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출근하는 거 맞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아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by 찌니

인천 시흥 안산 수원 서울 등 가까운 지역에 사는 뜻이 맞고 맘이 통하는 동창들 10여 명과 함께 일박 이일 인천에 있는 대이작도 섬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동창 A가 물었다.

"넌 내일 오후근무(오후 1시 30분 - 오후 8시 30분)야?"


난 얼떨결에 "어"라고 대답했다. 확실치 않은 것 같아서 본능적으로 목소리가 작았다. 대답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하니 오전근무(오전 10시 - 오후 5시)라고 해야 하는 주간이었다.


A는 이웃 시에 살고 있으며 한 달에 한 번 있는 동네 동창 모임의 총무를 맡고 있다. 모임 시간이 6명 모두가 퇴근하는 6시 30분쯤이기 때문에 A는 모임 전에 모임의 날짜를 정할 때마다 맨 먼저 나에게 오전 근무주인지 오후 근무주인지를 물었다. 본의 아니게 모임의 날짜를 나에게 맞추는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좀 쉬다 출근할 수 있어서 다행이네..."

A가 하품을 쩌억 하면서 말했다.


"어... "


또 자신 없는 대답을 작은 목소리로 한 후에


"B야.... 너 지금 죽을 맛이지? 네가 이번에 술 제일 많이 마셨잖아... 내일 출근이나 제대로 하겠냐? 하기야 뭐 사장님이니까 하루 재낀다고 누가 뭐라겠어..."


라고 재빨리 운전하고 있는 B에게로 화재를 돌렸다.


어찌어찌하다가 인천 시흥 등에 사는 동창들끼리 일 년에 한 번씩 인천에 있는 섬여행을 하는 모임에 휩쓸리게 되었다. 다른 이유도 조금씩은 있겠지만 지역적인 이유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자월도(2018) 볼음도(2019) 승봉도(2020)를 다녀온 이후 코로나 시국이 닥쳐 2년 여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다. 올해 초부터 앞장서서 주도하는 두 세명의 동창들 사이에서 슬슬 거론이 되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 급물살을 타게 되어 지난주 21일 22일 다녀왔다.


우리가 머물렀던 대이작도의 펜션 앞은 크고 작은 돌들이 펼쳐진 해안가였다. 그 해안가 옆에 25억 1천만 년이나 되었다는 우리나라의 최고령 암석이 있어서인지 해안가에 펼쳐진 돌들은 수석가들이 보면 탐을 낼 만큼 신비하고 기이하고 아름다운 모양의 돌들이었다. 그 돌들을 밟고 바닷물에 들어갔다 나오고 그 돌들을 밟으며 집에 가져가지도 못할 돌들을 찾아다니고 그 돌들을 밟고 고둥을 잡고 먹으면 안 된다는 굴도 채취해 조금씩 맛보고 밤에는 그 돌들 위에서 캠프파이어를 하고 춤추고 노래도 불렀다. 저마다 발이 아프고 위험하다고 해서 훨훨 타오르던 캠프파이어의 불꽃이 사그라질 즈음 넓고 편편한 데크로 자리를 옮겼다.

다른 동창들에 비해 좀 더 활동적인 나는 특히 더 발바닥이 아파서 다음 날에는 거의 절뚝거리면서 다녀야 했다.


오늘 아침에도 두 다리가 묵직하고 발바닥이 뭉근하게 아파왔다. 몸에 좋다고 울퉁불퉁한 돌 위를 맨 발로 걷는 운동도 있으니 이 묵직한 아픔이 나으면 내 몸은 좀 더 건강해질 것 같아 아픈 데도 마음은 흡족했다.

문제는 오전근무 주간이어서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날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퇴사 전이었다면 어떻게 해서든 일어나 오전근무에 맞춘 시간에 출근을 했겠지만 나는 지금 퇴사자가 아닌가 아무도 모르지만.

잠에서 깨어 일어났으나 바닥에서 누가 잡아당기기라도 하듯이 몸이 자꾸 다시 눕혀졌다.

에라 모르겠다 오후근무라고 하지 뭐.....

아무도 모르는 퇴사 이후 해이해진 마음이 이렇게 행동으로 나타나긴 처음이었다.

일어날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도 일어나지 않는 나에게 남편이 물었다.

"오늘 오후근무야?"


나는 잠결인 듯 몽롱하게 대답했다.

"어....."


남편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행히도...


주말을 이용해 친구들과 일박 이일로 홍천에 다녀온 아들은 오늘 출근 안 하고 재택근무를 한다고 했다.

코로나는 어쨌든 지나갔지만 앞으로 그 비슷한 아니 그보다 더 강력한 팬데믹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인지 친구들의 아들 딸들도 재택근무를 많이 한다고들 한다.


