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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Nov 10. 2023

불량품들의 사계

족대 동급 30

족대 동급  


        

성길씨가 집에서 커브를 틀어 나오면서 말했다. “물이 떨어져 마트 가야 하는데요?”

바케스로 퍼붓던 소나기가 그쳤다. 나는 텃밭에서 딴 토마토를 입으로 막 베어 물고 있었다.  먹던 토마토를 평상에 두고 차 시동을 걸었다. 성길 씨가 조수석에 올라와 앉았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뒷자리에 탄다.

성길씨는 주민들 눈을 상당히 의식한다. 혹시 세든 여자랑 그렇게 됐구나,라는 오해를 받기 싫어서인지 술을 마시지 않으면 뒷자리에 탄다. 불리하면 여자인 내가 불리하지. “내가 사장님 타입이 아니요? 나도 사장님이 내 타입 아니란께” 대놓고 묻지는 못하고. 풀치랑 나랑 있는 꼴을 못 본 거 보면 내가 전혀 성길씨 타입은 아닌 것 같지는 않고......   

“사장님 대낮부터 술 마셨어요?”

“네”

“왜요?”

“그냥요”

성길씨는 요즈음 술을 안 마셨는데, 오늘 그냥 막걸리를 마셨단다. 저놈의 그냥이 사람 잡는다. 나도 그냥 마실 때가 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그냥 마실 때가 많다. 그래 마시고 싶으면 마셔야지. 산밑에서 할 일이 뭐 있겠는가.     

우리는 파란 하늘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옆집이 허락하면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데”

“그러니까 시방 나보고 물고기 잡으러 가자고요?”

“저 아래 개천에 바글바글해요. 대답만 하면 족대 사 올게요.”

나는 잠깐 핸들을 놓고 열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말했다.

“바글바글 하다고요?”

“그쪽이 위에서 물고기를 몰고 오면 내가 밑에서 잡을 게요.”

“올라가고 내려가고 그것이 뭐가 중헌디요?”     

내가 “빨리 가자”라고 원하는 답을 해주자 성길 씨는 물고기를 벌써 다 잡은 것처럼 흥분했다. 버들치를 위에서 몰고 내려오는 게 쉬운지 아래서 족대로 잡는 게 힘든지 따질 필요가 없었다.

      

  옛날 신안 지도 섬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다. 친구들과 나는 낚싯대가 없으면 개구리를 잡아 껍데기를 벗긴 뒷다리살을 뜯어 강아지풀에 묶어 낚시를 했었다. 바닷물이 들랑거리는 둠벙보다는 작고 웅덩이보다는 큰 염전가탱이에 갯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미끼를 던져 놓고 쪼그리고 앉아 숨을 꼴깍 삼키며 입질을 기다렸다. 문저리가 미끼를 물면 강아지풀과 나의 손은 한 치의 떨림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문저리가 물가에 거의 다 왔을 때 번개 같이 낚아챘다.  나는 잡은 문저리를  엄지손가락으로 배꼽을  훑어 창시기빼냈다. 양조장에서 주전자에 받아 온 막걸리를  마시고 문저리를 쉰 김치에 감아 안주로 먹었다.

애들은 삥 둘러앉아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 "오메 징허다" 소리를 질렀다.

내가 주전자를 들고 벌컥벌컥 막걸리를 마시면 애들도 돌아가면서 마시고 문저리 먹은 입을 싹 닦았다. 우리가 얼마나 철저했는지 부모들이 우리를 야단친 적 없었다.


몇 년 전 가을 입구 무렵 포천에 놀러 갔을 때였다. 식당 주인이 노총각이었다. 저녁밥을 먹으면서 우리는 술을 한잔했다. 나는 노총각에게 어두워져서 하룻밤 가겟방에서 자겠다고 청했다. 다음 날 아점을 먹고 나니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노총각은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아다 낮술 한잔하자고 미끼를 던지는데 일행들은 관심이 없었다. 나만 저 말을 앙 물었다. 식당뒤에 계곡이 있었다. 노총각이  돌덩이를 쇠망치로 내려칠 때마다 물고기들이 기절해 배를 내밀고 둥둥 떠올랐다. 나는 뒤따라가면서 비닐봉지에 물고기를 건져 담았다. 우리는 물고기 배를 따 매운탕을 끓였다. 그 재미가 어찌나 쏠쏠한지 그때 기억이 지금 머리를 확 스쳤다. 그 식당 주인 노총각은 장가는 갔을까.     

