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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송목 Nov 09. 2022

탱고처럼

칼럼

우리는 흔히 실패나 어려움에 처하면 의욕도 떨어지고 불필요하게 남을 의식하고 평소 없던 열등의식도 유난히 민감하게 드러낸다. 동창회도 나가기 싫고, 전화하는 것도 싫고 받기도 싫어진다. 경조사도 돈만 보내거나 잘 참석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는 것조차도 피하게 된다. 점차 외톨이가 되어가는 것이다. 특히 요즈음 같은 펜데믹 상황에서는 장기적으로 공식적인 만남이 그럴싸한 핑계가 되어 자연스럽게 단절되는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이런 좌절감과 외톨이에서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가 스스로 생수가 되는 것이다. 통상 실패나 좌절의 시간이 길어지면 고인 물 상태가 된다. 사람 인체의 70%가 물로 구성되어 있어 사람은 물의 속성을 닮았다. 우울해서 에너지가 방전되어 움직이지 않으니 스스로 고인 물이 되는 것이다. 이때 고인물을 흔들어 물에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소주병을 흔들고 맥주 거품을 내어 ‘회오리 주’로 산소를 발생시키는 것처럼 자신을 흔들어 깨운다. 물은 흘러야 맑고 움직여야 ‘생수’다. 우리네 삶도 이와 같다. 내가 생수임을 끊임없이 알리는 것이다. 우리는 친구가 왕성하게 활동하거나 생기 있게 움직일 때 흔히 “살아있네!”라고 말하곤 하는데 바로 그런 결과다.

<이미지=통로>

한편,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대중화되어 있는 음악 장르 중 하나인 탱고가 있다. 탱고(Tango)는 1920년대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대유행했던 음악이다. 그런데 탱고의 곡과 가사는 전혀 대조적이다. 곡은 4분의 2박자로 경쾌하지만, 가사에는 온갖 종류의 세상 슬픔이 가득하다. 당시 피혁공장, 도살장, 조선소에서 일하는 가난한 이민 노동자들의 향수, 외로움, 고통, 좌절을 탱고의 경쾌함에 담았다. 99%가 향수다.


탱고의 경쾌함과 생수가 되는 방법만으로 상황의 큰 흐름을 반전시키는 것은 어렵겠지만, 어느 정도 완화하고 달랠 수는 있을 것이다. 상황이 어렵다고 전화를 안 받거나 동창모임을 거르는 일이 잦아지면 관계의 맥도 끊어지고 신뢰도 약해진다. 이때 별일 없어도 상황이 어려워도 셔츠 깔끔하게 다려 입고 구두 광내서 다니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도 상대에게 ‘잘되고 있나 보다’라는 긍정적 평가를 얻어냄으로써 ‘내가 뭘 도와주면 좋을까’라는 자발적 협조를 이끌어내는 효과가 있다. 사람은 스스로 도우는 자를 도우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렵다고 어두운 표정 짓고 회피하고 지질하게 다닌다고 해서 누가 더 동정하고 도와주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이 당신을 피하고 멀리할 것이다.


흔히들 우리는 사람들 간의 만남이나 관계, 우정의 핵심을 믿음, 신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심리학자들 이야기를 빌리면 그보다 더 우선하는 것이 ‘유쾌함’이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과 만나고 싶어 한다. ‘신뢰’라는 단어는 좋은 말이긴 하지만 ‘진지함’이라는 다소 무거운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요즈음처럼 매사가 힘든 일상에서는 재미있고 즐거운 것이 더 우선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믿음이 필요할 때 만나면 되고 생활에서 진지함은 나 하나로 충분하다. 평소 생활에서까지 진지함으로 도배하며 살고 싶지 않을 테니 그래서 잘 웃고 유쾌한 사람과 가까이하고 싶은 것이다. 상대방 입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내가 상대에게 유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빅토르 위고는 “인생이 엄숙하면 엄숙할수록 유모어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생활이 힘들다고 얼굴 찡그리고 힘든 티 내면, 티 내는 나만 힘들다. 힘들지만, 생수처럼 탱고 리듬 타면서 살아보자.


<참조> 월드뮤직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 서남준, 대원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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