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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 Feb 05. 2023

미국 동부에서 아이들과 긴긴 겨울을 보내기

아이디어 싸움

오피스 창문으로 보이는 겨울 풍경


내가 사는 펜실베니아의 겨울은 다른 지역에 비해 가혹하지는 않다. 실제로 겨울은 한국보다 따뜻해서 두꺼운 오리털 패딩 같은 걸 입어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다만 11월부터 시작해서 우중충한 날씨가 3월까지 지속되고 가끔 4월에 눈이 오는 경우도 있어서 내 개인적으로는 체감상 6개월은 야외 활동이 어렵고 기분을 우울하게 만드는 우중충한 날씨가 잦은 기간인 것 같다. 그 외 계절은 정말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데 나머지 6개월이 우울기질이 강한 나를 힘들게 한다. 또한, 야외 활동을 별로 선호하지 않고 특히 출산 후 추운 날씨를 어려워하는 와이프 때문이 이 6개월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힘들고 긴 시간이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실내 활동도 굉장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10월의 마지막이 보이는 때쯤부터 이 긴 시간을 무엇을 하고 보낼까 걱정이 된다. 여유가 있어서 날씨가 따뜻한 플로리다나 캘리포니아로 휴가를 다녀올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 매거진의 타이틀처럼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우리는) 지독한 흙수저이고 대출금을 갚고 나면 우리는 paycheck-to-paycheck을 살아간다.


요 몇 년 이 긴 겨울을 어떻게 지냈는지 돌아보고 이번 겨울을 어떻게 살아남을지 아이디어도 얻어 보려고 한다. 2021년 겨울과 같은 경우, 와이프 빼고 우리 가족 모두가 코비드에 걸렸고 내 경우에는 아직도 회복 중에 있을 정도로 엄청 어려운 겨울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이겨냈고 지금 다시 돌아보니 그래도 소중했던 시간이었다. 지난 몇 해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구글 포토를 뒤져가며 기억을 되돌려 보았는데 한국의 겨울과 어떻게 달랐는지 보는 것도 혹시 모를 이 글을 읽을 누군가에게 재미있는 포인트가 되기를 바라본다.


가을에 NYC에 간다

아이들이 어린 우리에게는 덥지도 않고 아주 춥지도 않은 가을이 뉴욕 같은 대도시를 걷고 즐기기에는 제일 좋은 계절인데 그래서 11월에 가끔 뉴욕에 간다. 시골쥐인 우리 아이들은 일종의 동경인지 뉴욕에 가는 걸 좋아한다. 우리 가족으로서는 겨울 전 거의 마지막 외부 활동인 셈이다. 가는 길에 한인 타운에 들러 오랜만에 맛있는 한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덤으로 얻는 기쁨이다.

뉴욕에 가면 들리는 뉴저지에 위치한 돼지 갈비 식당


겨울을 알리는 Winter Concert

이벤트가 엄청 많은 미국의 초등학교다. Winter Concert는 학교 내 오케스트라, 코러스, 밴드가 매년 하는 콘서트인데 연습과 리허설에 데려다주느라 고생한 부모들이 역시 관객도 된다. 아이들이 매년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하나의 즐거움이다. 첫째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데 학교에서의 연습 외 개인 연습 또는 레슨을 받지 않는 것이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하기 전 첫째가 내놓은 조건이었다. 그래서 집에서 일체의 개인 연습은 하지 않는데 그래도 처음에는 삑삑 만 대다가도 그래도 이제는 악보를 보고 어설프지만 노트를 연주하게 되었다.

아마도 재작년 사진. 올 겨울 콘서트는 출장 때문에 참석하지 못함...


겨울에도 스포츠

긴 겨울을 흥분시켜 주는 가장 큰 스포츠이자 이벤트는 풋볼 게임과 수퍼볼이다. 그다음은 농구와 아이스하키인데 필라델피아의 스포츠 팬들은 필라델피아 연고의 스포츠 팀들에 미쳐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사실 야구와 축구팬이기 때문에 시즌이 끝난 야구는 볼 수 없지만 축구는 유럽 리그를 보고 있다. (손흥민과 김민재 때문에...) 미국의 스포츠는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기 때문에 비록 농구나 아이스하키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경기를 직관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즐거운 경험이 된다. 어떻게 보면 지루한 겨울에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익사이팅한 이벤트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Philadelphia Flyers 게임 직관


겨울잠을 자려면 먹어야지

밤도 긴 겨울을 나려면 먹고 자는 게 최고다. 시간이 많으니 집에서도 직접 요리를 해서 먹기도 하고 친구나 지인의 집에서 종종 모임이나 파티를 하기도 한다. 또, 한인 식당이나 한인 마트에 가서 가끔 외식을 하기도 한다. (최소 왕복 2시간이 소요되어서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겨울에는 나가는 것 자체가 매우 귀찮으므로 한번 쇼핑을 하면 냉장고와 팬트리가 꽉 차는 일도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족발이나 전을 부치는것 같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도 OK. 대왕 달고나도 만들어 보았다.
한국 치킨이나 짬뽐은 특별한 날의 사치


실내 활동을 찾아라

많지는 않지만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일들도 있다. 한국처럼 키즈 카페가 있는 건 아니지만 indoor 트램펄린 파크도 있고 게임장 같은 것도 있다. 또,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스포츠 센터도 찾을 수 있다. 시내(?)에 나가면 다양한 박물관이나 실내 테마 파크도 많이 있다. (이제는 하도 가서 가지는 않지만...) 동네에 있는 도서관도 꽤 시설이 잘 되어 있고 책들이 많기 때문에 종종 가기도 한다. 아이들이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극장에 가는 것도 우리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다. 한국처럼 실내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찾으면 다양한 실내 활동을 할 수 있기도 하다.

