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은 책을 안 읽는다. 안 하는 게 아니고 못하는 거야
글을 모르니 독서를 못하는 거야
개 세상에는 독서라는 단어가 없어
단어가 없으니 개념이 없지
글자를 모르는데 어떻게 독서를 해?
읽지 않으니
고전도 없고 뉴스도 이야기도 없어
이야기가 없으니 그런 판단도 없어
책 몇 천 권을 읽고 박사 뽐내는 개도 없고
박사 한풀이로 늘그막 개고생 하는 늙다리 개도 없어
개에게 보이는 건 눈앞에 어른거리는 먹이뿐
개에게 들리는 건 귀로 들려오는 주인의 숨소리뿐
단순하지만 대신 확실해
현재뿐인 세상에는
미래 모양도 미래 소리도 상상할 수 없어
그러니 독서가 필요 없는 거야
없는 세상을 공부할 필요가 없는 거지
현재를 잘 관찰하다가 민첩하게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거야
독서란 내가 보고 듣는 거 외 남들 거 까지 욕심내는 거란다
인간들은 욕심이 많아서
자기가 가진 것만으로는 성이 차질 않아
이것저것 배우고 외우고 담아두고 또 그걸 반복하고
남들 지식 경험 쇼핑하고 주워 담는 게 독서란다
인간세상은 지식을 강요하는 독서모임 같아
아는 것이 힘이라네
이것저것 보고 듣고 쌓고 자랑질하고
그게 저네들의 훈장이고 벼슬이야
그래야 있어 보이고 돈도 생기는 구조
우리 개 세상엔 그런 지식 강요가 없어
나는 내가 보고 듣는 거만으로도 충분해
독서 없어도 밥 있고
지식 없어도 집 있어
주인 비위만 조금 맞추면 밥이 나오는 구조야
독서, 지식, 박사 이딴 거 죽으면 가져갈 건가
어차피 태어나는 어린애 머릿속은 0으로 리셋되어 하얗게 나와
그 머릿속에 새로운 책 천 권이 들어가려면 수십 년은 걸릴 텐데
자기가 그랬듯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게 인간들이지
다람쥐 쳇바퀴 도는 거랑 뭐가 다를까
세 살부터 글 익히고 책 읽으며
개고생 절어가는 인간들
내가 보기엔 너무 피곤해 보여
독서 배움으로 그득한 피로사회야
개피곤 인간들의 피로 세상
나는 무식한 놈 유식한 놈 구분 없는 우리 개판이 좋아
쥐뿔도 개뿔도 없는 개들 세상
나는 배부른 개 하품하는 개가 제일 부러워
사람들도 우리가 부러웠나 봐
그래서 만든 단어가 ‘개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