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시 5편(1)

어린이시

by 보리


바람

경산 중앙 4학년 정순호


바람이 분다.

온갖 것들이 움직인다.

안 움직이던 나무들도

잠잠하던 물결도

가만가만 있던 풀들도

또 바람이 분다.

뭐가 뚝 떨어지는 소리

개가 도둑인 줄 알고

막 짖는다.

바람은 너 같은 거는

안 무섭다, 하고

서부 영화 무법자처럼

온 동네, 온 들을

누비고 다닌다.


(1992년 10월 25일)






경산 부림 6학년 허병대


야, 동수야!

해 넘어간다.

발갛다야!

동글동글한 게

터질 것 같다야.

바람도

살살 불고

풀잎도

살래살래

구름도

살금살금 지나간다.

어어 이제

넘어갈 듯 말 듯

쪼금 남았다.

이제 손톱만큼 남았다.

어!

꼴딱 넘어갔다.

아!

모든 게 멈춰 버리는 이 세상.


(1991년 11월)




논두렁길

경산 부림 6학년 성재욱


내가 집으로 혼자 걸어오는 길.

어쩌다 풀 속에 뱀이 있으면

막 앞으로 달려와

"와아 시껍아!

내일부터는 일로 안 와야지." 하는데도

그 다음 날에도 오는 길.


벼들도 바로 내가 왔다고

손을 흔드는 길.

논두렁에 심은 콩

논둑의 뽕나무 잎들이

앞을 가리고

호박이 두 개나 달려 있고

잘 긁히는 억새풀

갖가지 풀들이 어울려 있는 길.


논두렁길은 내가 오지 않으면

쓸쓸해질 거다.

이 길은 나 혼자 와도

심심하지 않은 길.


(1987년 9월 25일)




추위

울진 온정 3학년 권미란


땅도 얼었다.

바알간 손에

책가방 들고 간다.

발도 얼었는지

걸음이 잘 안 걸어진다.

오른손에 책가방 쥐고

왼손 녹이고

왼손에 책가방 쥐고

오른손 녹이고......


(1985년 12월 19일)




식용 개구리

경산 부림 6학년 허미경


할아버지가

식용 개구리를 잡아 오셨다.

뒷다리가 끈으로 꽁꽁 묶여

사는 것을 포기한 것처럼

가만히 있다.

다리에는 껍질이 벗겨져 있다.

나 좀 살려 조!

개구리의 슬픈 눈동자

나는 식구들 몰래

끈을 풀어 주었다.

빨리 가라!

힘이 빠졌을까?

빨리 가라니까!

개구리는 힘을 내어

펄쩍 물로 뛰어든다.

개구리야, 잘 가라!

이제 잡히지도 말아라.

남 해치지 말고

아들딸 놓고 잘 살아라.

돌아올 때 꾸중할

할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

개구리 어디 갔노?

모, 모르겠는데요.

나는 가슴이 뜨끔했다.


(1991년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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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편의 '어린이시'는 보리 출판사에서 펴낸 이호철 선생님이 엮은 『요놈의 감홍시』책에서 옮겨 적었습니다.


이호철


1952년 경상북도 성주에서 태어났습니다. 1973년 안동 교육 대학을 졸업한 뒤 38년 동안 농촌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지난 2014년 퇴임했습니다. 한국글쓰기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삶을 가꾸는 교육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꽁당보리밥 묵고 방귀 뿡뿡 뀌고』『맛있는 쌀밥 묵자』『산토끼』『온 산에 참꽃이다!』『늑대할배 산밭 참외서리』『알밤 주우러 가자!』『연아, 연아! 높이높이 날아라』『신나는 썰매 타기』『이호철의 갈래별 글쓰기 교육』『엄마 아빠, 나 정말 상처 받았어』『감동을 주는 부모 되기』『우리 소 늙다리』『살아 있는 글쓰기』『살아 있는 그림 그리기』『재미있는 숙제, 신나는 아이들』『연필을 잡으면 그리고 싶어요』『학대받는 아이들』『공부는 왜 해야 하노』『비 오는 날 일하는 소』『잠 귀신 숙제 귀신』『요놈의 감홍시』『울어라 개구리야』같은 책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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