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량품들의 사계 Nov 24. 2023

불량품들의 사계

베고니아, 배거니아 35

베고니아, 배거니야 



                

화분에 빽빽이 심은 베고니아는 갑갑하다는 내색도 없이 방긋방긋 피어있었다. 베고니아를 솎아 밭 가에 심었었다. 베고니아는 발을 맞추며 옆으로 옆으로 퍼져갔다. 이른 봄 산밑으로 이사 올 때 친구가 사 가지고 왔었다.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 계단 어딘가에 엽서를 쓰던...” 조용필의 ‘서울서울서울’ 노래를 듣고 나는 그때 처음 베고니아 꽃을 알았다.


베고니아만 보면 경순이 언니가 떠오른다. 오래전 일이다. 내가 대구서 오빠 직장을 다니다가 대전으로 발령받았을 때다. 대구서 같이 일했던 경순 언니가 사내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대전지사장으로 발령이나 남편 따라 대전으로 왔다. 경순이 언니는 경상도 사람인데 타지에 사는 것은 처음이었다. 언니는 사투리가 심했다. 대전을 낯설어했다. 언니는 무료하면 나한테 전화하는 게 일이었다.   

  

제비가 집을 짓는 봄날이었다. 언니랑 둘이 만나서 점심을 먹었다. 우리는 산책을 하려다 언니의 눈꺼풀이 나 무거워 보여서 그냥 헤어졌다.

언니는 밥은 먹었지요, 햇살은 눈에 들어오지요, 반쯤 감긴 눈을 손톱으로 톡톡 치면서 집에 걸어갔다고 했다. 현관문 열자마자 소파로 슬라이딩을 했다고 한다.

내일은 난 몰라요, 꿈속을 헤매고 있는데 어디선가 우렁찬 마이크 소리가 들려왔다. ‘저 소리는 머꼬 시끄럽데이’ 언니는 비몽사몽 옆으로 돌아누웠다.

“ 처언일홍, 제에라늄, 그윽락조, 고올드메리, 사안세베리아, 배거니야.”

꽃을 실은 트럭의 마이크 소리가 골목을 흔들었다.

“분갈이도 해줘유.”

생선이면 모를까.... 언니는 저녁에 생선을 사야 해서 시장에 가야 했다. 살짝 열어놓았던 창문을 닫았다. 그녀는 다시 귀를 닫고 누웠다. 꽃은 살 마음이 없었다. 시끄러워서 소파에서 엎어졌다가 뒤집어졌다가 할 때였다.

“천일홍제라늄...극락조골드메리산세베리아...배거니야”

‘뭐라꼬 꽃이 백 원 이라꼬?’  백 원이라는 단어가 언니 귀에 착 감겼다. 간단하고 짧은 멘트였다. 언니는 벌떡 일어났다.     

특별한 일 없으면 집에만 있던 그녀가 그야말로 질끈 묶은 머리와 슬리퍼를 끌고 나갔다.

그녀는 혼자 생각하기를 ‘화분값도 안 남겄다 아이가. 뭐 이런 일이 다 있노, 대전 인심 좋다 아이가.’      

그녀는 잘됐다 싶었다. 며칠 있다가 직원들 초대도 해야 했는데,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근처 꽃집도 모르고 집도 삭막했는데, 몽땅 다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골목 안 트럭에서 아줌마 여럿이 꽃을 고르고 있었다. 그녀는 꽃 이름도 묻지 않고 이것저것 골라 8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화분을 이리저리 돌려보던 한 아줌마가 트럭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 제일 오래가는 꽃이 뭐 여유?”

“베고니아여유.”  

그 말을 옆에서 듣던 경순 언니는 계산하기 좋게 베고니아 2개를 더 내려 열 개를 맞추었다.

언니는 손지갑에서 돈을 꺼내 천 원을 아저씨에게 주었다.

아저씨는 화분을 세고 그녀의 지갑을 내려다보았다.

“ 이만 구천만 더 주면 돼유.”

“예? 천 원 아니 라에?”

“무슨 소리예유.”

“아니 꽃 하나에 백 원이면 열 개니까 천 원아니라에?”

“내가 은제 백 원이라고 했으유?”

꽃 트럭 아저씨는 ‘이 새댁이 잠 덜 깼나’ 표정으로 언니를 보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줌마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꽃 하나에 3천 원, 총 삼만 원 이어유.”

“무슨 말입니꺼? 사장님이 분명 천일홍 제라늄 극락조 골드메리 산세베리아 백 원이야. 이렇게 마이크에 대고 했다 아이가?”

“ 지는유, 천일홍 제라늄 극락조 골드메리 산세베리아 베고니야 라고 했지, 지가 언제 백 원이라고 했대유.”

‘깨깽......’     


그녀는 내게 분명히 ‘백 원이야’라고 했다고 나에게 몇 번이나 전화통에 대고 ‘베고니아’를 말했다. 듣다 보니 내 귀에도 베고니아로 들렸다가 백 원으로 들렸다가 헷갈렸다. 그녀의 황당함을 달래주려 “맞네. 백 원이야로 들리네” 단정 지어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날 내가 옆에서 듣지 않았는데 아저씨 혀가 짧았는지 그녀의 귀가 짧았는지, 내가 어떻게 알 것인가.

바로 앞에서 한 말도 못 알아듣는 세상이다.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귀와 입안의 독버섯을 혀로 굴리지도 않고  쏟아내는 사람들이 중심이 돼가고 있다. 죽은 말굽에 깔려 말의 내용은 사라지고 오직 소리만 남은 망령들 잡음만 활개 치며 지지고 볶는 세상에......  

     

그녀는 이 창피함을 어떻게 해결할까 오만가지 생각하다가 양손에 화분을 들고 너덜너덜 걸어 집으로 왔다.  

사람들에게 창피에서 따지지도 못하고 그 돈을 다 주고 꽃을 사 왔다고 했다. 충청도 사투리를 못 알아들었다고 그녀는 말했지만, 나는 아무래도 꽃 파는 아저씨 상술에 넘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굳이 베고니아를 마지막에 붙여서 외쳐야 했는가.      

마당에 베고니아를 볼 때마다 새댁이었던 경순이 언니와 ‘백 원이야’가 생각난다.


‘고등어 갈치 오징어 조기 베고니아... 수박 참외 자두 복숭아 베고니아...’             

       

작가의 이전글 불량품들의 사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