이런 일들이 떠오르자 나는 신이 나서 차를 빨리 몰았다.


우리는 마트 가는 것은 뒷전이었다. 성길 씨가 세우라고 지정해 준 개천가 옆에 차를 세웠다. 요새 TV에서 ‘도시 어부’ 프로가 낚시꾼들한테 인기다. 그래서인지 다리 밑 아래쪽 얕은 웅덩이에 동네 아저씨들이 많았다.     

물속에서 물고기들이 떼로 몰려다니고 있었다. “옴매 이것이 얼마 만 이여” 나는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동시에 내리 언덕 아래로 뛰었다. 그는 걸음을 멈추지 못해 미끄러져 물에 빠졌다. 그는 재빨리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물에서 나와 바짓단을 짰다. 고소하다! 며칠 전 내가 주방 환풍기 좀 고쳐 달라고 했는데 그가 생깠었다. 그래도 나는 예의상 물었다. “괜찮소?”

한바탕 소나기가 내려 물이 찼다가 조금씩 빠지고 있었다. 모래가 살짝 드러난 쪽에는 배를 뒤집고 죽은 놈, 입을 오므리며 헐떡거리는 놈, 말똥말똥 우릴 올려다보며 아가미를 벌렸다 닫았다 하는 놈, 지느러미를 모래에 짚고 팔딱거리는 놈들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사장님 쪽대 빨리 사 오쑈!” 벌써 매운탕을 끓이고 무쳐 먹고 머릿속으로 소주 한잔 마시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침을 꼴딱꼴딱 삼키고 있었다.

“사장님 잠깐만요. 어째 흐리 냄새가 겁나게 나요.”

‘그게 무슨 대수야’ 라는 듯이 성길 씨는 발이 안 보이게 언덕을 올라가 족대를 사 왔다. 성길씨도 빨리 물고기를 잡아다가 매운탕 끓여 술 안주하면 좋겠다는 얼굴이었다. 오늘 성길씨 발은 테제베였다. 성길씨는 족대를 들고 개천 깊은 곳을 찾아 이미 들어갔다.      

“빨리 위로 올라가요” 성길씨 재촉에 나는 홀린 듯 바지를 걷어 올렸다. 물속으로 들어갔다. 바지는 무릎까지 젖어버렸다. 나는 물고기를 잡으러 자주 온 것처럼 물을 첨벙거리며 개천 위로 올라갔다. “거- 어- 기서부터 몰고 내려와요” 성길씨가 엉덩이를 빼고 엉거주춤 서서 말했다. 나는 허리를 숙이고 손과 발로 물속을 뒤적거리며 물을 쓸고 내려갔다. 물이 손등을 간지럽혔다. 물이 흐려져 물고기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몇 번을 빈 족대만 흔들었다. 피라미 하나 걸리지 않았다.

“아따, 어느 세월에 잡을까”

“위로 올라가봐요!”

나는 뒷걸음치다가 돌을 잘못 밟아 물속으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벌떡일어났지만, 윗도리까지 다 젖었다. 옷은 달라붙지요. 배는 깨구락지 배처럼 튀어나왔지요. 순간 짜증이 났다. 물고기를 금방 잡을 거처럼 큰소리칠 때는 언제고. 풀치나 성길씨나 제대로 한 게 없다.

“괘에엔차안아요?”

“지금 괜찮으게 보이요?”

성길씨는 젖은 내 꼴이 중요하지 않았다. 괜찮아요? 그 한마디 묻고 곧 족대를 들고 물속을 쓸고 다녔다.

“아이구 뭘 먹겠다고 이 짓을 허까, 더는 못 올라가 겄소.”   

