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혜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맑음, 병신 같은 여자, ‘눈물같은 여자’. 그녀의 집에 들어서면 한 잎의 시가 떠오른다.
그녀 이름은 차혜다. 내가 지어낸 소설 속 주인공 이름 같지만, 본명 맞다. 그녀는 키가 아주 작다. 그녀는 소나기 사이를 지나갈 만큼 몸이 가냘프다. 손은 채송화 닮았다. 그 손으로 알배기 김치를 담근다. 지금껏 먹어본 생김치 중 제일 맛있다. (우리 엄마 것 빼고)
그녀에게는 현빈처럼 잘생긴 남편이 있다. 강아지 석가와 13평 임대아파트에서 산다. 방 한 칸은 거실 겸 방이다. 다른 방 한 칸은 장신이 누우면 발끝이 벽에 닿을 정도다. 근래 입이 하나 늘었다. 내 조카가 키우던 고양이 ‘리치’를 못 키우게 됐다고 그녀에게 키워 달라고 했다. 그녀는 남편한테 물어본다고 전화를 했다. 전화하면서 승낙을 받았다. 하여간 없는 것들이 정은 많아요. 강아지 석가는 부처님 오신 날 태어났다고 해서 석가다. 그녀는 기독교다. 손에 손에 잡고 종교통합을 실천하고 있다.
간혹 내가 “이 집 12평이지?” 물으면 그녀는 “13평이거든, 실평수 11평이고” 나는 곧바로 “130평이지” 맞장구를 쳐준다. 그녀는 내 집이 추운 줄 알고 “밥 먹고 반찬 가져가라, 추운데 자고 가라” 입에 달고 산다.
이 집에 그녀의 지인들이 거의 매일 밥을 해 먹고 술 마시고 논다. 그녀가 강동구 암사동에서 살 때 처음으로 집을 놀러 갔었다. 이층 주택 뒤로 돌아가 지하 방 한 칸에 살았다. 원룸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 집에서 아줌마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날마다 그렇게 모인다고 했다. 그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하남 감일동 아파트가 당첨되어 이사를 왔다. 그러면 이제 아줌마들이 안 모이겠지 생각했는데. 모든 교통수단을 동원해 찾아온 사람들에 따라 집은 늘어났다 줄어든다.
사람들이 모이면 어쩌다 종교 이야기를 하게 된다. 신이 있니 없니 서로 토닥거리다가 그녀는 말발이 달리면 “ 야 이것들아 설거지나 해”하고 성질을 부린다. 성깔을 부려봤자 물푸레나무이파리가 바람에 간당거리는 것 같다.
그녀가 그러든 말든 이놈의 아줌마들이 본인 집들 놔두고 좁은 집에서 머리를 감고 씻는다. “왜 큰집 놔두고 여가서 씻고 난리일까” 나야 집이 추워서 그런다지만. 추우면 차혜 집으로 씻으러 간다. 나는 큰집에서는 잠을 못 자는 편이다.
꽤 오래전 단둥에서 방 배치를 잘못해 호텔에서 혼자 잔 적 있었다. 공중에 덩그러니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불을 끌고 내려와 바닥에서 잤다. 이런 내가 그녀의 집에서는 자고 온다. 아늑하다.
차혜는 한 시도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지를 않는다. 꽃게무침 홍어무침 닭발무침 삼합 수육 잡채 못하는 게 없다. 알배기 겉절이를 몇 번 주무르다 즉각 상에 내놓는다. 그렇다고 맛이 없냐. 그녀는 맥주를 빨대로 한 모금씩 빨고 건들거리면서 음식을 한다. 그녀는 처음부터 음식을 잘하지 않았다. 전라도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그 입맛에 맞추다가 술안주며 반찬을 잘하게 됐다. 우리 전설이다. 그녀 고향은 부산이다. 본인은 애초부터 잘했다고 한다.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머리가 좋아야 음식도 잘한다는 게 나의 정설이다. 음식을 잘해 사람들이 차혜 집으로 몰릴까 사람이 좋아서 모일까. 둘 다다.
그녀는 부지런하고 요리조리 솜씨는 타고난 것 같다.
우리 집에 황반변성에 좋다는 아로니아가 일 년 채 냉동실에 얼어있었다. 아로니아는 나무이파리가 섞여 있고 꼬투리가 달려있었다. 버릴까 생각하다가 그녀에게 갖다 줬다. 그녀는 아로니아를 물에 풀어놓고 순식간에 나뭇잎을 걷어내고 꼬투리를 땄다. 그 양이 소쿠리로 가득 이었다. 차혜는 믹서기를 돌렸다. 꿀을 넣은 즙을 병에 담아 일렬로 세웠다. 그녀의 손은 요술 손이었다. 그녀는 집에 왔다 가는 사람들을 빈손으로 보낸 적이 없다. 그녀의 채송화 같은 손끝은 사계절 내내 꽃이 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