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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송목 Jul 26. 2023

27. 내가 먼저 알몸이 되어라

사장의 책 쓰기

솔직하게 과감하게 써라. 타인에게 나의 체온을 가장 빨리 가장 확실하게 전달하려면 먼저 내가 알몸이 되어야 한다. 대중 앞에 자신을 발가 벗겨 놓는다는 각오로 써야 한다. 고향친구랑 소주 한 잔 하면서 편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마음으로 쓰는 것이다. 당신의 가감 없는 진솔한 스토리다. 그래야 독자가 다가온다. 미사여구 수식어는 빼고 그냥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비속어를 쓰라는 것은 아니다. 솔직함과 배설은 같은 말이 아니다. 비속어 사용이나 배설과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다르다. 고상한 말로도 충분히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다.


나에게 글쓰기 지도를 받던 어느 중년 여성 예비작가가 말했다. "선생님, 저는 솔직하게 쓰고 싶은데 자식들 때문에 안 되겠는데요. 얘들이 이제 중고생들이라 감수성도 예민하고 해서 제 과거에 대해서 다 까발리면 집안이 풍비박산이 날 것 같아서요" 그녀는 중국에서 건너온 동포다. 한국에 들어와 온갖 잡일을 다하면서 두 자녀를 키워 낸 억척 여장부다. 그러다 보니 뭔지는 상세히 밝히지 않아 잘 모르지만, 말 못 할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음은 틀림없다. 자식들에게 떳떳하게 드러내 보이기 어려운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수는 없다.


솔직한 이야기라 해서 반드시 반드시 직접적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풀어 갈 필요는 없다. 간접적으로 빗대거나 인용하는 형식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지인 A 아무개라는 사람이 그랬다’고 하면 그만이다. 소위 제삼자 화법이다. 적당한 선에서 사실적인 리얼스토리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피해 가면 된다. 다만, 리얼 경험담임을 알리는 효과를 주기 위해서는 좀 더 디테일한 감정표현과 묘사가 필요할 것이다.


통상 인간관계를 친밀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차, 식사나 술 한 잔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하고 교감을 나누는 것이다. 저자와 독자와의 관계도 이와 같다. 독자 앞에서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알몸이 되는 것이 친해지는 최우선 지름길이다. 글쓰기도 그렇다. 시장의 흐름,  출판사의 요구, 시대정신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글 쓰는 작가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이며, 이를 통한 스토리의 핵심을 전달하는 것이다.


자기를 감추면서 남을 설득하고 나아가 감동을 주려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마치 모두 벌거벗고 있는 목욕탕에 혼자 양복에 넥타이 매고 들어가는 것과 같은 난센스다. 그런 가식과 포장은 독자들에게 금방 들킨다. 그러므로 자기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글쓰기의 출발이다. 전문기술이나 기능을 다루는 책이라면 폼을 좀 잡아도 괜찮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독자에게 감정을 전달하는 주제의 내용이라면 솔직한 감정표현이 기교보다 우선이다. 현란한 문장의 소위 책 쓰기 기술자는 독자가 금방 알아보고 외면한다. 작가의 내면을 볼 수 없는 책, 작가가 보이지 않는 책은 독자도 보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나의 따뜻한 체온을 전달하려면 내가 먼저 알몸이 되어야 한다.

드로잉=최송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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