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유난히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지난 9월부터 바다 보고 싶다 동해바다 가고 싶다 노래를 불렀는데 이제야 가게 됐다. 작년엔 9월 17일에 갔었는데... 인원은 그때 갔던 여섯 멤버 중 한 명이 빠진 5명. 남자 둘 여자 셋이다. 굳이 남자 여자 나누기도 어색한, 중학생 때부터 시작된 오래된 친구들이라 우리들의 배우자들도 인정해 준다.
11월 11일, 갑자기 닥친 이른 아침의 추위는 매웠다. 전철을 기다리는 짧은 시간에도 얼굴이 얼얼해져서 배낭에 넣어 온 목도리를 꺼내 둘렀다. 좀 더 일찍 갔으면 좋았을걸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작년 9월의바다여행은 바닷물에 뛰어들어도 괜찮을 만큼 알맞게 더웠었다.
강릉 경포대 바다와 연결된 경문 바다의 모래 해변 위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음식도 배달시켜 먹으면서 도착한 늦은 오후부터 밤늦도록 술을 마시며 바다를 감상했다. 필요한 것은 그때그때 가까운 편의점을 이용했다. 그 한 자리에서 저녁이 오고 노을이 지고 밤이 오고 그 밤이 깊어질 때까지 그야말로 실컷 바다를 보았다. 술기운이 분위기와 어우리져 그 감흥을 주체 못 한 내가 밤바다에 걸어 들어갔고 그걸 위험하다고 느낀 친구가 만류하면서 따라 들어와 잡아당기고 하는 와중에 친구의 핸드폰이 바닷물에 빠지고 하는 소동이 있었다. 돌아온 후 그 일은 몇 번 술자리의 안주가 되어주었다. 물론 핸드폰을 바다에 빠트린 친구는 한동안 업무에 지장이 있었지만 조금도, 지나가는 말로라도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50대의 우리는 아직도 그렇게 논다. 애써 유명한 관광지나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우리는. 이번에도 아마 그 비슷하게 보내지 않을까 싶었다.
이번에는 부득이하게 좀 위험하게 운전을 해서 모두가 꺼리는 친구의 벤츠를 이용하게 되었다. 말로만 들었는데 확실히 운전하는 게 달랐다. 카레이서가 경기하는 차에 동승한 것 같았다. 좀 과장해서 오래전에 타보았던 놀이동산의 청룡열차를 탄 것도 같았다. 우리가 이구동성으로 만류해도 잠시 뿐 금방 질주본능이 되살아났다. 그래도 40년 무사고란다. 아직 초보 운전자인 나에겐 거의 운전의 신과 같이 보였다.
이렇게 과하게 운전하는 이 친구의 평소 겉으로 드러나는 분위기는 조용하고 진중하고 엄청 배려심이 깊다. 반면 평소 시끄럽고 괄괄한 정반대의 친구는 오히려 운전할 땐 지나치게 얌전하다. 사람이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족속들이다. 이해를 못 하니 쉽게 오해해 버리는 건지도 모른다고... 김빕과 약밥과 계란과 귤을 차례대로 먹어치우며 운전과 성격에 대한 이런 얘기들을 하다 보니 금방 목적지에 도착했다. 너무 빨리 도착한 듯 아쉬움이 남을 정도였다.
미리 예약한 강릉시 주문진읍의 해랑펜션에 오후 2시 무렵 도착했다. 숙소 앞이 바로 바다였다. 우리가 원하던 바로 그 숙소라고 숙소를 예약한 친구에게 고마움을 한껏 표현했다. 사실 작년과 재작년의 바다여행 때는 숙소 예약을 하지 않았었다. 모두 어느 정도 계획을 세워서 움직이기보다 즉흥적으로 일단 저지르고 보는 성향들이라 늘 약간의 불편함과 썩 맘에 들지 않는 숙소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닥친 영하의 추운 날씨라 휴양객들도 별로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검푸른 빛깔의 바다는 웅장했다. 파도는 커다란 소리를 내며 높고 힘차게 다가왔다가 다음 주자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듯 섞여들며 스러져 갔다.
