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 왜 그만둔 사람에게 유독 냉정할까

by.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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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차에 대한 답의 결론부터 말해주자면, ‘어차피 들어올 사람은 많고 남을 사람은 알아서 남아서’다.


늘 들어올 사람이 많음에도 인력난에 시달리는 병원이 많다. 매번 인력난에 시달리면서도 어차피 다음 신입이 있으니, 끝까지 붙드는 경우가 드문 게 모순이다.


간혹 일을 잘하는 에이스 신규가 퇴사 고민을 털어놓으면 좀 더 많이 붙들긴 한다. 그러나 이것도 오래가지 않는다.



퇴사 각이 잡혔을 적 수선생님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 선생님들도 처음에는 다 힘들었는데 버텨서 이까지 온 거다”


“우리 때는 더 힘들었다, 나도 이 일 오래 하면서 불안해서 약 먹는 중이야.”



나는 대학 시절 우연히 과제를 하던 중 수간호사들의 항불안제 복용률이 높은 편이라는 걸 알게 된 적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 조사에 참여 한 수쌤 중에 안 먹으면서 먹는다고 한 사람도 있지 않을까?” 혹은 “연구 결과 쓰려고 일부를 확대해석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으니, 그 시절 알게 되었던 정보에 대해 과장된 분석이 아니라는 확신이 섰다.


내 옆에 있는 사람도 거기에 속하는 분류군 중 한 분이셨다.


가뜩이나 평소 상사들의 모습을 보고 ‘여기서 버틴 내 미래가 어둡다’라는 생각에 “퇴사”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는데 수간호사 선생님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렇게 판단한 내 생각에 ‘버티지 않아야 할 근거’에 확증이 추가된 계기가 되었다.



사실 과호흡은 내 퇴사 이유의 주된 이유가 아닌 그중 하나였다.


주된 이유는 미래의 내 모습이었고 과호흡은 부가적인 이유로 ‘생각보다 일찍 퇴사하게 된 계기’일 뿐이었다.


간호계의 이 모순적인 구조가 왜 수십 년째 바뀌지 않았을까?


나도 오랜 생각 끝에 깨달았다.


몇십 년 전에는 ‘버티는 것이 미덕’이라는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부조리한 환경 속에서도 버텨냈고, 그 구조 자체를 문제 삼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은 오랫동안 버틴 고연차만 남아 고여 있고, 중간 연차는 이미 한 번 크게 빠져나간 뒤 비어 있는 상태에 가깝다.


그리고 지금의 신규들은 들어왔다가 나가기를 반복하며, 이 이상한 흐름 자체가 그들에겐 이미 하나의 일상처럼 굳어버렸다.


모두가 이 구조에 익숙해져 있었다. 거기에 있는 아무도 이 이상함을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어쩌면 거기서 버티기 위해 그것이 싫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거다.


나는 이 구조를 받아들이기를 본능적으로 거부한 케이스다.


그리고 그 거부 끝에 내가 나를 밀어붙이면 어떻게 되는지도 잘 알게 되었다.


근무 중 신체화 증상 이슈가 터진 후 간호부에 면담이 올라갔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었다.


그리고 병동 특유의 폐쇄적인 구조답게 선배 간호사들 사이에서 소문은 빨리 퍼졌다.


“수민이 퇴사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대”


나의 프리셉터 선생님도 한 번 붙드는 투로 말하긴 했었다.


“선생님 무슨 일 있어요? 고민하고 계신다고 들어서요…”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힘든 거 있으면 말해요…”


“감사합니다”


현재까지의 내 인생에서 행운이라고 생각되는 일 중 한 가지는 나의 프리셉터가 진짜 착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행운 한 가지는 현재 나의 제일 친한 친구이자 누가 봐도 반에서 제일 착했던 친구도 현직 간호사이다. 그 친구 나름 바쁠 텐데 현재까지도 내게 언니 같은 역할을 많이 해주고 있다.


나의 프셉을 보면 그 친구를 프리셉터로 만난 기분이었다. 아마 두 사람의 위치가 바뀌었어도 똑같았을 거다. 성격의 온도도, 목소리 톤도, 나를 바라보는 보호적인 시선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내게 은연중에 늘 짓고 있는 걱정이 섞인 듯한 표정도 모두 유사했다.



나는 오랜 고민 끝에 퇴사라는 선택을 용기 내어 결정했다.


