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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Feb 19. 2024

불량품들의 사계

파고드는 품을 내줄 수 있다면 이것 또한 69

파고드는 품을 내준다면 이것 또한



                                           

해는 속눈썹만큼 길어졌다. 추위는 여전하다. 콧등이 굳어버릴 것 같다. 이곳이 이 정도인데 알타이산맥 너머 저 시베리아 벌판은 얼마나 추울까.

나는 겨울이 되면 온몸을 감싸는 털이 자라는 상상을 해본다. 그래서 영하 70도에도 끄덕 않는 북극여우처럼 눈 위에서 자고 싶다.

창밖으로 나비가 마당을 가로질러 가고 있다. 밖으로 나갔다. 까불이가 달려와 밥그릇 옆에 앉는다. 물그릇에 물이 얼었다. 창고에서 사료를 꺼내다 밥을 주고 물을 받아주었다.   

   

네 시가 지나자 개미허리만큼 마루에 비추던 햇빛도 물러났다. 얼마 전 고향 연규 오라버니한테 가져온 가스난로를 일단으로 켰다.

이불을 들고나가 막대기로 탈탈 털어 마루에 던져놓았다. 까불이는 어느 틈에 찬바람을 묻히고 들어와 던져놓은 이불에 앉아있다.

“나비, 너 며칠 전 두더지 잡은 입으로 이불 위에 앉아있을 거여?”

“세수한 지가 언제인데”

 나비가 중얼거리는 거 같았다.  

   

까불이는 간혹 두더지, 생쥐, 물까치, 참새를 잡아 문 앞에 두고 갈 때가 있다. 생쥐를 잡아 발로 장난을 치고 있으면, 내가 생쥐를 살려주려고 저를 막대기로 쫓던 게 생각나는지, 제가 잡은 사냥감을 입에 물고 도망갈 때도 있다. 바람처럼 빠른 몸놀림으로 이랬다 저랬다 한다.

나는 빨리 갖다 버리라고 소리를 지르든지, 모르는 척  끝을 들고 몰래 집으로 들어올 때도 있다. 까불이가 문 앞에 생쥐를 잡아다 놓는 것은 나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라는데, 그 마음이 생쥐에겐 재앙이 되고 있었다.      


성길 씨를 불러 쥐를 치워 달라고 했더니 손으로 집어 휘익 하천에 던져버린다.

“아이고 환장허겠네, 당분간 멀리 떨어져 있어야지 차도 안 태워야지”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는 금세 잊어버리고 같이 차를 몰고 장을 보러 갈 것이 분명하다.


까불이는 살그머니 난방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까불이 밀어내는 것을 포기했다. 내 무릎에 턱을 괴고 몸을 오그리며 눈을 감았다. 무릎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몸을 쓰다듬으려고 손을 갖다 대는데, 그 순간 나비 콧바람이 내 손등에 와닿았다. 따뜻했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내 손끝에 산 짐승의 콧바람이 닿은 게.      


겨울밤은 참 길기도 하다. 이렇게 좁은 방 안에서 온기를 느끼면서도 공허함이 밀려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누군가에게 올리는 간절함이, 꼭 두 손을 맞잡고 기도를 해야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 파고드는 품을 내줄 수 있다면 이것 또한 기도가 아닐까. 내가 나비에게 한 일이라곤 시도 때도 없이 밥을 준 것뿐인데, 나비는 나를 보며 구르고, 목소리가 들리면 멀리서도 뛰어온다.   

   

지금 방 안의 온도는 7도. 주먹만 한 나비 얼굴이 방 안을 따뜻하게 해주고 있다. 나비의 턱밑을 살살 쓸어 주었다. 녀석은 가릉가릉 고골 송을 쏟아 놓으며 꼬리를 흔든다.

바람은 손이 몇 개일까.  시린 영혼들 대신 가로등 불빛을 핥던 바람이 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있다. 까마귀들이 감나무꼭대기를 옮겨 다니고 있다. 까불이가 몸을 녹였는지 방에서 나갔다. 무릎을 손으로 짚어보았다. 찬기가 돌면서 무릎 언저리가 시렸다. 무릎에 구멍이 뻥 뚫리는 같다. 찬바람에 코끝이 생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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