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살자고 무거운 마음으로 생각한다네

정말 쉬고 싶은 일요일에 기어코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by 찌니

남편이 일어나라고 툭툭 건드려서야 일어났다. 밖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쉬고 싶은 마음 굴뚝같은데 기어이 가방을 메고 집을 나왔다. 도서관 직원이 빗자루로 서가와 서가 사이의 바닥을 쓸고 있었다. 오늘도 내가 첫 이용객이다.

일요일이니까 브런치스토리는 하루 쉬고 책을 읽자고 생각했다. 오늘도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또 엎드려서 두 시간 정도를 잤다.


최은영 <밝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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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지연 씨 말이 오래 기억 남았어요. 이게 숨구멍이라는 말. 이 공부를 할 때 가장 자유롭고 편안하다고 했어요. “

그때의 내 마음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세계가 지구 밖에 있다는 사실은 나의 유한함을 위로했다. 우주에 비하자면 나는 풀잎에 맺히는 물방울이나 입도 없이 살다 죽는 작은 벌레와 같았다. 언제나 무겁게만 느껴지던 내 존재가 그런 생각 안에서 가벼워지던 느낌을 나는 기억했다. 무리를 이루는 듯 보이는 밤하늘의 별들도 철저히 혼자이며, 하나의 점으로 응축되어 있던 물질들이 팽창하는 우주 속에서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어린 시절부터 줄곧 느껴왔던 슬픔을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그 순진무구한 사랑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차츰 빛을 잃어갔고, 그 자리는 현실적인 크기의 희망으로 대체됐다. 나의 숨 쉴 구멍이었던 존재가 일이 되고 나의 가능성이 한계가 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팀장님은 왜 천문학을 전공하셨어요?”

“어릴 때 극장에서 ET를 봤거든요. “

썰렁한 농담이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는데 팀장이 말을 이었다.

“이티가 착한 애잖아요. 손가락으로 빛을 밝혀서 사람들 다친 데도 고쳐주고, 친구도 되어주고, 엄마 따라 극장 가서 그 영화를 봤는데 어느 장면에선가 이티가 저를 보고 있는 거예요. 카메라를 보는 게 아니라, 모두를 보는 게 아니라. 극장 맨 앞 좌석에 앉아 있는 나를 보는 거죠. 내가 자기를 보는 걸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었어요. 아직도 그 순간을 기억해요. 이티가 마지막에 자기 별로 돌아갈 때 얼마나 울었는지 엄마가 부끄럽다고 할 정도였어요. 그 이후로 밤이 되면 하늘을 올려다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어릴 때 친구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하늘을 올려다보면 거기 어딘가에는 내 친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팀장을 데려다주고 집으로 가는 동안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어린 팀장의 얼굴을 상상해 봤다. 예의 바르고 말을 가려하고 자신의 사적인 부분을 잘 얘기하지 않는 그녀가 내게 틈을 보인 순간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녀의 말이 위안이 되어서 나는 조금 놀랐다. 잠자리에 누워서야 어쩌면 그것이 그녀 방식의 위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73페이지

전남편에게는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는 시간은 흘러가는 강물이 아니라 얼어붙은 강물이라는 말을 즐겨했다. 시간은 환상일 뿐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자유의지나 선택이라는 것 또한 커다란 환상일지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그런 식의 생각에는 분명 이점이 있었다. 그런 믿음은 무엇보다도 인간을 후회의 덫에서 구원해 준다. 과거의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현재의 고통이 없었으리라는 사고의 공회전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속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을까. 이건 일어날 일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199페이지

하지만 할머니는 그날 그 자리에서 불안을 느꼈다. 경계하지 않을 때, 긴장하지 않을 때, 아무 일도 없으리라고 생각할 때, 비관적인 생각에서 자유로울 때, 어떤 순간을 즐길 때 다시 어려운 일이 닥치리라는 불안이었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전전긍긍할 때는 별다른 일이 없다가도 안심하면 뒤통수를 치는 것이 삶이라고 할머니는 생각했다. 불행은 그런 환경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겨우 한숨 돌렸을 때, 이제는 살아볼 만한가 보다 생각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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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나의 퇴사를 얘기했다면 오늘 난 집에 있었을 것이고 집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일단 늦잠을 잤겠지.... 늦은 아침 이른 점심을 준비했겠지. 일요일이니까 특별히 남편이 좋아하는 국수를 했을 수도 있겠지.... 비가 슬금슬금 오니까 부침개를 부쳤을 수도 있겠지.... 빨래도 했겠지... 그리고 낮잠도 한숨 잤겠지.... 미루어 두었던 이불빨래를 했을 수도 있겠지.... 청소도 했겠지.... 간간히 책을 읽으려 시도는 했을 것이다. 조금 읽다가 굴러다니는 먼지가 보여 청소를 시작했을 것이며 또 책 읽기를 시도했다가 뜬금없이 냉장고 정리를 했을 수도 있겠지...


무엇이 중요한 일일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세계가 지구 밖에 있다는 사실은 나의 유한함을 위로했다. 우주에 비하자면 나는 풀잎에 맺히는 물방울이나 입도 없이 살다 죽는 작은 벌레와 같았다.


결국은 풀잎에 맺히는 물방울이나 입도 없이 살다 죽는 작은 벌레와 같은 존재일 뿐인 내가 한없이 늘어지고 가벼워져도 좋을 일요일에 도서관에 와 앉아 이런 무거운 생각들을 하고 있다.


가볍게 살고 싶다... 아무렇게나 살자는 건 아니다.....


이건 작가 은희경 님의 장편소설 '마지막춤은 나와 함께'에 나온 말이다. 그러나 난 지금 가볍게만은 살 수 없는 상황이다. 누구도 아닌 내가 만든 상황, 내가 판 무덤이다.


그러니까? 그러므로? 그래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될 수 있으면 가볍게 생각하고 가볍게 생활하자.... 아무렇게나는 아니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이 무거운 표정과 이 답답한 마음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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