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내가 크리미아 반도를 방문했을 때 그곳은 어엿한 우크라이나의 영토였으나 이후 러시아가 크리미아 반도를 자신의 영토로 편입했다고 주장하는 상태이다. 하지만 UN에서는 아직도 크리미아 반도를 우크라이나의 영토로 간주하고 있다. 실제로 내가 방문했을 때 자신의 정체성과 뿌리를 러시아인이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었다. 즉 우크라이나에 살면서 러시아에 사는 친지들이 있을 수도 있고 러시아에 살면서 우크라이나에 가족이 있을 수도 있는, 두 나라는 그런 관계로 살아왔던 것이다. 아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크리미아 반도 (또는 크리미아 자치공화국) 사람들은 러시아 쪽을 지지하겠지만 그중에는 복잡한 심경을 지닌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자물쇠는 한국에서처럼 다른 문화권에서 굳건한 사랑을 의미하나 보다. 어쩌면 한국의 남산에 걸린 자물쇠들은 타국의 문화가 들어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로맨틱하고 순수하다. 저 자물쇠들로 사랑을 약속한 커플들은 러시아의 크리미아 합병도 지금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어찌할 수 없으리라.
맨홀 뚜껑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한 거리의 예술가는 인류애를 무시한 이 비극에 그의 분필을 꺾진 않았기를. 고통 가운데서도 우크라이나의 그 동토 어딘가에서 꽃이 피어나기를.
할머니의 손주에 대한 사랑은 어디나 똑같다. 어린 시절 할머니로부터 받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대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에게 같은 동족을 총으로 쏘라는 명령은 얼마나 잔인한 것일까.
나에게 스스럼없이 보드카 병을 내밀었던 저 젊은 청년들의 손에 지금은 총이 쥐어져 있을까? 일요일 오후조차 함께 보낼 만큼 절친해 보였던 세 친구들의 운명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어쩌면 그들 중 누군가는 우크라이나의 편에 서 그 땅을 떠나고 누구는 러시아의 충성스러운 군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세 친구들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는 일은 없기를 빌어본다.
Mama put my guns in the ground
I can't shoot them anymore
That cold black cloud is comin' down
Feels like I'm knockin' on heaven's door
얼마나 많은 어린 꽃들이 꺾이고 짓밟히고 죽어야 이 땅에서 침략과 내전, 제노사이드와 정치적 탄압이 없어질 것인가. 저 천진난만했던 아이들은 이제 어른의 세계에 고작 발을 내디뎠을 나이가 되었을 터인데 그들의 어른들이 (아니 우리가) 그들에게 준비해 주었던 미래는 참담하다. 비단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 다양한 이유로 아이들이 학대받고 죽고 있다. 아니 내가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내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지 않는 저쪽 어딘가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비가 내리고 있었다. 좋은 차는 아니지만 내 소유의 차를 운전해서 모닝커피를 한 잔 마시며 이 글을 쓰기 위해 스타벅스에 도착했다. 앱을 켜보니 충전해둔 금액이 충분하지 않아 페이팔을 통해 앱에 펀드를 충전하고 늘 마시는 카페 라테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아 맥북을 켜 자판을 쳐 나가다 지금 이 문단에 내 마음이 붙들려 있다. 대략 2분 전쯤 '저쪽 어딘가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라고 쓴 참이다. 내 글이 그저 감상적이었을 뿐이라고 자백한다. 그렇다고 고쳐 써 누군가에게 울림을 줄 만한 실력도 되지 않기에 그냥 두련다. 지구 반대쪽의 빈곤과 기아, 전쟁과 제노사이드에 대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수 있을지 오래 고민했고 기부를 하기도 했고 정당 활동도 했지만 내가 무엇을 어느 만큼 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제일은 잊고 무시하고 살면 그만이다. 그러려면 글을 쓰지 말아야 한다. 내면의 소리를 무시하고 표면적으로 살면 될 일이다. 나는 무엇 때문에 누구도 읽지 않을 이 글을 이 아침에 써내리며 거대기업이 제공하는 비싼 커피를 홀짝이며 이 모순 속에서 또 모순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