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고무나무

by 어쩌다보니

너는 나를 모르겠지만

너와 나는 꽤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단다

열흘마다 네가 뿌리내린 바닥을 적셔주고

서향 창에 해가 들 때면 블라인드를 걷어주지

실내식물용 영양제도 줬어


내 집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라 다행이야

전주인의 실수로 잘라내 앙상했던 모습이

빽빽한 푸르름으로 덮어졌어

벤자민 고무나무는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뭇잎이 다 떨어진다던데

새순을 내니 안심이 되네


너는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나는 너를 꽤 자주, 또 오래 본단다

실내지만 가장 양지바른 곳에 두고

어울리는 녹색 두꺼비 판화도 옆에 걸어뒀어

물론 날 위해서겠지 너를 보는 나

너는 나도 판화도 못 볼 테니


곧 가지를 조금 잘라내야 할 것 같아

집에 어울리지 않는 과밀은 곤란하거든

아파할 테니 마음이 쓰인다

어쩌면 가지치기야말로 나만을 위한 일일지 몰라

잔가지를 쳐내야 본가지가 건강해진다지만

잔가지든 뭐든 너희는 구별하지 않을 테니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말해줬다면 어땠을까

아마 아무도 키우지 않았을 거야

진짜 남이 되니까

남은 번거롭고 귀찮아

뱃속에서 나온 남도 키우기 힘들거든


그럼에도 나는 너를 꽤 신경 쓴단다

너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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