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혜 2ㆍ18

차혜 2

by 불량품들의 사계

차혜



살림만 하던 방안퉁수 차혜가 봄나들이 간다고 나섰다. “야야, 개도 뱅기 타고 제주도 가드라” 나는 석가와 리치를 봐준다고 어서 가라고 했다. 차혜는 지금껏 제주도를 간 본 적 없다. 그녀는 몇 년 전 친구들과 제주도 가는 계를 했다. 그녀는 여행 가방을 빌렸다. 석가는 여행 가방 안에 앉아있다. 석가도 리치도 집도 붕붕 들떴다.

지금껏 생애 제일 긴 2박 3일 여행을 떠났다. 비행기는 타봤을까. 아차차 그것을 못 물어봤네. 가는 장날이라고 제주 도착한 날 하루 내내 봄비가 내렸다. 그녀는 사진을 찍어 보냈다. 연두색 우비를 입고 빨간 스카프를 목에 매고 있었다. “칼라 직인네. 니가 지일 이쁘다” 카톡을 보냈다.

여행을 마치고 온 후 차혜는 나를 집으로 불렀다. 석가와 리치 봐줬다고 밥을 해줬다.

밥상에 앉았던 제주를 같이 간 미선 동생이 나에게 말했다. 미선이 동생 때문에 오래전 나는 차혜를 알게 되었다.

“언니! 차혜 언니 제주에서 목에 스카프 왜 한 줄 알아?”

“나야 모르재.”

“식당에서 술은 마셔 열은 오르지, 땀을 흘리면서도 스카프를 꼭 두르고 있는 거야.”

“이쁘게 보이려고 그래겄지.”

미선이는 제주에서 있었던 일을 재현했다. 차혜는 상 옆에서 맥주를 빨대로 빨면서 웃었다.

“차혜 언니, 촌빨 날리는 빨간 스카프 좀 벗어라.”

“쉿.”

그녀는 검지를 자기 입술에 갖다 대며 미선이 귀에 대고 속삭였다.

“ 스카프가 촌스러워야지 스카프를 보면서 금목걸이를 사람들이 보잖아.”

“엥.” 미선이는 “뭔 소리여” 라는 눈빛을 보냈다.

“스카프를 보면서 금목걸이 볼 거 아니야.”

차혜는 금목걸이 자랑을 하고 싶었다. 차혜의 목소리는 작은 새가 지저귀듯 미선이 귀를 간지럽혔다고 했다. 차혜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고 손가락으로 스카프를 풀었다가 묶었다가 만지작거렸다고 했다.

나는 젓가락을 놓으면 말했다.

“그럼 스카프가 가려 목걸이가 안 보였을텐디.”

차혜가 웃으며 내 귀에 대고 제주에서처럼 속삭이듯 말했다.

“스카프 밖으로 목걸이를 찼지.”

나는 웃다가 밥알이 튀어나왔다.

“일행들이 자기 말하느라 목걸이를 보지를 않는 거야.”

미선이가 말했다.

그럼 차혜 니가 금목걸이 찼다고 말허지.”

나는 안타까웠다. 내가 옆에 있었으면 어떻게든 알렸을 건데.

“평소에도 하고 다닌 것처럼 하려고 자연스럽게 보길 원했지.”

그러면서 그녀는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왜 이래”하면서 빨대를 맥주잔에 꽂았다. 그래도 아쉬움이 섞인 말투였다. 일행들은 그녀가 금목걸이를 찬 줄 모르고 여행이 끝나버렸다.


일인 즉 차혜가 남편에게 남들 다한 금목걸이 하나 없다고 했다. 그녀의 남편이 얼마 전 차혜에게 3백만 원을 줬다. 그날 곧바로 보석상에 가서 팔찌랑 맞추었다고 했다. 차고 나갈 일이 없다가 이번 제주 여행에 차고 갔다. 일행들이 아무도 금목걸이에 반응이 없자 나름대로 방법을 썼다고 했다. 요새 금목걸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 있을까.

“아따 다이아몬드 찼으먼 너 옷 활딱 벗고 다녀겄다야 .”

그녀들은 빵 터졌다.


미선이가 차혜에게 촌빨 날린 빨간 스카프 벗으라고 한 이유가 있었다.

“차혜 언니. 얼른 한잔하고 말 나온 김에 다 해라.”

미선이는 차혜 잔에 술을 따르면서 말했다.

“뭐 또 있냐?”

내가 젓가락을 놓으면서 말했다.

차혜는 빨대를 유리잔에 꽂고 뜸도 들이지 않고 말을 꺼냈다.


