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와서 갈 수 있는 또 한 곳을 확보했다!

알바비라도 벌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ㅎ

by 찌니

4개월을 넘게 도서관에 다니고 있으니 도서관 직원들과 낯이 다 익어 버렸다. 그중에 동그란 안경을 쓴 언발란스 단발머리의 30대로 보이는 여자직원이 조금 더 다정하게 굴었다. 들어오고 나갈 때 나보다 더 환하게 웃으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는가 하면 비가 올 때는 우산 있으시냐고 친절하게 물어 주기도 했다. 좀 이른 시간에 도서관을 나설 때는 인사 끝에 오늘은 좀 일찍 가시네요... 하면서 특별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어젯밤 9시 무렵엔 가방을 챙겨 나오면서 최은영 작가의 장편소설 '밝은 밤'을 대출하기 위해 도서관이용증과 함께 내밀었다. 그 여직원은 내가 내민 책을 보더니 "선생님 이 작가의 쇼코의 미소, 얼마 전에 읽었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선생님도 읽으셨죠? 어땠어요?" 하면서 책과 나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동그란 안경 속의 두 눈이 기대와 호기심과 반가움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 내가 이렇게 거의 매일 도서관에 다닌다고 책에 대해서 나를 과대평가할까 늘 두려운데 바로 그 상황이 된 거였다. 더구나 선생님이라는 호칭의 어색함이라니....

다행히 쇼코의 미소는 내가 읽은 책이었다.

"네.... 나온 지 꽤 됐죠 아마..... 정말 좋았죠....(밝은 밤, 책을 들어 올리며) 이 책은 이 작가가 처음 쓴 장편인데... 장편보다 단편이 좋다고들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대충 대답하고 급하다는 듯 서둘러 목례를 하고 도서관을 나왔다.

아, 최근에 나온 단편소설집 '애쓰지 않아도'도 좋았다고 말할걸...'내게 무해한 사람'도 괜찮았는데... 그런데 쇼코의 미소가 어떤 내용이었더라.... 제목은 확실히 생각이 나는데 내용은 전혀 생각이 안 나네... 집에 가서 한 번 찾아 읽어볼까...

나는 나의 턱없이 부족한 독서량과 얉은 지식이 들통날까 봐 이런 식으로 말 걸어오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 도서관 출입을 좀 줄여야 하나.... 고민스러운 정도다.


출근하려던 남편이 이번 주 금토일 근무가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얼떨결에 금토일은 오전근무(오전 10시 - 오후 5시)라고 대답했다. 언론사에 근무하는 남편의 휴무는 금요일이다. 남편은 별일이 없으면 금요일엔 집에서 쉬고 토요일엔 등산이나 모임을 가고 일요일엔 재택근무를 한다. 주중엔 거의 저녁까지 밖에서 해결하고 늦게 귀가하기 때문에 나는 될 수 있으면 금토일은 오전 근무라고 말하고 일찍 나가서 일찍 귀가한다. 가족으로서 주말의 저녁 정도는 함께 보내야 할 것 같은 마음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는 주말엔 도서관이 6시에 운영이 끝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편은 금요일에 인천 송도에서 맥주축제가 있으니 한 번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그러자고 했다.

남편은 출근했고 나는 이것저것 집안일을 하면서 머리를 또 굴리기 시작했다. 금요일에 인천 송도 맥주축제에 가기 위해서는 내가 5시에 퇴근해서 전철로 오니까 남편은 당연히 전철역에서 만나자고 하겠지…. 내가 집 근처 도서관을 이용하면 남편 몰래 퇴근 시간에 맞게 전철역에 나가 있어야 하는데 내가 도서관에서 나와서 전철역에 가는 동선과 남편이 집에서 나와서 전철역에 가는 동선이 겹칠 수가 있다. 만에 하나라도 마주치게 된다면? 아직 들통나면 안된다.


그렇다면…


가끔 뚫어 놓고 싶어 하던 ㅇㅇ 중앙도서관으로 진출해 볼 때가 된 건가??