일단 남편은 그렇게 출근을 했다. 아들은 늦잠을 자는지 기척이 없었다.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 여행으로 쌓인 빨래를 먼저 하고 냉장고를 뒤져 차돌박이 된장찌개를 끓일 준비를 했다. 도중에 잠자리에서 막 일어난 아들이 나와서 또 물었다.


"엄마 오후근무야?"


나는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어... "


아들은 화장실에 갔다 온 후 다시 잠자러 들어갔다.


주방에서 일박 이일 대이작도 여행을 머릿속으로 리와인드해 보며 혼자 미소 짓기도 하고 브런치스토리에 어떻게 써서 올릴까 그 생각도 하면서 받아놓았던 쌀뜨물에 된장을 풀고 끓을 동안 무와 양파와 호박과 두부와 버섯 등을 준비했다. 차돌박이와 청양고추과 대파를 마지막으로 넣고 한 소 뜸 끓일 동안은 식탁에 앉아 이미 두세 번은 보았던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기도 했다.

뚝배기의 뚜껑이 들썩거려서 일어나 뚜껑을 열고 찌개의 맛을 보면서 재료들을 섞고 있는데 뒤에서 아들이 큰소리로 불렀다.

"엄마! "


나는 비명을 지르며 온몸이 한번 풀썩 흔들렸다가 돌아올 만큼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돌아보았다.

"왜 그래? "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튀어 올랐다.


내가 이렇게 딴생각에 빠져 있다가 심하게 화들짝 놀라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아들은 이제 그러려니 한다.


"엄마 오늘 출근 안 해?"


아들은 시계와 나를 번갈아보았다. 나도 그제야 시계를 보았다. 12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씻고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아들은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한 시간 늦게 가는 날이야... 시차... "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태연하게 말하고는 다시 몸을 돌려 찌개를 한번 더 섞고 한 숟가락 떠서 맛을 보았다. 미리 준비하지도 않았는데 거짓말이 기다렸다는 듯 자연스럽게 나왔다.

아들은 알아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냉장고를 열어 물을 들이켰다.


어젯밤 감고 바로 잠들었다가 일어난, 파마가 거의 풀려가는 삐죽삐죽 뻗친 머리는 물을 묻혀 눕혀도 금방 되살아나고 여독이 풀리지 않은 얼굴은 푸석하고 좀 부어 있었다. 노트북과 책이 든 백팩은 오늘따라 더 무거웠다.

현관에서 느릿느릿 신발을 꿰어 신는데 등 뒤에서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지금 출근하는 거 맞아?"


나는 납딱한 로퍼에 발 뒤꿈치를 넣으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는 줄 알았던 아들이 내 바로 뒤에 서서 조금은 의아한 시선으로 그러나 금방 웃음이 터질 것 같은 묘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어..."


하고 무사히 대답은 했는데 갑자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러자 아들도 따라서 웃음을 터뜨렸다.

188 cm의 키가 큰 아들은 내려다보며 158cm의 키 작은 나는 올려다보며 둘이 그렇게 한참을 큰 소리로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나는 내가 왜 그 순간에 웃음이 터졌는지 잘 모르겠고 아들이 왜 나를 따라서 그렇게 크게 웃는지도 몰랐다. 한번 터진 웃음은 쉽게 멈춰지지를 않았다.


한참 그렇게 웃다가 나는 몸을 휙 돌려 문을 열어젖혔다.


"갔다 올게... "


"갔다 와 엄마..."


아들의 목소리가 유난히 컸다.


아들의 그 웃음이 무슨 의미인지는 좀 더 시간이 지나 봐야 알 것 같다. 만약에 아들이 눈치를 챘더라도 남편에게는 물론 나에게도 쉽게 말할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아들은 남편보다 더 빨리 눈치를 챌 수도 있고 그랬다면 이렇게 하는 나를 이해해 줄지도 모른다. 지난달 장편소설을 응모할 때 이메일 응모나 프린트 등의 일에 아들의 도움을 받았었다. 물론 아들은 내가 일하면서 짬짬이 쓴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아빠를 닮아서 입이나 행동이 가볍지 않은 성격이다. 가끔은 답답하고 우유부단해서 화를 돋우던 그 성격이 지금은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아무튼 나는 아들에 대해서 그 정도만 알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래서 오늘도 무사히 도서관에 왔다.


어쨌든 조심해야겠다. 아직까지는....


어젯밤에는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고 선풍기만으로도 편하게 잤다. 이렇게 한 계절이 끝나 가는가.... 그리고 또 한 계절이 출발선에서 바톤을 받으려고 몸풀기를 하고 있는가....


다가오는 계절이 나는, 두렵고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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