시설이 꽤 좋은 카운티 도서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이상하게도 올해는 눈이 한두 번 밖에 그것도 아주 조금밖에 오지 않았지만 보통 동부의 겨울은 많은 눈을 동반한다. 가장 짜증 나는 일은 눈을 치워야 하는 일인데 가끔 눈이 너무 많이 오면 오피스를 닫기 때문에 일종의 연차 아닌 연차를 얻는 경우도 있다. (재택근무라고는 하지만 대충 시간을 때우는 수준)

아이들의 경우는 눈이 조금만 와도 학교가 문을 닫기 때문에 당연히 눈을 기다린다. 자연스럽게 동네 애들이랑 눈썰매를 들고 나와서 백야드에서 눈썰매를 타기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며 갑작스러운 짧은 방학을 즐기는데 주로 집에만 있기 때문에 이런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

눈이 한 번 오면 쌓이게 오는 편


여유로움을 만끽한다

겨울에는 시간이 진짜 많다. 늦어도 5시에서 5시 반이면 퇴근하고 또 금방 어둑어둑해지기 때문에 저녁 시간이 많은 편이다. 물론 나 같이 어린 두 아이가 있는 경우는 여유 따위는 사치이지만 그래도 여름에는 다양한 이벤트들이 있기 때문에 주말에도 엄청 바쁜 편인데 겨울에는 상대적으로 한가로운 편이다.

안타깝게도 요즘은 침대에서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지만 가능하면 음악도 듣고 커피 한 잔과 함께 책도 읽고 하며 좀 더 발전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다.... 고 생각만 하게 되는 이 겨울이다. 글도 많이 쓰고 싶지만 춥다는 핑계로 따듯한 침대에 들어가 이불 밖은 위험하다고 외치게 되는 계절이지만 그래도 늘 무언가 하며 이 시간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주말에는 종종 가족들과 브런치를 먹으로 간다.
에스프레소 머쉰을 살 돈이 없어 선택한 핸드 드립, 블랙 프라이데이 때 득템한 턴테이블과 중고 LP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가 없다면 12월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미국에서 크리스마스는 정말 큰 이벤트이다. 우리도 크리스마스 쇼핑, 트리 꾸미기, 집 꾸미기, 파티 계획 등을 하며 12월을 즐겁게 보낸다. 가장인 나에게는 큰 지출이 인해 힘든 달이지만 아이들이 정말 손꼽아 기다리는 계절이 겨울 이유는 바로 크리스마스 때문이다. 이제 첫째는 더 이상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지만 그래도 둘째 때문에 새벽에 몰래 일어나 트리 밑에 선물을 놓는 마술을 올해까지는 부려야 했다.


가족들과 부대끼기

사실 이 부분이 가장 힘든 일인데 작은 집 (미국 기준)에서 계속해서 부딪히다 보니 트러블도 많이 생기고 아이들도 할 일이 없다 보니 자꾸 아이패드나 닌텐도, 티비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 그것 때문에 또 신경전이 벌어지기 다반사다. 식구들 모두가 삼식이가 되다 보니 세끼를 어떻게 때우냐도 문제이고 아침에 학교 보내는 게 전쟁이다. 그래도 다행히 지난해 가족이 하나 늘어서 소소한 일거리는 늘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가족들의 위안이 되어주는 중.

팬데믹 때 결국 닌텐도를 사주게 되었는데 그 후 엄청난 마리오 덕후가 되어 버린 둘째
새로운 식구


취미 생활

나의 취미 생활이라면 글쓰기인데 매번 브런치에서 "60일을 못 보았네요" 같은 메세지를 받는 정도이나 보니 꾸준한 취미라고 하기엔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이외에는 악기 연주 및 작곡 (을 배우겠다고 하는 것)이 취미인데 현재 연주와 작곡, 녹음이 가능한 홈스튜디오가 집에 구축되어 있다. 하지만 물론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은 없고 아직 사용할 능력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저것 사모으고 꾸미는 것이 즐거웠으니 이것도 취미였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키와 같은 취미가 있다면 겨울의 동부가 천국이 될 수도 있겠지만 불행히도 나는 겨울에 외부 활동이 힘든 건강 문제까지 가지고 있으니 천상 실내 취미를 찾아야 한다. 최근에 현재 이 글을 쓰고 있는 1층에 공기 청정기를 사두었고 리클라이너 의자를 하나 사려고 알아보고 있는데 진짜 이 홈 스튜디오를 꾸미는 게 취미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1층이 제일 춥다 보니 겨울에는 아이들이 잘 내려오지 않음)

이 외에는 역시 카페 가기, 특히 동네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는 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인데 유일하게 혼자 스벅에 갈 수 있는 시간인 토요일 오전에는 그렇게 아침에 못 일어나는 아이들이 귀신같이 일어나기 때문에 실제 가게 되는 것은 끽해야 한 두 달에 한번뿐이다.

큰 돈을 들이지는 않았지만 (쓰지도 않을) 가성비템을 모으는 즐거움
우리 동네 스타벅스는 한가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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