  

나는 물뱀이라도 나올까 무서웠다. 위로 올라갈수록 수초가 많았다. 그는 얼마 전 당뇨 기미가 보인다는 의사 말에 술을 조심했었다. 당뇨에 좋다는 양파즙, 텃밭에 흰 민들레 캐서 뿌리를 달이고, 인터넷을 뒤져 약이라는 약은 다 사다 먹었다. 심지어 산에 오를 때 바짓단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니면서 살을 뺐다. 병을 이기겠다는 집념이 대단했다. 저나 나나 챙겨 줄 사람도 없으니 혼자 해내야 한다. 그래서 병원서 정상수치를 받았다. 정상이라는 말을 들은 후 오늘은 기어이 술을 마시고 말겠다는 일념 같았다.

“한 마리라도 잡아야 술안주 할 것 아니에요!”

“나 술 안 마셔요. 차라리 앞집 술고래(풀치)가 낫겄다?”

“여기서 술고래가 왜 나와요?”     

족대는 풀치가 등장한 후로 신경질적이 되었다. 빈 족대 질만 수십 번 해댔다. 성길씨는 막무가내로 나에게 “얼른 올라가요” 말했다. “올라가라, 못 올라간다” 둘이 실랑이하고 있는데 흙탕물이 내려오자 낚시꾼들이 우리 쪽으로 왔다. 족대를 들고 있는 성길씨 보고 한마디 했다. “이 봐요 양심이 있어야지, 물고기 다 쫓고!”

성길씨는 쫄았다. 그는 한 마디도 못하고 족대만 내려다보고 엉거주춤 서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난처할 때 짓는 성길 씨 특유의 표정 입 주위 근육이 씰룩거렸다. 그들이 돌아서자마자 성길씨는 턱을 들면서 눈짓으로 나에게 뒤로 올라가라고 했다. 그리고 가만히 말했다.

“며 어마리라도 자압게요.”

“나는 갈라요!”

“아안주 아안 하알 거예요?”

“내가 술에 환장 헌 줄 아요? 술고래 불러다 마시쇼!”.


는 족대를 들고 털레털레 내 뒤를 따라 언덕을 올라왔다.

“아따! 이것 먹고 방바닥 팍팍 긁고 토하고 눈 돌아가고 똥 삐질삐질 싸 병원 다니는 것보다는 그냥 가는 것이 났죠.”      

그는 퀭한 눈으로 말없이 마트로 향해 갔다. 나는 길에 서서 젖은 옷을 쥐어짜고 있었다.

할인 기간이라 생수가 한 병에 오백 원 정도 쌌다. 성길씨는 2리터 6개를 오른손에 다른 한 손에는 막걸리 세 병이 든 검은 봉지를 들고 오고 있었다.      

그는 차 안에서 왕복 택시비라며 내게 만 원을 줬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그럼 차비라면서 노모 드린다고 산 참외 하나를 대신 꺼내 주었다. 성길씨는 시장에서 집까지 택시비가 7천 원 나올 때가 있고 5백 원 더 나올 때도 있다고 했다. 삼거리에서 내 차가 신호에서 걸렸다. “여기서 택시가 신호를 받으면 5백 원이 올라가요” 그가 말했다.


집에 도착해 물병을 다 내렸다. 그가 술 마시자는 말이 나오기 전에 집으로 얼른 들어왔다. 나는 에미 에비도 모른다는 낮술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평상에 있던 토마토를 한 입 베어 물면서 생각했다. 그가 아무리 술기운이라지만 어떻게 내게 물고기를 잡으러 가자고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지친구야 동생이야’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간 친구 유숙에게 오늘 물고기 잡으러 간 이야기를 전화로 말했다.

“대체 나를 뭘로 봐부렀으까?”

유숙이는 내가 묻자마자 숨도 안 쉬고 곧바로 내뱉었다.

“뭘로 봐야 지랑 동급으로 봐 부렀지!”      

"지미! ” 호두나무 가지 위 까마귀가 까악 까악 웃고 지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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