와아... 바다다... 겨울바다다...
우리는 그렇게 소리치며 푹푹 빠지는 바닷가 모래밭을 걷고 뛰었다. 바다 앞에 서면 우리는 모두 조금씩 나사가 풀린 듯 느슨하고 가벼워졌다. 20년 가까운 세월을 산으로 둘러싸인 깊은 산골에서 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바다는 크기는 달라도 우리 모두의 유년의 꿈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다가와 부딪치는 파도에 방파제는 흠뻑 젖어 있었다. 울퉁불퉁하게 패인 바위엔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바닷물이 고여 찰랑대면서 다음 파도를 기다렸다. 우리는 패인 곳을 피해 방파제 끝까지 걸어 들어갔다. 검푸른 파도가 거침없이 다가와 방파제에 부딪치며 우리 키를 훌쩍 넘는 물보라를 일으켰다. 그 속에서 수학여행 온 소녀들처럼 깔깔거리며 까불었다. 옷은 바닷물이 튀어 얼룩이 졌고 운동화 속에도 물이 스며들어 축축하고 무거워졌다.
어느 정도 숨이 차고 몸에도 온기가 돌 즈음 펜션 건물의 1층 횟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제철이라 더욱 쫄깃쫄깃한 농어회와 소주를 마셨다. 고개만 들면 흰 레이스자락을 펄럭이며 거침없이 다가왔다가 아쉬운듯 멀어져가는 파도를 품은 바다가 보였다.
웃고 떠들며 잔을 비우다가도 어? 바다가 왜 자꾸 다가오지? 어? 바다 색깔이 점점 진해지네... 아 밤이 오나 봐... 어떡하지? 시간이 자꾸 가네... 어떡하지? 아까운 시간이 자꾸 가...ㅇㅇ야... 시간 좀 잡아 봐... 더 못 가게 꽁꽁 묶어서 가둬 줘... 히힝... 하면서 바다를 향한 애정을 멈추지 않았다.
갑자기 횟집 앞 도로 건너 바다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술렁거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빼고 주시하는 우리에게 횟집 직원이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 찾아온 중국 관광객들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드라마 도깨비의 두 주인공 은탁과 김신이 만나는 사진 포스터가 세워져 있는 것도 보였다. 바로 코앞에 있는 것도 몰라보다니...
우리가 얼마나 그런 유명한 곳 북적이는 곳에 무심한지, 그리고 얼마다 바다 그 자체에만 열중하는지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그래도 유명한 곳이라니 뜻밖에 찾아온 행운처럼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4층 숙소에서도 창문을 열면 바다가 보였다. 바다여행에서 이렇게 바다가 통째로 내려다보이는 숙소를 잡은 것이 처음인 듯했다. 어둠 속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는 시각보다 청각을 자극했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편의점 음식들을 펼쳐놓고 둘러앉아 2차를 했다. 음악을 틀어놓고 앉은 채로 어깨를 들썩이다가 결국 노래방까지 갔다. 갈 때는 택시로 갔고 올 때는 깊은 밤의 바닷가 길을 걸어서 돌아왔다.
자다가 몇 번이나 깼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의 파도소리는 바로 옆에서 들리는 장중한 교향악처럼 깊고 선명했다. 아니 우리의 바로 밑에서 들리는 것도 같았다. 흔들리는 배 안에 누워 오랜만에 깊고 편한 잠을 청하는 유랑자 같은 마음이 되기도 했다.
와아... 해... 뜬... 다....
가장 먼저 일어난 내가 블라인드를 걷고 신선하게 시작되는 바다의 아침 앞에 섰다. 단지 조용히 속삭였을 뿐인데 어느새 모두 일어나 창가로 다가와 있었다. 우리는 함께 나란히 서서 검푸른 아침의 바다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검푸른 바다는 시나브로 밝은 푸르름으로 변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