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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타임

디카시-울산제일일보

by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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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타임

이현영



앙다물고 침묵
지금은 소문을 모을 때
다음 해 실컷 나팔 불 거야


_______ 감상 _______


아침에 잠시 피었다 해가 떠서 뜨거워지기 시작하면 꽃이 져버려서 부지런한 사람만 볼 수 있는 나팔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2012년 텃밭 경계에 딱 한 번 씨앗을 뿌렸는데 이제는 매년 농사일할 때면 나팔 불며 응원해 줍니다.

2022년 1월을 시작하며 활짝 핀 꽃도 아닌 입 앙다물고 침묵한다는 이현영 시인의 디카시 '브레이크 타임'이 마음에 쏙 들어왔습니다. 좋은 씨앗을 품으려면, 좋은 기록을 내려면, 좋은 일이 생기려면 앞으로만 전진할 것이 아니라 브레이크 타임이 중요하다는 걸 절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1년 마무리가 덜 된 일들과 2022년 계획한 일들이 뒤얽혀 실마리가 잘 풀리지 않아 많은 시간 투자를 하는데도 진도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좋은 결과가 없는 것은 씨앗이 잘 여물도록 중간에 휴식 시간을 갖지 않고 꽃이 계속 피어있기만을 바라는 제 욕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동시적 발상도 묻어나는 3행의 짧은 디카시 '앙다물고 침묵/지금은 소문을 모을 때/다음 해 실컷 나팔 불 거야'에서 작가는 입 앙다물고 있는 나팔꽃 씨방의 모습을 한번 튀어나오면 바람을 타고 퍼져나가는 소문을 주의하라고 역설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읽힙니다. 이 디카시의 정점은 제목으로 귀착되어 휴식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것 같습니다.

나팔꽃 꽃말이 '기쁜 소식'입니다. 연초부터 들려오는 복잡한 말들과 일들로 까맣게 변해버린 머리도 가끔은 휴식을 줘서 하얗게 털어버리고 새로운 문장으로 채워가게 만들어 주는 디카시 '브레이크 타임'을 만나 행복합니다.

글=이시향 시인



출처 : 울산제일일보
http://www.uj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96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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