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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송목 Oct 18. 2021

당신은 어떤 패턴에 서 있는가?

실패 통찰의 희망전략 (NO.4)

다 보면 실패는 필연적으로 생긴다. 특히 적극적으로 열심히 살다 보면  그렇다. 고로 실패한 당신은 열심히 살았고 열정적인 사람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왜 아직 실패의 늪에 그대로 있을까? 당연히 성공했어야  하는데 말이다. 사람들이 실패에서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실패의 패턴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도 모르는 어떤 패턴을 가지고 그 굴레 속에 살고 있다. 성공의 패턴, 실패의 패턴이다. 성공하는 사람은 계속 성공을 이어가고, 실패하는 사람은 계속 실패를 반복하는 경향이다. 바로 패턴 때문이다. ‘부자는 망해도 3대 간다’라는 말도 패턴의 결과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1》에서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는 부자들이 따르는 돈의 규칙이 따로 있고, 부자가 아닌 사람들이 따르는 돈의 규칙이 따로 있다고 했다. 가난한 아버지는 “돈을 좋아하는 것은 모든 악의 근원이다.”라고 말하지만, 부자 아버지는 “돈이 부족한 것은 모든 악의 근원이다.”라고 말한다. 가난의 패턴을 따를 것인가, 부자의 패턴을 따를 것인가를 묻고 있다.


성공 패턴을 이어가던 사람도 가끔 중도에 실패를 경험하곤 한다. 그러나 곧바로 실패에서  성공 패턴으로 되돌아온다. 반대로 실패를 거듭하던 사람도 가끔 성공한다. 하지만 곧바로 실패 패턴으로 되돌아가 불행을 이어가는 경향이 있다. 성공 되돌이표, 실패 되돌이표다. 이것이 패턴의 핵심이다.

우리는 가끔 동일한 사고가 같은 장소에서 반복되거나 같은 사람에게 반복되는 것을 본다, 모든 일은 어떤 관계나 조건에 의해 일어난다. 그런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는 실생활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지인 중에 유난히 교통사고가 잦은 후배가 있다. 32살 때는 오토바이 타고 가다 넘어져 사고가 났고, 37살 때는 회사 공장 지붕 공사하다 떨어져 거의 죽을 뻔한 큰 사고를 당했다. 그리고 자잘한 사고를 몇 번 겪다가 최근에는 또 트럭과 충돌사고가 크게 나서 입원한 적이 있다. 보통사람은 평생을 두고도 한 번도 일어나지 않는 큰 사고를 4번 이상 치른 것이다. 그는 태권도 4단 유단자로 평소 지나치게 건강이나 신체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보통사람이면 그런 몇 번의 죽을 고비를 거친 교통사고를 당하면 트라우마가 생길 법도 한데 장애자로 등록된 지금도 자신만만하다. 그런 평소의 지나친 자신감이 과감한 행동과 부주의 태도로 이어져 사고를 반복하게 하는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사고 가능성 높은 직업이 다거나 성격구조로 유추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걸 두고 꼭 패턴으로 규정할 수 있겠나 하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으나 내가 보기에는 분명 패턴이다.   


성공에 안주가 있듯이 실패에도 안주가 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기를 실패나 좌절의 바닥에서 무슨 안주가 있겠느냐, 당연히 모든 이가 탈출하고픈 마음으로 충만할 거라 생각하겠지만 바닥에서 너무 지치고 늘어지면 그 자체에 안주하기를 희망하는 경우도 생긴다. 영화'빠삐용‘(1973년작)에서 빠삐용(스티브 매퀸 역)은 수차례의 탈옥 시도 끝에 악마의 섬에서 자유를 찾아 떠나지만, 드가(더스틴 호프먼 역)는 섬에 남아 닭과 돼지들을 키우면서 탈출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자리에 안주한 것이다. 실패의 패턴에 스스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필자가 한창 사업 중에 손님과 함께 강남 유명한 곱창 집을 간 적 있다. 입구에 들어서는데 대학 동창을 만났다. 반갑다는 인사를 하는데 그의 손에 숯불이 들려 있었다. 짐작하기를 “이 친구가 전공을 접고 음식점을 차렸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잠시 뒤 조용히 물어봤다. “언제 개업한 거냐?” 알고 보니 그는 그 집에서 2년 가까이 숯불 담당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대학 때 공부도 꽤나 잘했고, 중견기업에 프로그래머로 입사한 이후로 소식이 끊겼는데, 그는 그 후 퇴사하고 시작한 사업이 어려워져 알바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정을 딱하게 생각한 나는 내 딴에는 오지랖을 발휘하여 적당한 취직자리를 하나 제시했는데 그는 며칠 후 거절 의사를 밝혀왔다. 이유는 더 이상 머리 쓰고 싶지 않다는 것, 지금 상태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패턴에 안주라고 밖에는 딱히 설명할 길이 없다.

 성공에 안주하는 것도 패턴, 실패에 좌절하여 포기하고 주저앉는 것도 패턴이다. 실패도 성공도 패턴이다. 비유하자면, 한번 열차에 올라타면 별 노력 없이 쓱쓱 지나가는 것과 같다. 그저 차창 밖 구경하고 어디에 내릴 건지만 생각하면 된다. 내가 한 거라곤 고작 열차에 올라탄 것뿐이다. 그 작은 패턴에 편승했을 뿐인데 결과는 엄청나다. 인생의 성공과 바닥도 이와 같은 성향이 있다. 어느 쪽 패턴이던 올라타기만 하면 그다음은 별 힘을 가하지 않아도 그 상태가 유지되는 성질이다. 그러나 그 결과 차이는 엄청나다. 가령 서울역에서 기차를 탄다면 불과 몇 시간 사이에 한 사람은 서울역, 한 사람은 부산역에 위치한다.

다만 패턴을 벗어나려면 이탈에 필요한 어느 정도의 속도가 필요하다. 로켓이 지구궤도를 유지하려면 초속 7.9km(제1우주 속도)의 속력이 필요하지만, 지구를 이탈하려면 초속 11.2km(제2우주 속도) 속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로 나아갈 수 있다. 바로 변곡점을 이탈할 수 있는 속도다. 물리학적으로는 가속도이고 심리학적으로는 멘털 체인지다.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공과 바닥에서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구심력과 꿈을 이루려는 원심력 간의 갈등이 생긴다. 벗어나려는 패턴을 유지하려는 안일한 마음, 현실 안주에 대한 미련 등의 구심력과 좀 더 크게 성장하고 욕망을 키우려는 원심력 간의 갈등으로 인한 균형 상태다. 이걸 벗어나려면 패턴 파괴의 속도 즉, 용기가 필요하다.

성공하던 몰락하던 그 패턴에 한번 들어서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실패도 성공도 습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은 어떤 패턴 위에 올라타고 있는가? 견뎌야 할 패턴인가? 아니면 빠져나와야 할 패턴인가? 견뎌야 할 패턴이라면 견디고 참아라. 그러나 아니라고 판단되면 한시라도 빨리 그 패턴을 벗어나라.

가능하다면 ‘실패 레일’보다는 ‘성공 레일’ 위에 몸을 싣는 게 좋겠다. 경우는 정반대지만 하중을 견디고 추진하는 힘은 거의 같다. 실패의 무게를 견딜 것인가? 성공의 무게를 견딜 것인가? 기왕 견딜 거라면 다홍치마를 택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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