“저… 수선생님, 드릴 말씀 있습니다”


아침 인계가 끝난 후 조심스레 그 호칭을 불렀다.


“어… 어 그래 수민아, 생각해 봤어?”


“저… 퇴사하기로 정했습니다”


“어… 그래 수민아”


“수민아, 너 많이 힘들어도 버틴 거 다 알고 선생님들 너 정말 열심히 한 거 다 알고 있어, 다른데 가더라도 거기 쌤들이 시키는 거 여기서처럼 열심히 하고 잘 배워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내가 앞으로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질 계획은 없지만, 특별히 좋은 답변이 떠오르지 않아 일단 똑같이 형식적으로 알겠다고 답했다.


사실 ‘이때까지 감사했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말문이 또 한 번 막혔다. 늘 혼만 나다가 저 말을 들으니 이유 모를 눈물이 핑 돌았다. 조금의 정도 없이 이곳은 원래 그랬다는 듯 형식적인 말과 함께 쉽게 보내주는 태도를 보니 마음 한 곳에 냉기가 돌아 쓸쓸했다. 그리고 눈물이 돌았다. 하지만 직장이어서 또 한 번 애써 참았다.


병원이라는 조직은 소문이 귀신같이 빨랐다.


5분 뒤에 간호부장님께서 혼자서 컴퓨터 앞의 EMR(병원 전산시스템)에 투약 후 간호기록을 하던 내게 오더니 말을 건넸다.


“수민아, 안 되겠더나…?”


나는 이렇게 답했다.


“네… 부모님과 상의해 본 결과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얘기해 봤겠네?”


“네…”


내가 일을 잘하는 에이스가 아니었음에도, 부장님께선 씁쓸함과 흐뭇함이 같이 묻어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다독여줬다. 내 생각일 수도 있지만, 퇴사하는 평범한 신규에게 형식적으로 나오는 따뜻함이 포장된 냉정함일 거다.


그만두는 순간, 이곳의 사람들은 화 한번 내지 않고 오히려 더 냉정해진다.



내 인생의 기본값은 늘 ‘버티기’였다. 하지만 버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결과는 내가 아니라 내 몸이 먼저 드러내고 있었다.


머리는 어떻게든 상황을 합리화하며 계속 버티라고 말했지만, 몸은 가끔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럼에도 나는 그 신호를 애써 외면한 채 다시 버티기를 선택했다. 몸은 늘 내게 마지막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나는 처음으로 몸의 경보를 무시하지 않았고, 부모님께 일방적으로 내 퇴사 결심과 미래 계획을 함께 말씀드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몸의 신호를 받아들여 봤고, 부모님께 버티지 못한 나를 보여줬다. 그리고 많이 울었다. 처음으로 그만이라는 선택을 부모 앞에서 말하는 것이 가장 큰 문턱이라 제일 무서웠다.


무섭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다. 딱히 친구들에게도 기대지 않았다. 이때까지는 무서운 일이 있어도 나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이었으니까 가능했을 거다.


임상이라는 곳도 당연히 감당할 수 있는 무서움일 거라 생각했지만,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해 온 걸 이제야 알았다. 이렇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무서움을 겪은 것도 처음이었다.



사회는 내 생각보다 훨씬 냉정했다.


병원이라는 곳 자체만으로 일반 사회보다는 냉정한 곳이고 특히나 그곳은 태움을 당하면서 버티고 있는 신규보다 그만두는 신규에게 훨씬 더 냉정했다.


버티고 있는 신규는 애정을 가지고 태우기도 한다.


그러나 그만두는 신규에게는 칼같이 태움을 끊음과 동시에 애정도 끊어버린다.


퇴사 결정이 난 그 순간부터 나를 붙잡고 있던 모든 줄이 단칼에 끊긴다.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이때까지 부딪히며 배웠던 업무 이상의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더불어 관심 대상에서도 벗어난다.


그만둔 사람에게는 “요즘 애들은 멘탈이”같은 멘탈 관련 프레임을 씌우며 기본적인 예의를 지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처음 퇴사의 의사를 밝히면 수간호사 선생님이나 간호부 면담에 올라가서 한 번 붙들린다.

그러나 확고하게 퇴사하겠다고 하는 순간에는 냉정하게 바로 보내준다.



그만두는 사람이 한둘도 아니고 그들의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그럼에도 왜 이곳에서는 그만둔 사람들을 멘탈 문제만으로 치환시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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