳건한 믿음이 있는 삶은 어쩌면 지나가는 바람 한 줄기에도 정처 없이 흔들리고 번민하는 우리의 삶보다 덜 괴로울 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다가오는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하고 방황하고 불안해하는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어떠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당신의 뜻이라면 따르겠나이다..... 할 수 있으니까.....


나에겐 수녀 친구가 한 명 있다. 그녀는 키가 크고 희고 연한 살이 푸짐하여 우리가 백곰이라고 놀렸었다. 백곰이라고 짓궂게 놀려도 보조개가 들어가도록 웃으며 등치에 비해 가는 목소리로 "재밌나? 재밌으면 내 계속 백곰 할게... 뭐... 니들이 재밌다면야... "하던 친구.

그 친구는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여군에 지원, 입대하여 3년을 복무한 후 다시 복학하여 졸업했다. 그 후 회사에 취직해서 직장생활을 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 몇 달 후 부산에 있는 ㅇㅇ 영아재활원에서 엽서가 날아왔다. 당시 나는 그 친구의 삶의 지향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친구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보냈던 엽서의 몇 구절을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으며 그건 그녀의 삶에 대한 애정이라고 그 당시의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ㅇㅇ야... 퇴근길에 포장마차에 들려서 소주 한잔을 했단다... 소주가 달구나... 너무 달구나.... 인생이 너무 달아서 어떡하니...----

---ㅇㅇ야.... 퇴근길에 수국 한 다발을 사들고 왔단다. 내 작고 초라한 방의 수국 한 다발.... 인생은 이렇게 아름답고 애잔하구나.... ---

ㅇㅇ재활원에서 날아온 그 친구의 엽서를 받고서야 나는 그 친구의 그전 엽서에서 자신의 앞에 놓인 두 갈래 길 앞에서 갈등하고 번민했을 그 친구의 방황과 고뇌를 뒤늦게 읽을 수 있었다.


또 다른 한 친구 A와 물어물어 그 영아재활원에 찾아갔다. 버려진 중증의 장애를 가진 아기와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보살피는 곳이었다. 온몸을 뒤틀며 눈을 희번뜩이며 침을 흘리며 안겨오는 아이를, A와 나는 그 친구처럼 기꺼이 안아 줄 수가 없었다. 자리에 꼼짝없이 누워서 떠먹여 주는 죽을 그대로 다 토해버리는 아기를 그 친구처럼 어르면서 포기하지 않고 먹일 수가 없었다. 빨래거리가 산처럼 쌓여 있는 추운 세탁실의 세탁물 속에서 몰라보게 야위었지만 하얀 이를 다 드러내며 웃고 있는 친구는 어쩐지 편안해 보였다. 그 보상 없는 힘든 노동을 하면서도 너무나 평온해 보여서 나는 울고 싶도록 마음이 아팠었다. 우리와 기어이 다른 길을 가려는 친구가 안타까워 헤어질 때 나, 울었던가.... 20대 후반...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희미하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생각나는 것은 바다가 보이는 재활원 흙마당의 빨랫줄 가득 널려 있던 빨래들이다. 빨래집게에 고정되어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만국기처럼 펄럭이다가 꾸덕꾸덕 말라가던 작고 낡은 옷가지들 양말들 수건들... 그리고 빨래를 너는 내 친구의 빨갛게 언 두 볼과 손도... 빨갛게 언 두 볼에 가끔 페이던 보조개도...

거기서 몇 달을 지낸 후 그 친구는 수녀원에 들어갔다. 그러니까 그곳은 자신이 수녀의 삶을 살 수 있는지 시험해 본 일종의 시험대였던 셈이다.


그 친구는 지금 남쪽 지방에서 청소년 학교의 아주 인자한 원장수녀님으로 지내고 있다. 백곰이라 놀려먹던 희고 푸짐했던 살들은 사라지고 지금은 겨울나무처럼 앙상하다. 내가 그녀의 마른 몸을 안타까워하면 또 다른 친구 A는 그랬다. 수도자가 살이 너무 많아도 좀 그렇지 않니?

내 아들이 서너 살 무렵 그 친구는 아무런 연락도 없이 먼 지방에서 기차를 타고 경기도의 내 집에 왔었다. 수녀복을 입고 그 당시 주고받던 편지의 주소를 들고 핸드폰의 길 찾기도 없던 시절에 물어 물어 찾아왔던 것이다. 그렇게 엉뚱한 면도 있던 친구였다. 그때 나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들에게 밥을 먹이느라 한껏 어질러진 밥상 앞에 퍼질러 앉아 있었다. 꿈도 젊음도 내던져 버리고 속세의 생활에 찌든 나의 적나라한 모습을 들킨 것 같아 나는 좀 창피했던가.


그 밤에 나는 그 친구에게 물었었다.


후회되지 않아?


그 친구는 대답했다.


어차피 이 길을 가든 저 길을 가든 후회하기는 마찬가지지 뭐.... 조금 덜 후회할 것 같은 길을 갈 뿐이야.....


도서관 창가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켜며 소설책과 글쓰기 (은유의 글쓰기의 최전선) 책을 펼치는 불안하고 자신 없는 표정의 나에게 누군가 그때 내가 수녀친구에게 했던 그 질문을 한다면 나도 그렇게 대답할 것 같다.


조금 덜 후회할 것 같은 길을 갈 뿐이라고.







keyword
이전 01화복합쇼핑몰에서 온종일 나 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