내가 사는 아파트 뒤쪽에는 짧은 천변이 있고 천변의 다리를 넘으면 굴다리가 나온다. 그 굴다리를 걸어 나가면 내가 사는 ㅇㅇ시와 이웃인 ㅇㅇ시의 경계이고 그 경계 너머에 이웃 시의 지명이 들어간 ㅇㅇ도서관이 있다. 이웃 시의 도서관이지만 집과 가까워서 그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다. 또 한 도서관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ㅇㅇ작은 도서관, 이라고 ㅇㅇ행정복지센터 4층에 있다. 나는 상황에 따라서 두 도서관을 이용하는데 이웃 시의 ㅇㅇ 도서관을 더 자주 이용하는 것은 운영시간 때문이다. 이웃 시의 도서관은 주중 10시까지 운영되는 반면 ㅇㅇ작은 도서관은 6시까지만 운영된다. 주말은 두 도서관 모두 6시에 운영이 끝난다.


ㅇㅇ 중앙도서관은 검색해 본 결과 내가 이용하는 집 근처 두 개의 도서관보다 훨씬 규모도 크고 시설도 당연히 더 좋아 보였다. 매점과 식당이 있고 북카페 등 편의시설도 있다. 예를 들자면 학교의 본교와 분교의 차이랄까.....

어떤 곳이든 처음 한 번 가기가 망설여지고 어려운 법이다. 한번 가고 나면 두 번째는 훨씬 더 쉬워지고 그다음은 점점 더 쉬워진다. 언젠가 승용차로 그 근처를 지나갈 때 차창 밖으로 잠깐 스치듯 본 그 웅장한 규모에 더욱 욕심을 내고 있었는데 전철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단점이 있어서 지금까지 생각만 할 뿐 시도를 하지 않았다. 승용차도 생각해 보았지만 주차장이 좁아서 될 수 있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설명에 바로 포기했다.


그런데 오늘 시도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러면 금요일에 시간 맞춰 전철역 안에서 남편을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가끔 비가 많이 내리거나 할 때 역까지 데려다준다는 남편이나 아들의 호의를 받아들여도 된다.

전철도 타고 버스도 타야 한다고 생각하니 꼭 먼 길을 떠나는 것처럼 또 다른 기분이 들었다. 비비크림만 바르고 끝낸 얼굴에 팩트를 두드려 얼굴색을 좀 화사하게 하고 립스틱도 좀 더 진하게 발랐다. 편하다는 이유로 입고 다니던 치마처럼 펑퍼짐한 고무줄 바지 대신 호크로 채워서 허리가 조이는 통바지를 입었다. 무거운 구형의 노트북 때문에 키플링 백팩은 바꾸지 못했다.


햇살은 뜨거운데 가끔 불어오는 바람 끝이 선선했다. 그악스럽게 울어대던 매미 소리도 어쩐지 힘이 빠진 듯 들리고 기세등등하던 녹음도 어쩐지 지쳐 보였다.

20여 분을 걸어가서 전철역에 도착했고 한 정거장을 가서 내렸다. 1번 출구로 나오니 바로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대학교 스쿨버스를 타려는 학생들이 줄을 서 있었다. 오래지 않아 버스가 왔다. 10여 분을 또 가서 내렸다. 400미터 앞에 ㅇㅇ도서관이 있었다. 가로로 서 있는 크고 단단한 돌에 'ㅇㅇ 도서관'이라는 글자가 위풍당당하게 새겨져 있었다.

나는 좀 두리번거리며 도서관에 들어섰다. 오전 11시 무렵이었다. 도서관 안내도를 살펴본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 문헌정보실에 들어갔다. 집 근처 도서관의 문헌정보실보다 거의 세 배는 컸고 책도 어마어마하게 많고 곳곳에 책 읽을 공간도 넉넉했다. 특히 창가에 마련된 공간이 많아서 골라 앉아도 될 여유를 주었다. 집 가까운 도서관에는 조금만 늦게 가도 내가 원하던 창가 자리는 늘 누군가 선점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나는 또 내가 출근한다고 나와서 갈 수 있는 곳 또 한 곳을 확보해 놓았다. 집 근처 도서관 두 곳과 전철과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 이곳 도서관과 사당역 복합쇼핑몰 '파스텔시티'까지.


이 정도면 나는 얼마든지, 언제까지라도 퇴사를 속이고 도서관을 직장처럼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월급까지는 아이더라도 아르바이트비라도 벌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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