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같지 않은 동생 언니 같지 않은 언니

by 찌니

오후 4시 무렵 이웃 시에 사는 친구가 벙개 모임을 주선했다. 김장을 했으니 보쌈에 막걸리 한잔 하자는 것이었다.


십 년쯤 전에 나는 지금 살고 있는 경기도 남부의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이사 온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이 친구 안의 전화를 받았다. 안은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녔으며 절친은 아니지만 비교적 잘 지낸 친구들 중의 한 명이었다. 안은 우연히 내가 이사 온 것을 알게 되었다며 가까이에 동창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번 다 같이 보자 했다.

그렇게 나의 이사를 계기로 모인 동창들이 열 명이 거의 되었으며 그 후 10여 년 동안 이런저런 부침을 겪다가 지금은 가장 마음미 맞는 다섯 명이 정기 모임을 갖고 있다.


지난 11월 14일에도 정기모임을 가졌는데 벙개모임에도 다 모였다. 안의 남편까지 여섯 명이 안의 부동산 사무실에 오후 여섯 시 반에 모였다. 버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싱싱한 김장 김치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보쌈고기와 막걸리와 배추부침개가 한 상 차려졌다. 을씨년스러운 겨울비와 찬 바람이 부는 날씨였다.


이런저런 대화 중에 너는 김장했냐고 안이 물었고 나는 김장을 한 게 아니고 김장이 왔지 벌써....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아 동생이 해서 보내준댔지?라고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한 술 더 떠서 보쌈해서 먹으라고 절인 배추와 배추 속까지 따로 싸서 보냈더라... 파김치랑 갓김치랑 깍두기까지... 부럽지? 이런 동생 있으면 나와 봐라...라고 과장되게 으스대는 시늉을 해 보였다.

이에 보다 못한 창이 야 넌 언니가 돼서 동생한테 해 주지는 못하고 얻어먹는 게 자랑 이냐? 하면서 쥐어박는 시늉을 했고 나는 에효 그건 그래... 하면서 꼬리를 내리는 척하다가는 바로 또 큰소리쳤다.


아니 내가 해보겠다고 해도 하지 말래... 나 겨우 세 식구, 식구도 몇 안되니 그냥 자기가 하는 김에 조금 더 해서 보내주겠다고... 그러는데... 뭐... 굳이... 헤헤...

동생이 보내준 김장김치




의정부에서 제부와 함께 치킨집을 하는 동생은 시댁과 시누이 다섯 명이 모두 의정부에 살고 있다.

김장을 할 때는 주택에 사는 시댁에 다섯 시누이가 다 모여서 김장을 한단다. 처음엔 생배추를 사서 밤 새 절이고 했는데 몇 년 전부터 절임배추를 사서 한다고 했다. 다 한 김치를 각자 가져갈 만큼 나누는데 그렇게 나눌 때 동생은 나에게 보낼 몫까지 조금 더 챙겨 온다는 것이다. 물론 시댁에 언니인 나에게 보내줄 거란 얘기는 굳이 하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아직도 한 번도 김장을 직접 해보지 않았다. 언니도 아니고 엄마도 아닌 동생이 나의 김장을 책임지고 해 준다는 사실이 좀 그런가? 흔치 않은 일인가? 하긴 나 외에는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적어도 내 주변엔. 회사에 다닐 때도 김장철이면 김장한다고 연차나 월차를 쓰고 김장하고 온 다음날에는 아이고 팔다리야 하는 모습을 그저 나는 남의 일인 듯 구경만 했다.