그녀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버스를 타려고 집 앞 정거장에 서 있었다. 후줄근한 촌티 나는 마른 남자가 그녀 옆에 서 있었다. 비에 젖은 머리칼이 이마에 내려와 비 맞은 생쥐 같았다고. 그 사내는 머리칼을 쓸어 올리고 차혜에게 말을 걸었다.

아줌마 혹시 ...흑... 강에서 왔어요?

그 남자 말투는 조선족 말투였다고 했다

“흑 뭐 강성이라고 한 것 같은데.”

차혜가 그날을 상기하면서 말했다.

“흑룡강성이리고 했겄재.”

내가 말했다.

“내가 저번에 말하니까.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빨간색 옷을 입고 있으니 조선족인 줄 알았을 거라고.”

미선이는 옆에서 킥킥거리면서 말했다.

“잘생겼으면 아니라고 대답을 하려고 했거든.”

차혜는 옛날에 날렸다고 했다. 본인이 늘 하는 말이다. 얼굴도 작고 눈도 동그랗고 콧날도 오뚝하고 입술은 앵두. 자기 미모를 몰라준 그 사내가 연변도 아니고 듣도 보도 못한 흑 뭔 강에서 왔냐고 물은 게 자존심이 상했다나.

“연변이나 흑룡강이나, 한 끗 차이도 안 난다.”

나도 모르는 사이 저 말이 터져 나왔다.

“그 사내는 차혜를 흑룡강성에서 온 걸로 안 거 아니여.”

나는 차혜가 기분 나빠할까 봐 말을 안 하려 했는데 또 말이 나와버렸다.

“하기야 평소에 연변에서 왔냐고 자주 들은 소리야”

차혜는 웃지 않고 빨대를 던지고 혼자 따른 소주를 원샷했다.


그녀는 제주식당에서 술기운이 오르자 “이것들아 금목걸이 어떠냐.” 이렇게 외치려다 말았다고 했다. 제주 가기 전 이 에피소드를 들었던 미선이가 빨간색 옷을 입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차혜는 빨간색을 좋아한다. 대신 빨간 스카프를 매고 제주에 갔다. 그나 금니를 했으면 어쩔 뻔했을까. 입을 벌리고 다녔을 것 아닌가.


차혜나 나나 다를 게 없다. 나도 명품에 대해서 잘 모른다. 십 여전 가을날이었다. 건대 전철역 안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나는 기웃거리다가 삼만 원 주고 가방을 샀다. 검정 바탕에 줄이 세로로 쳐 있었다. 명품광인 친구에게 가방을 메고 자랑했다. “앉아라. 발리 짝퉁이야.” 그 친구는 내 앞에서 명품 자랑을 하지 않는다. 내가 뭐를 알아야 자랑할 맛이 나지. 나는 그날로 가방을 던져버렸다. 나중에 그곳을 지날 일이 있었다. 그때 봤던 남녀들이 가방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람잡이였었다.


그녀는 술이 오르자 같이 간 일행들한테 미안했다고 말했다. 이십 년 전 마이를 꺼내 입고 갔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차혜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차혜는 석가를 안고 베란다에서 석양을 바라보면서 멍을 때렸다. 그녀의 뒷모습이 수많은 부침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오래전 남편의 술주정과 폭력에 시달려 어린 딸을 두고 집을 나왔다. 지금껏 안 해 본 일이 없다고 했다. 얼마 전 딸이 결혼해 애를 놨다고 연락이 왔단다. 나에게 사진을 보여줬다. 차혜는 “앞으로도 지금만 같았으면” 종종 말을 한다. 나는 그 말뜻을 안다. 그녀는 현빈 닮은 남편과 재혼하면서 일을 그만뒀웠다. (이 글 쓰는 동안 유치원 주방에 취직했다.)


산 밑 내 집도 지붕은 천막이요 바람이 바람을 막아주는 시베리아 벌판에 서 있는 집이지만 발을 뻗고 잘 수 있다. 차혜 그녀 역시 수십 평 되는 아파트는 아니지만 지금 이 상황이 만족하다는 것이다.


내 옆에 수백 명 지인이 있다. 다들 유니크하고 정 많고 재미있다. 그래도 차혜 만큼 순박한 친구가 있을까. 금값이 떨어지면 큰일 난다며 옷장 속 깊이 목걸이를 숨겼다. 그녀는 오늘 밤 금목걸이가 새끼 치는 꿈을 꾸고 있는지.


나는 오래전 중국 심양에 갔었다. 성형외과를 한 조선족 지인이 루이뷔똥, 샤날, 까르띠에라고 말했다. 그 말이 내 귀에는 누이가 사나흘 까나리 젓갈을 먹고 똥 쌌다...로 들렸었다.

“차혜야 명품이 따로 있냐? 니가 명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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