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가보고 완전 맘에 들어 집 나와 갈 수 있는 또 한 곳을 확보했다고 좋아하던 ㅇㅇ 중앙도서관으로 가려고 했던 맘이 변하고 있었다. 어차피 오후 5시까지 밖에 있을 수 없는 게 걸렸다. 전철과 버스까지 타고 그 먼 길을 갔는데 겨우 오후 5시에 나와야 한다는 게 아쉽고 억울할 것 같아졌다. 아무도 모르고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그 누구와의 약속도 없는 완전 자유방임 그 자체인 내 머릿속은 이렇게 시시때때로 변화무쌍하다.
바람이 잔잔히 불어오지만 아침 햇살이 아직 제법 뜨거웠다. 전날 새로운 곳을 개척(?)하느라 나름 긴장하고 힘들었는지 뜨거운 아침 햇살을 받자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피곤해졌다.
그래, 오늘은 그냥 집에서 가장 가까운 ㅇㅇ작은 도서관으로 가자... 설마 남편과 마주칠까.... 그 정도로 재수 없지는 않을 거야.... 혹시 마주치더라도... 뭐... 어쩌겠어... 이쯤 하고 그만두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야지....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천변 건너 작은 공원 지나 주유소 지나 경찰서와 소방서 지나 ㅇㅇ복지센터 건물에 들어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을 눌렀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아무도 없었다. 4층에 내렸다. 어쩐지 복도가 어둑어둑했다. 오늘도 첫 방문자 같군.... 생각하며 내려서 도서관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금일은 도서관 휴관일입니다'라는 팻말이 도서관 입구에 떡 버티고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뿔싸, 맞다.... 이 도서관은 금요일이 휴관일이지....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4층에 그대로 서 있는 엘리베이터를 다시 타고 내려왔다.
아.... 또 어디로 가야 하나....
이웃 시에 있는 ㅇㅇ 도서관으로 가기에는 너무 멀다.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전철역까지 오려면 집을 나서는 남편과 마주칠 확률이 가장 크다. 그리고 남편은 쉬는 날 종종 짐 근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도 하니까...
ㅇㅇ행정복지센터 앞에서 어찌할까 한참 망설이다가 결국은 전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 날 전철로 한 정거장을 가서 내려서 버스를 탔을 때 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이 좀 길었던 것 같아서 혹시나 하고 다시 가는 길을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전철로 두 정거장을 가서 버스를 타는 방법이 5분 정도 단축된다고 나와 있었다. 두 정거장을 가서 버스를 탔다. 한 정거장만 가서 버스를 탔을 때보다 코스도 편하고 시간도 단축되었다.
ㅇㅇ중앙도서관에서 오후 4시 40분 무렵 나왔다. 도서관을 나와서 버스 정류장으로 가려다가 또 내 생각이 흔들렸다. 시간도 넉넉하니 걸어가면 얼마나 걸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네이버로 확인해 보니 의외로 2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사람에 따라서는 25분 걷는 건 너무 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워낙 걷기를 좋아하고 다리가 튼튼한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네이버 엡을 켜놓고 따라 걸었더니 천변이 있는 큰 도로를 따라 쭉 걸어가는 길이었다. 중간에 살짝 길을 잘못 들어 헤맨 시간이 있어서 거의 30분을 아직은 뜨거운 햇살을 받으면 걸었더니 땀이 좀 났지만 이렇게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는 뿌듯함도 있었다. 다음부터는 전철로 두 정거장 와서 걸으면 이 좋은 도서관에 도착하는 거다. 점점 걷기 좋은 계절이 오고 있으니 더욱 좋지 아니한가.
좋은 건 여기까지였다. 남편에게 ㅇㅇ역에 도착할 시간을 알려줘야 했다. 내가 다니던 백화점과 연결된 전철역에서 남편과 만나기로 한 전철역까지를 카카오지하철로 확인해 보고 그 시간에 맞게 남편에게 톡을 보내야 했다. 5시에 퇴근해서 유니폼도 갈아입어야 하니 20분쯤 전철을 탄다고 가정하면 집에서 가까운 전철역에서 남편과 만날 시간은 50분쯤으로 하면 될 것 같았다. 전철역사 안에 들어가서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두 대의 전철을 보내고 탔다. 그렇게 나 혼자 지난한 과정을 거쳐 남편과 만나기로 한 역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전철역 플랫폼 의자에 조금은 지친 모습으로 앉아 있는 내 모습이 남편에게는 백화점에서 일을 한 후의 퇴근길이라 좀 피곤해 보이는 그 모습일 터였다.
인천 송도 맥주 축제는 인천 1호선 ‘송도달빛축제공원’ 역 근처에서 열린다고 했다. 한번 환승해야 하고 시간은 거의 50분이 걸렸다. 처음 타보는 노선인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서서 가야 했다. 퇴근시간과 맞물려서일 수도 있고 우리처럼 맥주축제에 가는 사람들 때문일 수도 있다는 얘기를 나누며 갔다. 긴장감이 풀려서인지 뒤늦게 진짜 피곤이 몰려와서 자꾸 하품이 났다. 솔직한 내 마음은 이런 축제에 가는 거보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집에서 쉬는걸 더 원했다.
