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이스탄불은 굉장히 이국적이었지만 낯설지는 않았다. 장삿속도 있었겠지만 이방인에게 매우 친절하고 먼저 다가서는 것이 유럽보다는 아시아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그런 정서가 있었다. 물건을 구경하러 상점에라도 들어가면 차를 내오기도 하고 큰 체리 송이를 가져와 맛을 보라고 하는 통에 미안한 마음에 구경도 제대로 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축구를 좋아하냐고 물어봐서 이스탄불에서 제일 인기가 있다는 팀의 팬이라고 둘러댔더니 다짜고짜 '형제여'라고 부르는 그런 넉살과 대범함이 있는 도시였다. 이스탄불에 두 번 방문했었는데 두 번다 도시는 관광객으로 붐벼서 활기가 넘쳤었고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크루즈에서 내려 쇼핑을 하는 큰 손들부터 알차게 여행 일정을 짜서 돌아다니는 통에 도시를 거닐다 몇 번이나 마주치게 된 한국에서 온 배낭여행객들까지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를 만끽하고 있는 듯했다.
나 역시 나만의 방식을 택했다. 이 도시에 머무는 동안 나는 대부분 걸었고 숙소로 돌아올 때쯤이면 다리가 너무 아파서 보통 트램을 탔다. 걷다 보니 운이 좋게도 이 도시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다. 누군지 모르는 이의 결혼식장을 기웃거리다가 붙잡혀 들어가 술 한 잔 얻어먹고 신랑 신부와 춤을 추기도 하고 터키어를 못 읽는 통에 무슨 건물인지 모르고 들어갔는데 마침 장애인 재활 시설이라 의도치 않게 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며 투어를 하기도 했다. 어쩌면 위험했을지도 모를 뒷골목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그들의 분노로 두 동강이나 있는 '이스라엘'이라고 쓰여있는 비석 같은 것을 보기도 했고 또 어떤 고등학교에서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그 학교 출신 학도병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실업률이 높아 바닷가에 나와 작은 물고기를 잡으며 한낮을 보내던 많은 젊은 남자들도 보았고 맨발로 아이를 안고 구걸하는 이민자로 보이는 여성을 눈 꾹 감고 지나쳤다가 너무나 안된 마음에 다시 돌아와 얼마 안 되는 돈을 쥐어 주기도 했다. 또 재미있었던 일은 이슬람 국가임에도 나에게 다가와 가이드를 해주겠다던 게이 청년도 있었고 어떻게 만났는지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이란에서 오디션을 보러 왔다는 기타리스트 친구를 만나 그 친구의 호텔방에서 무슨 객기인지 어설픈 내 기타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스탄불을 방문한 지가 벌써 꽤 오래전 일임에도 나는 이스탄불에 관해서라면 언제든 이 모든 에피소드들을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밤새 풀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