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돌아가신 꿈을 꿨다. 아직 어둑어둑한 시간, 일어나자마자 폰을 켜고 꿈해몽을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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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꿈 – 자신이 평소에 이루고 싶던 소원을 성취할 징조
돌아가신 어머니께 큰 절을 하는 꿈 – 하고자 하는 일이 만족스럽게 성취될 징조 길몽
돌아가신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시는 꿈 – 어머니가 미소, 덕담, 칭찬 등의 행도을 해주시면 소원성취를 암시한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꾸중하고 화 내는 꿈 – 아직 성취의 시기가 아니니 때를 기다리라는 암시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꿈 – 어머니와 앞으로 좀 더 친밀하고 깊은 관계로 발전함을 암시
돌아가신 엄마를 만나는 꿈 – 사업이 번창하고 재물운이 상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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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본 굼 – 뜻밖의 유산을 받게 되거나 재물운이 풀려 큰 돈을 벌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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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나는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꿈속의 나는 태연자약했다. 동생이 엄마가 돌아가셨으니 빨리 내려가자고 하는데 나는 동생에게 먼저 내려가라고 하고는 괜히 서성이거나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남편이 그런 나를 채근했다. 너는 엄마가 돌아가셨다는데 왜 그러고 있냐면서…. 그때서야 나는 엄마에게 내려가야 하는데 어떻하지 하면서 남편에게 차편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은 이제 차편이 없다며 자신이 데려다 주겠다고 준비를 하라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대답하고 엄마에게 갈 준비를 하는데 마치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지 않은 것처럼 태연하고 여유가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내려가지 않은 상태로 딴 짓만 하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니까 내 꿈은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꿈, 이었고 그 해몽은 평소에 자신이 이루고 싶었던 소원을 성취하는 징조, 라는 것이다. 흉몽만 아니기를 바랐는데 이렇게 좋은 해몽이라니...
내가 지금 이루고 싶은 소원은 응모한 장편소설이 당선되는 것. 그게 이루어진다고? 생각만으로도 입이 벙싯거렸다. 다시 잠들기는 틀렸다.
나는 아직 어둑어둑한 거실로 나와 앉았다. 그리고 네이버에 ‘ㅇㅇ문학상 공모 발표’를 입력해 보았다. 알고는 있지만 모르는 척, 잊고 있는 척 하면서 지내고 있는 상태다.
9월 중 ㅇㅇ문학상 홈페이지 게시 및 개별 통지, 라고 나와 있었다.
나는 이 꿈이 나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을 암시하는 꿈이라기보다 (말도 안된다는걸 안다) 그냥 내 꿈을 응원하는 엄마의 마음, 으로 해석하기로 했다. 물론 엄마는 지금 나의 이런 생활을 모르지만.
엄마는 내가 엄마의 기준으로 보아 적지 않은 나이에도 직장에서 잘리지 않고 다니는 것을 대견해 하셨다.
좀 힘들어도 계속 다녀라...요즘은 여자도 돈벌이를 해야 대접 받는 세상 아니라...
이것이 나이에 비해 명민한 엄마의 평소 지론이고 내가 엄마에게 나의 퇴사를 아직 말할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어떤 성과를 가지고 당당하게 엄마에게 갈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정말 좋겠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 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진 때가 있었다. 나는 이 말을 엄마의 자식을 향한 마음이 간절하면 우주가 화답한다, 고 조금 바꾸어서 말하고 싶다.
둘째 오빠가 서른살 즈음 늑막염으로 입원하게 되었었다.한창 농한기였다. 농사 일로 바쁘고 힘들 부모님이 걱정할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우리 형제들끼리만 쉬쉬했는데 엄마의 전화가 왔었다. 꿈자리가 뒤숭숭하다고, ㅇㅇ에게 무슨 일 있는거 아니냐고 물었다. 누구에게 전화를 했는지 지금 기억은 나지 않는다. 나는 아니니까 언니나 여동생이었을 것이다. 별일 없다고 해도 미심쩍어 하며 묻고 묻고 또 묻더란다. 결국 엄마는 알게 되었고 그 길로 당시 살아계셨던 아버지와 함께 밤기차를 타고 올라오셔서 새벽에 둘째 오빠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나타났다.
둘째 오빠는 엄마 아버지한테 자신의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이 미안하고 화도 나서 괜히 엄마에게 왜 왔냐고 화풀이를 해댔다는 얘기를 나는 또 누군가에게 전해들었다. 이 일화는 내가 병문안을 가서 전해들은 이야기이고 내가 직접 겪은 일도 있었다.
나는 양가 부모님 허락 하에 결혼식을 올리기 전 일 년 정도 남편과 동거생활을 하게 되었었다. 그땐 남편의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슬슬 피하기만 하던 시댁의 안 좋은 실상이 하나 둘 드러났다. 헤어져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까지 겪을 정도로 둘 다 힘들어할 때였다. 그때 덜컥 임신이 되었고 나와 남편은 어쩔 수 없이 보내기로 합의를 봤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사랑의 힘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힘들고 외롭고 서러운 날들이었다. 수술을 하기로 한 전날이었는지 수술 후 하루나 이틀 후였는지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는 무슨 말 끝에 대뜸 이런 말을 하시는 거였다.
혹시라도 애가 들어서면 낳아라…. 낳아도 된다….나쁜 생각 하지 말고....
그 전화를 나는 직장에서 받았던 것 같다. 서둘러 전화를 끊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급하게 화장실에 갔었다. 그 당시 내가 다니던 잡지사 건물은 아주 낡은 건물이었고 좌변기가 놓인 한칸 뿐인 여자 화장실은 비좁고 허름했다. 그 화장실의 벽에 기대 서서 펑펑 울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다른 직원이 와서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괜찮냐고 괜찮냐고 무슨 일이냐고 물을 때까지 나는 그 냄새나는 낡고 좁은 화장실 벽에 기대 서서 오래 울었었다.
언니나 여동생에 비해 그리 살가운 성격이 아닌 나는 엄마와 통화를 그리 자주 하지는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내게 아주 힘든 일이 생길 때면 이상하게도 엄마 전화가 오곤 했다. 내가 전화를 안받으면 언니나 동생에게 둘째가 전화를 안 받는다고 닥달을 했다. 언젠가 내가 아주 아주 힘들 때 엄마 전화가 왔었고 나는 엄마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음을 터뜨렸었다. 엄마와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수화기를 붙잡고 울기만 했던 기억도 갑자기 떠오른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면 합리적 수준을 넘어 과장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나는 이 꿈도 지금 나의 변화를 어렴풋이 눈치 챈 엄마의 나를 향한 응원의 메시지로 해석하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까지도 어쩌면 엄마는 짐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까지 넘겨짚고 있었다. 이쯤 되면 너무 과대망상적 해석일까??
아침이 어슴프레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목소리가 간절히 듣고 싶어졌다. 전화 번호를 눌렀다. 이맘때면 엄마는 아침 댓바람부터 밭에 나가시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