그러나 나는 남편에게 약하다. 젊어서는 밖으로만 돌면서 이렇게 같이 다니는 기회를 별로 만들지 않더니 나이 들면서 같이 어디 가자는 제안을 종종 자주 한다. 한 때는 이혼을 생각할 만큼 심각한 적도 있었고 한 집에서 소 닭 보듯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몇 달을 지낸 적도 있었지만 그 모든 역경과 고난을 이겨낸 지금은 그저 함께 늙어가는 세상 가장 편하고 가까운 길동무로 잘 지내고 있다. 그 이유를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분인 '김 훈' 작가님의 글에서 찾았다.
김훈 작가님은 에세이 ‘연필로 쓰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결혼이란 오래 같이 살아서 생애를 이루는 것인데, 힘들 때도 꾸역꾸역 살아 내려면 사랑보다도 연민이 더 소중한 동력이 된다 …… 연민은 서로를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다. 연민에는 이기심이 들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사랑이 식은 자리에 연민이 메우면, 긴 앞날을 살아갈 수 있다. …….. 사랑은 단거리고 연민은 장거리다. 빚쟁이처럼 사랑을 내놓으라고 닦달하지 말고 서로를 가엾이 여기면서 살아라….
그리고 요즘은 연민이 아니더라도 더욱 너그러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닌가. 비록 나쁜 맘을 먹거나 나쁜 짓을 하고 다니지는 않지만 어쨌든 남편에게 퇴사를 속이고 있으니까 말이다.
축제장은 역에서 10분 정도 걸어야 했다. 입구에 안전요원과 안내요원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었다. 국내 최대 규모라더니 정말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잼버리 대회가 열리다 만 새만금 방조제가 생각날 만큼 넓었다. 각종 안주 부스와 축제의 주인공인 맥주 부스가 넓은 잔디밭의 둘레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무대도 두 곳이 만들어져 있었고 무대 앞 테이블은 벌써 빈자리 하나 없었다. 돗자리를 들거나 매고 오던 사람들은 한 번쯤 축제에 참가해 본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테이블이 끝나는 곳부터는 돗자리 부대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잔디밭이기는 했지만 그냥 맨바닥에 앉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앉을자리를 찾아 한참을 돌아다녔다. 거의 포기하고 내 가방에 들어 있는 장바구니와 아직도 넣고 다니는 여름휴가 때 갔던 선유도 관광 안내도라도 꺼내 펼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빈자리 하나가 딱, 눈에 띄었다. 이렇게 재수가 좋을 수가....
남편을 자리에 두고 나는 안주와 맥주를 사러 갔다. 튀김, 피자, 햄버거, 마른안주, 케밥, 꼬치 등 수많은 안주 부스마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부스도 많았지만 나는 줄이 없는 가장 빨리 사 갈 수 있는 안주코너를 택했다. 그렇게 선택한 것이 닭강정과 튀김세트였다. 닭강정이 19000원 튀김세트가 25000원이었다. 안주를 테이블에 갔다 놓자 남편은 맥주를 사러 갔다 왔다. 페트병에 1000cc를 일단 사 왔다. 맥주는 시원하고 짜릿하고 분위기 때문인지 그 맛이 생생했다. 무대에서는 육중환밴드가 나와서 방방 뛰면서 록음악을 선보이고 있었지만 무대가 너무 멀어서 사람은 엄지손가락만 하게 보이고 화면으로 봐야 했다. 무대 앞쪽의 젊은이들은 가수와 함께 일어서서 마구 뛰고 흔들면서 진짜 축제를 즐기는 것 같았다. 밴드 타임이 끝나자 불꽃놀이가 진행되었다. 곧게 올라가서 한 번에 팡, 터져서 꽃처럼 활짝 피어났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불꽃의 허망함이라니..... 그리고 축제의 한 코너로 누가 준비라도 한 듯이 우리가 앉은 쪽 왼쪽 하늘에서 5년 만에 뜬다는 평소보다 크게 보이는 보름달 슈퍼블루문 달이 두둥실 떠올랐다. 최고급 럭셔리 조명처럼 크고 동그랗고 밝았다. 맥주는 2000cc를 나누어 마셨고 안주는 닭강정이 반 정도 남았다. 남편은 버리자 했지만 나는 꽁꽁 싸서 가지고 다니는 장바구니에 넣었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노브래인 밴드가 나오기 직전에 우리는 축제장을 나왔다. 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축제장을 빠져나가는 시간에 끼여 있고 싶지 않았다. 9시쯤이었는데 그 시간에도 축제장을 찾아 들어가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돌아와서는 피곤해서 씻고 바로 잤다. 꿈도 없는 깊고 곤한 잠이었다.
오늘 아침엔 정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오전근무라고 말해 뒀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ㅇㅇ작은 도서관으로 왔다. 도서관 직원이 마대를 들고 바닥 청소를 하고 있는 이른 시간, 내가 첫 방문자였다. 창가에 가방을 내려놓고 노트북도 꺼내 놓았는데, 하품이 계속 나고 잠이 쏟아졌다. 나는 노트북도 켜지 않은 채로 그대로 두 팔을 책상 위에 올려 둥글게 말고 그 속에 얼굴을 묻었다. 중간에 몇 번 깼었고 자세를 몇 번 바꾸었다. 정신을 겨우 차리고 보니 두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기름을 치고 싶을 만큼 온 몸의 관절은 뻑뻑하고 근육은 단단하게 뭉쳐 있었다. 앉은 채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좌우로 몸을 돌리고 두 팔을 기지개 켜듯이 올려 보고 고개도 돌려 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아.... 피곤하다 정말 정말 피곤하다….
그런데 정신은 은화처럼 맑다.....
벌써 9월인데....
이 피곤함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내가 아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속이고 사는 이 길의 마지막에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