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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송목 Oct 09. 2021

개가족 소개

개가 본 세상 이야기

우리 가족 소개를 할게

우리 가족은 사람 넷, 개 하나 가족이야

국어대사전 찾아보니 ‘사람’이란?  ‘일정한 자격이나 품격 등을 갖춘 이’라고 나와 있네

우리 가족은 그런 품격의 ‘사람’들이야 ㅎㅎ. 품격도 있고 자격도 있고

이제부터 호칭은 사람 부르듯 할 거니 오해하지 말기. 양해 부탁해. 개가 사람보고 엄마, 오빠, 언니, 아빠라고 하면 개와 친분 없는 사람들은 ‘너도 개냐’ 하면서 구박들 하지. 이제부터는 그냥 넘어가 줘야겠어. 적응해 줘.


엄마 지 볼일 다 보고 가끔 나 챙겨 주는 ‘사람’

그래도 가끔 언니 몰래 맛있는 간식 주니까 우리 둘 사이엔 남들 모르는 비밀이지. 언니는 내가 살찔까 봐 걱정돼서 군것질 금지시키고, 엄마는 언니 몰래 도둑질하듯 숨바꼭질 나 챙겨주고.


오빠 우리 집이 그의 하숙집 같은 오빠 ‘사람’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 늦게 들어와. 그는 직장 다니는 셀러리맨이야.

청춘이고 바쁜지 가끔은 안 들어오고 가끔은 며칠씩도 친구 집에 놀다 오기도 해.

자유로운 영혼, 청춘이 다 그렇지 뭐. 나도 소녀시절 봄바람 많이 탔어.

그렇게 가끔 봐도 난 여전히 오빠가 좋아.

그가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를 좋아하는 거지.

왜냐고? 그냥 좋아. 뭐랄까? 그에게는 수컷 냄새가 있는 거 같아.

나도 개 본능이란 게 있잖아. 호르몬인가 페로몬인가 하는 거

아무튼 오빠는 우리 집에서 제일 어리고 청년이고 상남자야.

딱히 잘해주는 것도 없고 간식도 잘 안 줘도 좋아. 사료 살 때 가끔 돈 보태는 게 그가 내게 해주는 전부. 그래도 난 오빠가 좋아! 뭔가 끌림. 진짜 좋아


언니 말로는 우리 집에서 가장 많이 나를 챙겨주는 ‘사람’

사실은 보일 때만 그래. 마음씨는 착하지만 그저 착할 뿐.

사료 사주는 주 스폰서지만 그걸로 끝.

나는 그런 그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아. 이 또한 본능 페로몬 때문인가 싶어.

다른 사람, 가족 없을 때, 외로울 때 어쩔 수없이 내가 기댈 수밖에 없는 사람 대용 언니야.

그는 자주 나를 불러, 쓰다듬어, 귀찮게 해

난 내키지는 않지만 응해는 주지. 굳이 척지고 살 필요 없잖아.

살다 보니 그런 지혜가 생기더라고. 안 그러면 사료 스폰 끊길 수도 있으니까.

그가 이 글을 안 봐야 할 텐데.


아빠 내가 제일 의지하는 ‘사람’이야. 나를 제일 사랑해주는 ‘사람’

근데 그와 같이 지내기는 만만찮아. 사랑하는 만큼 피곤해.

맨날 산책길 따라다녀야 하고 주말마다 산에도 같이 가야 해.

처음에는 지가 좋다고 하니까 내가 따라가 줬더니 진짜 그런 줄 알고 맨날 나를 동반하는 거 있지. 말이 동반이지 내가 끌려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야.

내가 젊을 때는 그런대로 견딜만했는데 이제 나도 10살이야. 사람 나이로는 70세 할머니지.

그래서 요즈음 힘들어.

아빠 사람이 좋아 따른 건데 다들 산이 좋아 그런 줄 착각하는가 봐.

솔직히 말하는데 산책은 좋아, 산은 싫어

아무튼 그는 우리 집에서 제일 믿을 만하고 듬직해.

그래서 지금 이 글 대필도 시키고 돈도 저작권도 맡기고 있잖아.

사랑해 아빠!

근데 오해는 하지 마, 그냥 플라토닉 러브야.  

내 사랑은 오직 오빠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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