생각해 보면 언제부터인지 나보다 동생이 더 속이 깊고 현실적이고 언니 같았다. 내가 뒤늦게 공부해서 대학 가겠다고 철없이 설칠 때부터였었나... 동생은 월급을 타면 나를 불러내 맛있는 걸 사 먹이고 옷을 사주고 용돈도 찔러 주었었다. 내가 낮에는 빈둥거리고 밤에는 턱없이 높은 꿈을 꾸며 밤잠을 설칠 때 퇴근한 동생은 꼼꼼하게 세수를 하고 얼굴에 팩을 붙이고 매니큐어 바른 손을 가슴에 얹고 옅은 코를 골며 쉽게 금방 잠이 들었었다. 좁은 자취방에서 내가 켜 놓은 스탠드 불빛이 잠을 방해하거나 성가실 만도 한데 동생은 아랑 곳 않고 잘 잤다. 나는 그런 동생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가 많았다. 잠든 동생의 얼굴은 피곤한 듯 평온해 보였다. 당시의 나는 그렇게 사는 20대 동생이 아까웠다.


키가 크고 날씬하고 얼굴이 작고 예쁜 동생은 고등학교 졸업 후 모델학원의 문을 두드려 합격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반대를 이유로 쉽게 그 꿈을 접었다. 당시 동생의 맘 속 갈등과 방황이 어땠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그 기간이 길지는 않았다. 왜 그렇게 쉽게 포기했냐고 물었을 때 동생은 그랬다. 에이 언니야... 안될 것 같더라고.... 나 좁은 시골동네에서나 좀 그렇게 보였지....

동생은 착실하게 직장생활을 했고 돈을 모았고 적당한 나이에 결혼을 했고 아들 딸을 낳았고 다섯이나 되는 시누이들과 어울려 야무지고 당차게 살아냈다. 녹록지 않은 결혼생활이었음이 분명한데도 친정인 우리 집의 이런저런 행사나 모임에도 항상 정성을 다했다. 친정에 와서도 특히나 막내임에도 일체의 어리광이나 얄미운 잔꾀를 부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더 바지런을 떨고 더 발 벗고 나서서 오히려 친정이라고 빈둥거리는, 아니 빈둥거리고 싶은 나를 가끔 불편하게 했다.

그래서 올케언니 둘은 동생을 좋아한다. 오빠들과의 갈등을 동생에게 의논하고 하소연할 정도다.

지금도 모든 면에서 허랑한 나에게 변함없이 가장 자주 안부 전화를 해 주는 이도 동생이다. 동생은 나보다 세 살 어리다. 동생에게 나는 항상 미덥지 못한 언니다. 그렇게 되어 버렸다.

이 철없는 언니는 동생의 결혼식날 하도 울어서 엄마에게 쥐어 박힌 에피소드를 남겼을 뿐...





해산바라지까지 직접 해줄 정도로 동생들에게 잘해 주는데 이상하게도 동생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친구가 있다. 물론 내 모르는, 나에게는 말하지 않은 사정이야 있겠지만.

그 친구는 동생을 위해 그 무엇도 하지 않았고 어쩌며 무덤덤하고 어쩌면 냉정하기도 한 나를 동생이 이렇게 챙기는 것을 한편 부러워하고 한 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모르겠니? 너는 능력이 있고 언니답고 잘해주잖아. 그래서 너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그 기대치가 충족되지 않으면 서운해하고 그러는 거지.

나는 능력도 없고 잘해주지도 않으니까 아예 기대치라는 게 없어. 그런 말도 있잖아 열 번 잘해 주다가 한 번 못해주면 잘해준 열 번은 잊어버리고 못해준 한 번 갖고 서운해한다고.

그렇다고 잘해주지 말라는 건 아니고... 아니 다 성격이지 뭐... 너는 잘해 주는 게 니 성격이야 어쩌겠어... 그런데 요즘 이런 자기 계발서 제목이 있더라...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말아라... 아무리 그래도 너는 잘해주고 상처받으면서 살 것 같다... 왜냐면 그건 너의 타고난 성격이니까... 쉽게 바뀌지 않을걸... 잘해주고 상처 받고 그러다가 또 위로도 받고 사랑도 받고 ... 그렇게...

나 또한 쉽게 바뀌지 않을 거고.... 바뀌고 싶다 나는... 간절히... 피를 싹 갈아엎으면 바뀌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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