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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상욱 Oct 11. 2023

녹보수 부음

녹보수


녹보수 부음

전상욱


어느 봄날
우리 집에 입주한 그녀
눈부신 초록으로 감싼 모습
범상치 않았지

emerald tree라
별명도 갔고 있는 여자
정성껏 자리잡아 주고 햇볕 떠먹이자
녹색 보석처럼 빛나는 이파리와
그 사이에 수줍은 듯
고개 숙인 채 피어나는 꽃
행운과 재물과 행복이라는 꽃말만 봐도
굴러온 복덩이가 분명했네

뿐이랴
거실 공기까지 정화해 준다며
매일 눈 맞추고 보살피는 나를 보고
아내까지 슬며시 질투하는 판이니
애인이 따로 없는 거라

늦가을 어느 날부터
그녀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
반짝이던 얼굴에 윤기가 사라지고
갈색으로 변해가더니 끝내 숨을 거두었네
아뿔싸! 

사랑도 과하면 독이 되는가
지나치게 많은 정을 쏟았음이라*

찬 이슬 내린 아침
아파트 게시판에 부음 소식 붙여놓고
삼가 명복을 빌어 보는데
그녀 떠나간 빈자리
호야 분 하나 되똥하게 지키고 있다

*녹보수는 1개월에 2회 정도 물을 주는 게 적당함.





2023.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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